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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지역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업소에서 빚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대구여성회 부설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는 2일 오전 9시 30분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대구지역 성매매여성 인권유린 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수성구 한 룸살롱 여성들 피해사례 직접 증언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근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소재한 'L' 룸살롱(유흥주점)에서 속칭 '새끼마담'(월급마담)과 '아가씨'(접대부)로 일하던 20~30대의 성매매 여성 5명도 참석했다.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야구용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겪은 인권유린 실태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도중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면 눈물을 흘리고 흐느꼈다.

이날 기자회견은 속칭 자갈마당 등 윤락가에 집산해 있는 1차 성매매 업소와 여성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룸살롱 등 2차적인 성매매 업소 여성들의 피해사례도 심각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9년째 유흥주점에서 일해 온 최아무개(32)씨는 "우리는 업주를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다주는 기계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서 "더는 이렇게 살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2차 성매매 여성들이 고발한 룸살롱 등 성매매 업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사례는 ▲선불금과 외상값 떠맡기기로 인한 부채 ▲업주에 의한 2차 강요 ▲상시적으로 자행되는 업주의 폭행과 폭언 등으로 압축된다.

기자회견에서 한 여성은 "업주가 매일 업소에 별도로 마련된 별채 사무실로 아가씨와 마담들을 불러 2차를 나가도록 강요해 왔다"면서 "2차를 나가지 않으려는 여성들에겐 선불금과 사채 업자들을 통해 빌려준 빚을 독촉하며 2차를 나가도록 해왔다"고 말했다.

선불금 미끼로 빚은 산더미... 손님 외상값까지 빚으로

'선불금'의 경우, 성매매 여성들이 이들 성매매 업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폭행과 폭언 가운데서도 여성들이 항의할 수 없는 빌미가 돼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선불금은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업소에 취업을 하는 경우 업체로부터 미리 빌리는 돈. 하지만 이 돈을 갚지 못하거나 고리의 이자마저 감당하지 못해 사실상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날 여성들이 고발한 L업소도 통상 선불금 2000만원을 사채업자와 업소로부터 일수 등의 방식으로 한 주마다 5%에서 10% 정도의 고리의 이자를 조건으로 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다 업주들은 업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외상값을 갚지 않으면 해당 아가씨와 새끼마담들의 빚으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주로부터 월급을 받는 새끼마담들과 봉사료와 2차비를 받아야 하는 아가씨들은 이러한 선불금과 외상값 떠맡기기로 인해 현금을 만져 보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고백했다.

새끼마담으로 일해온 한 여성은 "업주들은 처음엔 월급을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 돈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월급은 업주들이 직접 선불금을 갚거나 외상값 갚는 데 사용했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 사발면으로 허기채우고..." 빚 때문에 폭행·폭언도 감수해야

2일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대구지역 한 유흥주점 성매매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와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2일 대구여성회 강당에서 대구지역 한 유흥주점 성매매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와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렇게 진 빚은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8400만원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사실상 업주가 성매매 여성들의 '외상 장부'를 정리하고 있어 정작 빚을 진 여성들도 자신들의 빚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잘못된 편견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사실상 빚의 악순환 속에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은 허덕이고 있었다.

"돈이 없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발면으로 허기를 떼우는 경우도 허다했어요. 하지만 매일 술로 속이 나빠져 배라도 채울려고 업소 주방에서 국수를 먹다보면 업주가 국수 그릇을 빼앗아가기도 했어요."

결국 이렇게 불어난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업소측은 여성들에게 일본 등지로 업소를 옮기고 타지역 안마시술소를 권하면서 빚을 갚도록 독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불금 등 빚으로 발목을 잡힌 성매매 여성들은 온갖 폭행과 폭언도 감수해야 했다. 한 여성은 "업주가 항시 우리를 부를 때도 'XX년'으로 부른다"면서 "2차를 강요하거나 빚을 빨리 갚으라며 상시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더이상 피해자 없길...봉사하는 삶 살고 싶어"

비인간적인 대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통상 출근시간인 오후 6시 30분보다 앞서 낮부터 출근을 강요하고 속칭 '외교'(접대)와 외상값 독촉을 위해 손님들에게 전화를 걸게 하기도 했다.

또 잦은 2차로 인해 성매매 여성들은 산부인과 질환에 시달리고 생리를 늦추는 약과 경구용 피임약을 상시 복용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이외에도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여성은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일주일만 쉬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이를 데려다 놓고 일을 하라는 강요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성들은 "공개적인 기자회견까지 나온 것은 단순히 제 빚이 많아서 빚을 피하겠다는 요량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며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여성들이 나오질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여성은 그동안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온 아픔과 마지막 남은 희망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곳에서의 생활과 어려움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엄마나 친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이제는 내가 즐거워할 때 웃을 수 있고, 슬플 때 울 수 있는 인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저도 새끼마담으로 일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동생들에게 나쁜 일도 시켰죠. 그 생활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저와 같은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한편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5월초 대구여성회 부설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로 피해 여성 7명이 인터넷 전자우편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준비됐다.

이들 여성들은 현재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의 보호 아래 모처에서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에 진정 접수·소송 준비 중..."2차 성매매 여성들도 피해자"

한 성매매 피해여성이 자신이 겪은 인권유린 사례를 증언하다 서러움에 북받친 듯 흘린 눈물을 닦고 있다.
한 성매매 피해여성이 자신이 겪은 인권유린 사례를 증언하다 서러움에 북받친 듯 흘린 눈물을 닦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는 현재 이들 여성들의 인권유린에 대해 대구지방경찰청에 진정서를 접수해 놓고 업주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이다.

또 지원센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와 연계해 이들 성매매여성들의 소송지원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원센터는 이번 L룸살롱의 여종업원 착취가 단지 한 업소의 사례가 아니라고 보고, 해당 감독기관의 철저한 실태 조사와 불법행위 근절조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 정박진영 대표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고액의 돈을 받으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거기서 비롯되는 폐해도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박 대표는 "하지만 이번 사례를 보듯 1차 성매매여성뿐만 아니라 2차 성매매여성들도 인권유린과 부당한 대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전반적인 성매매 행태에 대한 대책 마련과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피해자로 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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