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정 고무신>
<검정 고무신> ⓒ 극단 실험극장
극의 장소인 고무신 공장은 욕망이 들끓는 사회를 대표한다. 공장 사장 김원량은 일본에 빌붙어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고, 젊은 과부 콩점은 부인과 사별한 김원량의 후처로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완장을 찬 오씨는 젊은 과부 콩점과 살림을 차려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고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극단 실험극장의 <검정 고무신>은 일제 말 고무신 공장을 배경으로 인간들의 욕망과 그것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어떻게 충돌하고 손잡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은 김원량의 방에서 시작한다. 콩점은 김원량의 죽은 처가 지닌 패물과 옷가지들을 쓰다듬는다. 첫 장면에서 관객은 콩점의 신분 상승욕을 확인하게 된다.

한복바지에 양복저고리를 입고 완장을 찬 오씨는 김원량에게서 콩점과 살림을 차리는 것을 약속받는다. 김원량은 콩점과 살림을 차리고 싶어하는 오씨의 이런 욕망을 교묘히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돈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고무원료를 몰래 갖다 팔지만 걸린다. 노동자들은 오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오씨는 김원량에게 버림 받는다.

위기훈이 쓴 <검정 고무신>은 2001년 삼성문학상 희곡부문 당선작으로 2002년 극단 실험극장이 초연한 바 있다. 이번에는 손규홍의 연출로 다시 만들어졌다.

<검정 고무신>의 가장 큰 장점은 탄탄한 희곡에 있다. 특히 생생한 인물묘사는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주인공 오씨와 콩점, 김원량을 비롯해 공장 노동자 하나하나까지 독특한 성격과 특징이 두드러져 있기 때문에 이들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위나 경제 여건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대는 좌측에 고무신 공장이 우측에 공장주 김원량의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김원량의 집은 객석을 향해 삼면이 뚫려 있어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객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대 좌측은 노동자들 공간, 우측은 공장주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 고무 원료를 훔쳐간 범인을 색출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나뉜 선을 넘나들지 않는다. 단, 노동자들과 공장주의 중간격인 오씨만이 무대의 좌우를 넘나든다.

의상과 소품도 극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치다. 신발이 자가용과 같은 의미를 지닌 당시를 이야기 하듯 김원량은 흰색 고무신, 버림받기 전 오씨는 검정 고무신, 먹고 살기 힘든 노동자들은 짚신을 신고 있다. 또 완장이라는 어색한 지위 마냥 오씨의 의상은 양복 저고리에 한복바지라는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입고 나온다.

고무 덩어리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 끓게 된다. 끓는 고무액은 틀에 부어져 그 틀에 맞는 고무신이 된다. 사람들의 욕망도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는 용광로 속에 끓고 섞이어 사회라는 틀에 부어져 제 각기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 진다.

<검정 고무신>은 일제 말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욕망이 충돌하고, 손잡는 지금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그런 이야기다. <검정 고무신>은 잘 짜인 대본, 충실한 인물 묘사, 배우와 연출의 성의가 모여 만들어진 수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