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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음산 밭둑 곳곳에는 머구잎이 지천으로 자라나고 있다
ⓒ 이종찬
"푸름아! 할머니께서 널 찾던데?"
"왜에에?"
"그건 아빠도 잘 모르지. 빨랑 할머니께 가 봐."
"보나마나 또 뭘 들고 가라고 하시겠지."
"푸름이는 할머니께서 뭘 주시는 게 싫어?"
"아니."


지난 토요일 오후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도 우리 엄마뿐이야"라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하고 물었더니 장모님께서 내가 좋아하는 쌈과 쌈장을 만들어 놓았단다. 그러니까 큰 딸 푸름이나 작은 딸 빛나가 학교에 다녀오면 외할머니 댁에 보내 갖다 먹으라는 거였다.

그래. 나는 어릴 때부터 쌈을 참 좋아했다. 날 상치나 배춧잎 위에 밥을 얹은 뒤 잘 익은 멸치젓갈로 싸먹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콩잎이나 고구마잎, 호박잎을 밥솥 위에 얹어 적당히 삶아낸 뒤 멸치 대여섯 마리 넣고 잘 끓여낸 구수한 된장국물에 싸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쌈을 워낙 좋아하니까 어머니께서는 나더러 쌈을 너무 좋아하면 나중에 장가가서 딸만 줄줄이 낳는다며 적당히 먹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말씀을 예사로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는 쌈 말고는 따로 먹을 만한 반찬이 없었다. 반찬이래야 시어터진 김치와 막된장, 고추장 그리고 금방 따낸 매운 풋고추가 전부였다.

▲ 머구잎은 삶아서 쌈을 싸먹으면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리 수 있다
ⓒ 이종찬
한 끼를 그렇게 대충 떼우는 것은 비단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오뉴월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우리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쌀알 두어 개 섞인 꽁보리밥을 찬물에 만 뒤 밭에서 금방 따낸 싱싱한 풋고추를 장독대에서 금방 퍼낸 된장에 푸욱 찍어 먹었다. 그도 아니면 시커먼 꽁보리밥에 고추장을 몇 스푼 넣은 뒤 쓱쓱 비벼 먹기도 했다.

"아빠! 이게 무슨 쌈이야? 호박잎 쌈이야?"
"아니. 이건 머구잎이야. 언뜻 보면 호박잎처럼 생겼지만."
"에이! 난 또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 쌈인 줄 알았잖아."


그랬다. 그날 큰 딸 푸름이가 안채에 있는 외할머니댁 부엌에서 들고 온 것은 잘 삶은 머구잎사귀였다. 머구? 그래.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경상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머위'를 '머구 라고 부른다.

머구는 밭에서 따로 키우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머구는 따로 심지 않아도 밭둑이나 풀밭, 담벼락 근처 어디에서나 아주 흔하게 잘 자랐다. 그런 까닭에 머구잎은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제 것처럼 마음껏 딸 수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집밖에 나서기만 하면 지천으로 깔린 게 머구잎이기 때문이다.

▲ 머구잎과 줄기는 춘곤증과 기침, 가래 해소에 특히 좋다
ⓒ 이종찬
머구잎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잎사귀를 삶거나 줄기를 무쳐도 맛이 몹시 씁쓰레한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쓰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한 머구잎 쌈은 씁쓰레하지 않은 것이었다. 간혹 쌈을 싸먹다가 머구잎이 씁쓰레하면 어머니를 흘겨보면서 마구 뱉어내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에라이 빌어물(빌어먹을) 손아! 그동안 핵교를 헛 댕깄나(다녔느냐). 양약은 입에 쓰다는 말도 안 배웠나?"
"암만 몸에 좋으모 뭐합니꺼. 맛이 소태 같은데."
"쯧쯧쯧. 머구 이파리는 씁쓰레하고 향긋한 이 맛으로 묵는 긴데."


그랬다.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씁쓰레한 머구잎을 더 좋아하셨다. 씁쓰레한 머구잎이 춘곤증에도 아주 좋다고 하시면서. 그런 까닭에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일부러 두 가지 머구잎을 삶았다. 그리고 우리들이 먹을 쓰지 않은 머구잎을 기막히게 구분해서 밥상 위에 올렸다.

당시 내가 보기에는 어느 머구잎이 쓴 건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머구잎의 모양이 둘 다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머구 줄기의 색깔을 보면 쓴 것과 쓰지 않은 것을 쉬이 구분할 수가 있다고 하셨다. 머구 줄기에 보라색이 약간 감도는 것이 씁쓰레한 머구잎이라는 것이었다.

"아빠! 맛 있어?"
"빛나 너도 하나 싸줄까?"
"응."
"자~"
"으윽! 퉤퉤퉤."
"허어! 그 녀석 참. 피는 정말 못 속이겠구먼."
"아빠! 이렇게 쓴 걸 어떻게 먹어?"


▲ 머구줄기는 껍질을 벗겨 삶은 뒤 젓갈과 갖은 양념에 무쳐먹어도 그만이다
ⓒ 이종찬
그래. 나도 빛나만 할 때 씁쓰레한 머구잎을 아예 먹지 못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씁쓰레한 그 머구잎 쌈을 한 입 가득 먹는 것을 바라보면서 빛나처럼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어른이 되면 부모님처럼 씁쓰레한 저 머구잎을 맛있게 싸먹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근데 입맛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만 변해가는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씁쓰레하지 않은 머구잎은 아예 먹지도 않았다. 간혹 쌈밥집에 갔다가 머구잎이 나오면 그때 내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머구잎은 원래 씁쓰레한 이 맛으로 먹는 거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비음산 주변 산기슭이나 밭둑 곳곳에는 넓직한 머구잎이 우산대를 쑥쑥 밀어올리고 있다. 장모님께서 지난 주말에 내게 주셨던 그 머구잎 쌈도 우리집 옆 밭둑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그 머구잎일 것이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그 머구잎을 조금 따다가 씁쓰레한 머구잎 쌈을 맛있게 싸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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