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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인사리 방앗간 풍경.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집이 있을까?
ⓒ 박철

사람 얼굴 생김새가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비슷하다. 그러나 얼굴에 눈, 코, 입, 귀를 갖다 붙이면 전혀 딴판이 된다. 눈이 크거나 작은 사람, 코가 뾰족하거나 납작한 사람, 이마가 넓거나 좁은 사람 등등 그것이 한데 어우러지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사람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일체의 것들은 그 존재의 이치가 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존재를 음미해보면 모든 이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철학이니 과학이니 격물치지니 하는 큰 부담을 갖지 않더라도 조금 깊게 사색한다는 자세로 접근하다 보면 존재는 한 겹 두 겹 베일을 벗으면서 내장하고 있던 속내를 다 드러내게 되어 있다.

▲ 오리 새끼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오리야, 잘 먹고 올해 농사 잘 지어다오.
ⓒ 박철

자연에서 흔히 대하는 나무 한 그루, 들꽃 한 송이도 나름의 표정과 특징이 있다. 모든 사물도 저마다 느낌이 있다. 생명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내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게 전달된다. 보는 눈을 책임짐으로써 내 마음이 평화롭고 보여 지는 모습을 책임짐으로써 모든 자연과 더불어 상생한다.

망종(芒種) 지나 계절은 여름 들머리에 접어들었다. 밤에는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울어대고 아침에는 뻐꾸기가 심심치않게 노래를 하고 대낮에는 매미가 합창을 한다. 누가 일러 준 것도 아닌데 자연은 순리(順理)에 의하여 제 할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한다.

▲ 논둑에 망초꽃이 함초롬 피었다. 맑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 박철

이맘때면 저녁햇살이 좋다. 논두렁에는 망초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망초 꽃의 꽃말이 ‘화해’라고 하던데 당장 화해할 것이 무언가. 바람도 적당하게 분다. 모내기를 끝내고 물이 가득한 논에 저녁햇살이 반사되면 그 빛이 감미롭다. 부드러운 생명의 빛깔이다. 어디선가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평화롭게 들려 온다. 들녘엔 생명의 기운이 물씬하다.

그대 기다리는 빈 들녘에 초록비 하얗게 내린다 / 쭉정이 몇 알 남은 들녘 모퉁이에도 / 그리움의 햇살 저 만치 다가오고 / 가시지 않는 미련 속탄 몸부림친다 / (…) 그리움은 죄가 아니라며 / 너그러운 속마음 보인 체 / 지천에 핀 망초꽃 / 한낮 뙤약볕 밀려올 땐 / 흔한 웃음보이며 / 내면의 그늘 숨기려한다. (곽대근 詩. 망초꽃)

▲ 뒤로 바라 보이는 곳이 황해도 연백의 산야이다. 언제 통일 되어 고향엘 갈 것인가.
ⓒ 박철

논배미마다 표정과 느낌이 다르다. 경지정리를 해서 너른 논은 늙으신 아버지처럼 넉넉하고 품이 크다. 작은 다락 논은 아기자기한 게 동생같이 정겹게 느껴진다. 저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논의 표정과 느낌은 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진다. 아침에 볼 때와 대낮에 볼 때와 저녁에 볼 때가 다르다.

이미 모가 뿌리를 내려(着根) 손가락 두 마디 정도가 자랐다. 참으로 대견하다. 자식농사나 벼농사는 자연의 소출을 키운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일이다. 무엇이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농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도리를 심고 돌보는 일이다. 농부의 땀과 수고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오늘도 농부들은 이 사회로부터 천대를 받으면서도 소금땀을 흘리며 땅과 함께 씨름을 하며 살아간다.

▲ 벼 낟알이 단단하게 익어가려면 햇볕이 따끈따끈해야 한다.
ⓒ 박철
▲ 해거름, 날이 어둑해졌다. 비라도 오시려나.
ⓒ 박철

흰쌀을 한자로 백미(白米)라고 한다. 미(米)자는 열십(十) 자에 팔(八), 이(二)자를 합해 88이 된다. 쌀이 밥이 되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88번의 과정을 거친다는 말이다. 그만큼 공과 정성을 들인다. 밥상을 대하면서 쌀 한 톨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와 농민들의 정성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에는 밥 먹다가 밥알 하나 흘려도 다 주워 먹게 했다.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요즘 사람들을 모르는 것 같다.

논은 농부들의 땀과 수고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논은 정직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 숨쉰다. 나는 논을 대할 때마다 소나무 등걸처럼 억센 농부들의 손마디가 연상된다.

▲ 송신탑과 논이 잘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준다.
ⓒ 박철
▲ 농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 박철

논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농부의 고단한 육신과 애환이 깃들여져 있다. 논을 바라보면 더 이상 농촌에서 살아낼 수 없다고 민들레 홀씨처럼 도회로 떠나간 이들도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등허리가 휘어질 만큼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 살 소망이 없자 스스로 죽음의 강을 건너간 이들도 생각이 난다.

논은 이 시대 헛헛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곳이다. 논을 보면서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신명나는 두레패의 풍물 소리에 맞춰 두둥실 춤판을 벌이던 때가 까마득하다. 이제 쌀도 남의 나라에서 돈 주고 사다먹어야 하는 세상이라니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지.

▲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 박철

농사는 단순히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살림의 행위’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귀중한 뜻을 잃어버리고 도대체 무슨 뜻을 따르자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하늘이 준 자기 얼굴을 외면하고 얼굴에 칼을 대는 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눈 쌍꺼풀도 만들고 코도 오뚝하게 세우면 사람도 서양 것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상한 일이다.

해거름, 논둑에 서서 들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개구리는 농부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밤중이면 요란하게 울어대는 것인가. 농부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하게 펴지고 논배미마다 두레패의 신명나는 풍물가락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면 좋으련만,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인가.

▲ 논두렁에 콩이 벼와 함께 익어 간다.
ⓒ 박철
"아용 소리에 흥이 절로 나누나 모풀이 하는 데는 아용 소리가 날개라 보리밥을 먹는 데는 고추장이 제격일세. 조밥을 먹는 데는 된장 둑수리가 날개라. 잎밥을 먹는 데는 토막반찬이 제격 일세. 인절미에 제격은 조총이 날개라. 무시루떡에는 동치미 국물이 날개라 덩기 소리에 호미자루 다 빠지네. 먼저 양반들 듣기나 좋게 가까운데 사람은 보기나 좋게요. 아용 소리에 담배 참수가 되었구료"(교동 들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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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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