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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쏘다> 겉그림입니다.
<코끼리를 쏘다> 겉그림입니다. ⓒ 실천문학사
<1> 조지 오웰이 바라보고 부대낀 삶

인도 벵골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 그이는 잠깐 영국으로 돌아가서 지내다가 1922년부터 버마에서 인도제국 경찰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1927년에 그만두어요. 서구 제국주의 더러운 손길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살도록 짓밟는지를 낱낱이 느끼거든요.

교도관들이 그의 어깨를 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길 위의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26쪽-


조지 오웰이란 사람이 처음부터 '서구 제국주의'를 제대로 알았을까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영국사람으로 인도 제국에서 경찰로 지낸 여섯 해가 있었기에 '말'로만이 아닌 '경험'으로 제국주의 문제를 파고들 수 있었겠다 싶어요.

인도에 있으면서 본 사형 집행 모습, 가난한 사람들 모습, 억울한 사람들 모습은 조지 오웰이 세상을 따뜻하면서 날카롭게 바라보고 글을 쓰고 살아가도록 이끌었지 싶습니다.

만약 우리가 의대 학생들이 배우기를 원하는 그런 질병에 걸려 있다면 그제야 우리는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기관지에서 나는 가르랑대는 소리가 훌륭한 표본이 되어 10여 명 이상의 의대 학생들이 내 가슴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나는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의대 학생들은 환자들도 인간이라는 인식은 없고 오로지 배우고자 하는 엄청난 열의만 있어, 그것은 참으로 이상했다.
-49쪽-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했을 때, 조지 오웰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병원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그때 그이는 '두 번 다시 오고 싶지는 않'으나 '이렇게 한 번 와 봤기 때문에 소문으로는 아주 끔찍하다는 곳' 모습이 어떠한지 아주 또렷하게 느꼈답니다.

아픈 사람을 고치는 병원이 아니라 "해부용 메스를 가지고 실험할 '실용 대상' 번호"에 지나지 않았다는 환자들. 그래서 환자에게 주는 밥은 돼지도 먹기 싫어할 만큼 더럽고 질낮은 밥이었고, 간호사가 환자 다루는 모습은 거의 쓰레기를 만지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경찰로 일하던 어느 날은 공원에서 가젤이란 짐승에게 먹이를 주었답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가젤에게 빵을 주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어느 인도 노동자가 머뭇거리면서 말하길 "나도 빵을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는군요.

<2>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으며, 그들이 더 중요한 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백인들은 항상 눈에 잘 띈다. 만약 북유럽에서 밭을 갈고 있는 농부를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그에게 단 1초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67쪽-

<코끼리를 쏘다>라는 책은 조지 오웰이 인도 경찰로 지내며 겪은 일, 영국으로 돌아가서 '문학과 정치'를 바라보고 느낀 일, 가난뱅이로 자기 신분을 속여서 구빈원, 여인숙, 유치장, 형편없이 낮은 품삯을 주고 학대하는 농장 들을 찾아다니며 겪은 일, 평범하게 살아가며 생각한 일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다른 글도 좋지만 인도 경찰 경험과 가난뱅이로 자기 신분을 속인 뒤 겪은 이야기는 요즘 시대에도 찬찬히 되새기고 돌아보면서 헤아리면 좋을 이야기라고 보아요.

우리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이 있고 '그럭저럭' 사는 사람도 있지만, '못사는' 사람과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뿐 아니라, '죽음조차 생각하지 못하며 사는' 힘겨운 사람도 많아요. 잘 살거나 그럭저럭 사는 사람은 혼자서도 웬만큼 살림을 꾸린다지만, 못살거나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어떨까요?

조지 오웰은 바로 '못살고 힘겹고 쪼들리고 짓밟히는' 낮은 자리 사람들과 부대끼며 낮은 자리 사람들 삶을 헤아리려 했고, 낮은 자리 사람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글쓰는 사람,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다음처럼 밝힙니다.

1936년 이후 내가 쓴 진지한 작품의 모든 구절은 하나같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전체주의를 반대하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글이었다. 나는 작가가 이러한 주제를 회피하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와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영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스페인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투옥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곳에서 내가 한결같이 화려한 문체, 의미 없는 문장, 쓸모없는 장식적 형용사 등에 유혹당한 생명 없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86~90쪽-


알맹이가 없는 글, 삶이 없는 글, 사람냄새가 없는 글도 '글'이기는 하겠지만, 그저 '글(이론)'로만 그칩니다. "글이 넘친다"고 말하는 까닭은 글다운 글이 없고,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글(이론)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 테두리에서 조지 오웰은 실천하는 양심이랄 수 있고, 우리들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짓을 못 봐주는 사람, 참답게 자기 삶을 꾸리고,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 사회는 얼마나 괜찮은가

"감옥에 가는 것보다 일자리를 잃는 일"이 참말로 두렵다고 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돈과 힘 없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감옥에 끌려가고 '죄수'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감옥에서 나오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따돌리며 그 어느 곳에서도 일할 곳을 찾지 못해요. 이런 모습은 1930년대 영국만이 아니라 2000년대 대한민국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것은 마루의 면적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여인숙 주인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러므로 이 법이 만들어진 단 하나의 실제 결과는, 하숙비가 인상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비록 침대와 침대 사이의 공간이 엄격히 지켜진다 하더라도 침대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컨데 침대가 잠을 자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다.-144~145쪽-

아주 싸구려 여인숙 그러니까 집 얻거나 빌려서 살 돈이 없는 이들이 지내는 싸구려 여인숙이 있답니다. 이곳 방에는 침대를 아주 촘촘히 붙여 놓았다는데, 런던 시의회에서 '침대 사이 간격이 너무 좁아 사이를 적어도 3피트만큼은 벌려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답니다.

하지만 싸구려 여인숙 환경이 얼마나 더러운지, 침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눈길도 두지 않았다고 해요. 법이라는 게 얼마나 삶과 동떨어져 있는지, 법 만드는 이들이 얼마나 책상머리에서만 일하는지를 보여준달까요?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에 우호적일 때조차도 경찰은 너무 의식화되어, 자신이 봉사해야 하는 단명의 수상(행정부)에게 비협조적일 수 있다(212쪽)"는 말은 깊이 되새겨 볼 만합니다.

<4> 책 한 권으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으나

책 한 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없습니다. 진보정치를 외치는 이가 국회의사당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들 몇 사람이 사회를 바꿀 수도 없어요. 진보언론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뭇사람들입니다.

법은 보호책이 되지 못한다. 정부가 법을 만들지만 정부가 그 법을 집행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리고 경찰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그 나라의 일반적 기질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에 관심을 보인다면, 법이 그것을 금지하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여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비록 법이 보호를 해준다 하더라도 성가시게 여겨지는 소수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다.<214쪽>

법도 중요하고 진보정치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나라 사람 모두, 우리 사회 모두가 더 중요해요. 얼마나 옳고 아름다운 사회를 바라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더 나아질 수 있고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가꿀 수는 없지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씩 생각을 곧게 추스르고, 그렇게 추스른 마음을 퍼뜨리고 나누어 '보통사람들 생각'을 깨우치고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알아야 해요. 참된 언론 자유란 무엇이고, 참된 법이란 무엇이며, 우리 문화와 사회와 경제와 교육이 어떤 길로 가야 좋은지를 또렷하게 느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길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다>라는 책 하나에 이런 이야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아름답게 꾸려가는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코끼리를 쏘다>는 번역이 다른 책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어설프거나 알맞지 않은 곳이 곳곳에 보입니다. '잠깐-한동안'으로 쓰면 될 말을 '일시적(一時的)'으로 쓴 곳, '구경거리가 되다'를 '관찰의 대상이 되다'로 쓴 곳, '심심하다'가 아닌 '무료(無聊)'라는 말을 쓴 곳, '법률을 만들어'라 하면 되는데 '법률 제정에 의해'로 쓴 곳 들은 고칠 곳입니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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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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