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꾸라지
미꾸라지 ⓒ 김규환
나는 꽤나 호기심이 많다. 좋게 보면 호기심인 거고 나쁘게 보면 장난질이 심했거나 다소 영악스러운 데가 있다. 어떤 한가지 사물을 보고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시간을 허비한 일이 잦았다.

그래도 난 한두 가지를 무서워했다. 그게 뭔고 하니 지렁이와 뱀이다. 지렁이는 끈적끈적한 점액질 때문에 싫다. 또한 아무 흙에다 오줌을 누면 지렁이와 소변 줄기가 이어지면 고추가 탱탱 부어 오른다는 터에 오줌 한번 싸는 것도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뱀은 지금껏 살면서 손에 직접 만져 보거나 잡아 본 적이 없다. 강심장 덕분인지 그 외는 혼자 있을 때도 도깨비를 무서워한다거나 공동 묘지를 지나칠 때도 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갖고 놀았던 것은 호박벌에서 개미, 쥐며느리, 땅강아지, 거미, 지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날아다니는 여러 곤충도 잘 갖고 놀았다. 여치, 메뚜기, 방아깨비, 베짱이, 풀무치로 방아를 찧기도 하고 나비가 알을 까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매미는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이 잡고 곤충 채집 한답시고 해부하고 놀았던가. 올챙이와 개구리도 시골에 살았던 나에겐 더 없는 장난감이었다.

가재 잡고 철마다 시냇가에서 된장과 철사만 있으면 종류별로 고기를 낚아 올려 집으로 가져와 닭 모이를 주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이 집안에 쓸 만한가 불필요한가를 기준으로 사물을 바라보았다.

거품이 또르르 또 또르르
거품이 또르르 또 또르르 ⓒ 김규환
골몰하면 신기하지 않은 게 무엇일까. 어린 내 눈에 비친 아주 신기하고 흐뭇한 광경이 가끔 벌어지곤 했다. 때는 장대비가 쏟아진 다음이다. 갑자기 몰아쳐 비 설거지도 하지 못하고 대충 치우고 나서 비가 잦아들면 마당으로 나가본다.

'어? 요것이 뭣이여? 시방 미꾸랑지다냐?'

난데없는 미꾸라지다. 호랑이 장가가던 그 날 마당엔 미꾸라지가 한마리도 아니고 세마리나 떨어져 흙을 묻혀 가며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오메. 요놈 이무기 아녀. 지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다가 그만 떨어지고 말았나 보네. 어떻게 할까? 집어다가 물에다 놓아 줄까?'

퇴비자리 근처에 있던 고인 물에라도 있었으면 다행이련만 토방 바로 앞에서 서성이다가 까딱 잘못하면 닭 먹이가 되고 마는데 걱정이었다. 구워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 손으로 미꾸라지를 들어다가 살릴 형편도 못되었다. 자칫 만졌다가 하늘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고 부정 탈 일을 자초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근데 조것들이 어찌 우리 집 마당에까지 왔는가 말이다. 큰물이 졌을 때엔 2m나 되는 높은 절벽을 풀쩍 뛰어 상류로 오르는 걸 몇 번 보았지만 냇가에서 100m나 멀리 떨어진 우리 집 마당에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서울 보문천에 큰물지다
서울 보문천에 큰물지다 ⓒ 김규환
나는 추리를 해 보기로 했다. 일단 위에서 떠내려 온 건 아니다. 우리 집 뒤나 옆쪽 이웃엔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있을 뿐이고 더군다나 우리 마당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은 없다. 더군다나 그날 비는 소나기여서 10여분 내리고 그치고 말았지 않나. 그렇다고 누가 갖다 놓았을리 만무하고 누렁이가 상처 하나 없이 물어다 놓았을 까닭도 없다. 고양이도 그 생선을 보면 환장을 하니 그럴 위수(偉獸)는 못된다.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방죽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 세상살이가 고달팠거나 때가 되어 하늘나라로 오르던 길에 갑자기 비가 그치므로 힘에 부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께서 '넌 지은 죄가 많으니 이승으로 다시 내려가 도를 더 닦든가 동물 먹이나 되라'고 후려쳤을 법했다.

커가면서도 그런 광경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김없이 호우가 쏟아지면 몇 마리 나뒹굴던 그 미꾸라지. 그 때마다 장어 한두 마리나 미꾸라지를 제외하고 피라미 종류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가 지상에서 공중으로 12km나 되는 먼 거리를 단번에 뛰어오른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늘이 쫙 갈라지듯 번개와 천둥이 치면서 그 빈틈을 비집고 올라가는 것이리라. 사차원 세계-블랙홀을 타면 내가 이해하기 힘든 공간을 자유자재로 날 수도 있고 단박에 수십 리를 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날 비는 앞이 보이지 않게 빗줄기가 굵었다. 양동이로 갖다 부어대도 그리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힘들도록 내리쳤다. 웬만해선 들이치지 않던 비가 마루에 까지 왔으니 미꾸라지는 이어진 물줄기로 오인하고 유유히 거슬러 오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맛보고 말았으리라.

얼마 안 있어 예상대로 미꾸라지는 닭 먹이가 되고 말았다. 손을 써서 골목에다 갖다 놓았더라면 아래로 떠내려갔을 것을…. 우리집 옛 마당은 여전하신가?

빗물. 이런 데를 잘 보시면 미꾸라지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에 미꾸라지가 살아야겠죠?
빗물. 이런 데를 잘 보시면 미꾸라지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에 미꾸라지가 살아야겠죠? ⓒ 김규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