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기준 목사
임기준 목사 ⓒ 정거배
임기준(83) 목사는 1922년 전남 목포에서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잇는 두만강변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회령읍에서 그는 보통학교와 상업학교까지 마치고 해방 때까지 목재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혼란한 해방 공간에서 그는 함경도 청진 고아원 총무로 일하다가 남한에 단독정부가 들어서기 위해 5·10 선거 실시 직전인 48년 3월 황해도를 거쳐 월남했다.

함경도 회령에서 월남

서울에 온 다음달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에 입학해 6·25 동란 와중인 지난 51년 8월 부산에서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의 청년 임기준은 다시 남하해 전남 장흥군 대덕면 신월교회 전도사로 부임해 목회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 목사 안수를 받은 뒤 30여년 동안 전남 완도와 장흥 지역에서 목회 사역을 해 왔다.

유신 정권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던 지난 76년 3월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삼일절 기념미사와 기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문익환 등 저명 인사들은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민주주의 회복선언문을 발표한다. 이 사건이 유명한 '명동사건' 또는 '3·1 민주구국선언사건'이다. 유신 정권을 감히 비판하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서슬 퍼렇던 시대에 사회 지도급 인사인 이들의 행동은 그 당시 이른바 대형 시국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박 정권은 선언에 참여한 18명을 정부전복 선동혐의로 구속기소했고, 사건 발생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종교계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유신 시절 광주구국선언 주도

바로 그 해 8월 10일 목사 임기준은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전남정기노회에 참석, 동료 목사들과 시국선언문을 작성, 낭독하게 된다.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광주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찾아와 성명서 낭독을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심한 대로 낭독했고, 집회가 끝나자 교회 밖에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한테 연행된다. 함께 있었던 강신석 목사 등도 함께 구속됐다.

ⓒ 정거배
당시 지방 교회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나중에 사람들이 제2명동사건이라고 이름지었다. 임기준 목사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인권외교를 표방한 미국 카터 행정부의 대외정책 등의 압력으로 박정희 정권이 1년 만에 그를 풀어 줬다. 그 이후 70년대 말부터 지난 93년 은퇴할 때까지 무안과 목포에서 목회 활동을 해 왔다.

5공 정권 시절인 지난 8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목포 상임공동의장을 맡았고, 92년 10월에는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집시법 위반 등으로 당시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었다.

‘아직도 꿈이 있다‘

지난 93년 목회사역에서 물러난 뒤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고문으로 있다가, 3년 전 건강 때문에 경기도 고양에 사는 셋째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해 평생을 함께 해온 부인 강금순씨가 투병 끝에 세상을 먼저 떠났다.

자신의 목회 활동과 민주화 운동의 무대나 다름없었던 목포를 불편한 몸으로 다시 찾은 임 목사는 이날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그러나 내게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조국통일의 산하를 보고 싶습니다. 고향 땅 함경도 회령 냇가에서 버들피리 꺽어 찬송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팔순을 넘긴 임 목사 세월의 궤적 못지 않게 노구를 이끌고 찾아온 후배목사들이 함께 해 행사의 의미를 더해 줬다. 김창수 목사(전남노회장)는 이 자리에서 “임 목사님이 사회 문제 눈을 뜨게 해 준 정신적 스승이었다”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었던 발자취가 회고록에 녹아있다”고 술회했다.

또 목포에서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해온 서창호 교수(목포대 대학원장)는 “하나님의 목자가 부당한 국가 권력과 사회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고 평했다.

회고록은 임 목사와 절친했던 목사가 지어 줬다는 호 천적(天笛)을 풀어쓴 ‘하늘 피리소리’로 이름지었다. 한 노목사의 이 회고록에는 일제치하, 해방공간, 6·25 동란 그리고 유신시절과 80년대, 현대사의 격랑을 헤치면서 살아온 그의 목회 발자국과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