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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광주전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들이 13년째 영호남을 넘나들며 무료 틀니 사업을 펼치고 있다. 5일 광주여대 어등관 진료 현장.
대구경북, 광주전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회원들이 13년째 영호남을 넘나들며 무료 틀니 사업을 펼치고 있다. 5일 광주여대 어등관 진료 현장. ⓒ 오마이뉴스 이국언

치과의사들이 무료 '의치(틀니)' 봉사로 13년째 영호남 화합을 이끌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광주전남지부와 대구경북지부는 5일 오후 광주여대 어등관에서 올해 무료의치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광주시 광산구민 15명을 치료했다.

6일까지 이틀 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대구경북지부 회원 15명 등 양 지역 치과의사와 치과 기공사 50여명의 의료진들이 봉사활동을 펼쳤다.

무료틀니 사업이 시작된 것은 영호남 지역감정이 극에 달했던 지난 92년부터. 올해로 꼭 13년째이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YS와 DJ가 각축을 벌이며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양 지역 의료인부터 발벗고 나서자는 취지로 출발한 이 활동은 어느 덧 10년 세월을 훌쩍 넘었다. 한때 반짝하고 식어가던 각양각색의 교류들이 없지 않았지만 10년 넘게 이들은 소리없이 한 길을 걸어 왔다.

92년 '지역감정 극복' 내걸고 출발

당시만 해도 의료서비스가 많이 부족했던 때. 회원들은 특히 의료시설이 넉넉지 못한 농촌지역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 봉사의 손길을 펼쳐왔다. 92년 전남 보성을 시작으로 한해는 광주전남지역에서 다음해는 대구경북지역에서 해마다 양 지역을 돌아가면서 펼쳐 온 이 사업은, 올해 저소득층이 많은 광주시 광산구를 대상지역으로 선정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전남지부는 지난 3월부터 관내 저소득층과 독거 노인들을 대상으로 대상자 선정을 위한 검진활동을 펼쳐왔다. '광주시농민회'와 '열린사회광산시민센터'의 주선으로 이뤄진 몇 차례의 검진 끝에 최종 15명이 올해 무료틀니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대상자들은 지금까지 틀니 장착을 위한 사전 처지를 위해 몇차례 검진과 진료를 받아왔다.

13회째를 맞는 올해는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이 많은 광주시 광산구를 찾아 진료활동을 펼쳤다.
13회째를 맞는 올해는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이 많은 광주시 광산구를 찾아 진료활동을 펼쳤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고가의 진료비 때문에 노인들은 틀니에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 건치 회원들의 소리없는 봉사활동이 노인들에게 다시 씹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고가의 진료비 때문에 노인들은 틀니에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 건치 회원들의 소리없는 봉사활동이 노인들에게 다시 씹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행사장에서 만난 박삼덕(71·광주시 우산동) 할머니는 "어제 저녁부터 꼬박 세 끼를 굶었다"며 치아가 없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잇몸이 아프다보니 우유만 한 모금씩 마셨다"며 "씹지를 못하다보니 무엇을 먹어도 자꾸만 체한다"고 말 못할 고충을 토로했다.

할머니도 의치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 아는 사람 소개로 싼 맛에 전문의가 아닌 사람에게 틀니를 해 본 것. 그러나 잘 맞지 않아 오히려 고통만 겪고 말았다고. 다시 해 보려 해도 돈도 없고 또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고 포기했다는 것이다.

척추 장애를 입은 아들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귀순(78·광주시 우산동) 할머니는 "형편이 안 돼 아예 생각도 않고 살았다"고. 할머니는 "마흔도 안된 나이에 치아가 없다시피 했지만 그저 그렇게 견디며 왔다"며 "식사라고 해야 딱딱한 것은 입에도 못 대고 끼니마다 국거리에 말아 대충 먹어 왔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지부 무료틀니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김성은(39·송정 부부치과) 원장은 "치아는 '오복중의 하나'라고 불릴 만큼 기본적인 생존권의 문제"라고 말한다. 식사를 하느냐 못하느냐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관계된다는 것. 영양결핍이나 소화불량도 문제지만 '이미 늙었다'는 심리적 상실감까지 가져온다는 것이다.

노인들에 씹는 기쁨 되찾아 줘

틀니가 필요한 인구 중 실제 장착률은 20% 정도. 무엇보다 고가의 비용이 부담이다. 틀니 한쪽을 장착하는데 순수 재료비만 100여만원, 장착을 위한 사전 진료과정까지 감안하면 보통 200여 만원이 든다.

건치 회원들의 각별한 정성은 한번의 장착사업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환자들의 이용편의를 위해 최대한 가까운 병원에 전문의를 배정하고 있다. 사후관리 때문이다. 김기원(36)씨는 "틀니는 장착 못지 않게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며 "한번 맺은 인연인만큼 몇년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고 말했다.

올해 장착될 틀니는 15명의 대상자에 위·아래 총 20여개의 수량. 필요한 수에 비하면 비할 바 없이 적은 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씹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이들의 기쁨을 황혼이 아닌 세대들이야 얼마만큼 헤아릴 수 있을까.

"올수록 정감이...계속 하게 될 듯"
광주 찾은 대구경북지부 김세일씨

행사를 위해 광주를 찾은 김세일(50)씨는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고, 지역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

김씨는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양 지부 회원들이 JP와 연합한 DJ 후보냐, 권영길 후보냐를 두고 새벽까지 격론을 펼친 적도 있었다"며 "지금 돌아보면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제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서 10석이나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씨는 "처음엔 말씨가 달라 못 알아듣고 했는데, 해를 넘길수록 정감이 간다"며 "서로 오가고 직접 진료하며 부딪쳐보니 갖는 애정이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지역주의라는 큰 바위덩어리에 비하면 어쩌면 작은 물방울에 불과한 이들의 활동. 그는 "비록 미미한 힘인 줄 알지만 이런 노력이라도 있어야 (지역감정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정치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더 이상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주제가 이슈가 되고 있지도 않다.

"회원들 중엔 간혹 이 사업을 계속해야 되느냐는 얘기도 없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해 사업을 맡은 지역은 실무적인 짐들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런데 상대 지역이 못 하겠다면 그만 할텐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힘들면서도 그만 하자는 말을 서로 안 하거든요."

김씨는 "아무래도 앞으로도 (무료의치 사업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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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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