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신의 한지공예 작품 앞에서 활짝 웃는 박공숙씨.
자신의 한지공예 작품 앞에서 활짝 웃는 박공숙씨. ⓒ 한성희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육체의 불편함을 떠나 사회의 부당한 시선과 편견 때문에 더욱 힘들다.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가난은 필수다. 더구나 여성이라면 수없는 난관을 헤치며 싸워나가야 한다.

그녀는 예쁘다. 140cm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작은 키의 그녀는 거의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왔지만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답고 굳세다. 한지 공예가이며 국악인인 박공숙(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씨는 부산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기만 돌보는 사람을 따로 둘 정도로 애지중지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6살 때 그녀의 불행이 찾아왔다.

그녀를 돌보던 처녀가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업고 있던 박씨를 거꾸로 떨어뜨린 것. 등 뒤의 연약한 척추뼈는 함몰됐고 이로 인해 20살이 될 때까지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병상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 겨우 걸음을 걷게 될 무렵 집안 가세는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박씨에게 들어간 막대한 병원비 때문이었다.

병상에 누워 자신의 불행에 자학하고 눈물 짓던 그녀는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세상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자신 때문에 기울어진 집안과 딸의 불행에 걱정이 떠나지 않던 부모님에게 뭔가를 하고 싶었다.

"병으로 오랫동안 병원과 집에서 식구들의 수발을 받았습니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자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동생들의 학업이 끝날 때까지 빨래며 밥을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동생들의 학업이 끝나고 직장을 잡게 되자 박씨의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게 됐다.

받은 것은 남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좋다

손재주가 뛰어난 박씨는 서울에서 따로 방을 얻어 뜨개질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독립의 길을 걷게 됐다. 한지공예며 동판공예, 경기 민요를 배운 것도 이때부터다. 세상에 빚을 졌으니 자신처럼 불우한 장애우들에게 자활을 길을 가르치고 싶어 배운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장애인들은 움직이는 시간이 적고 시간이 많으니 꼼꼼하게 만드는 일을 잘해요. 그래서 동판공예를 가르쳐서 자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현재 고교생 딸을 둔 그녀에겐 선도 많이 들어왔다. 명랑하며 부지런하고 재주가 많은 그녀를 눈여겨 본 집주인이 현재의 남편을 소개시켜 줬다. 선을 본 중에 제일 조건이 나빴던 남편을 택한 이유도 그녀답다. 조실부모하고 어릴 때 병으로 몸이 불편하며 가난한 남편에게 가서 자신이 돕겠다는 생각한 것이다.

결혼 후 파주시에 정착했다. 생계를 위해 작은 식당을 경영하면서 장애우들에게 동판공예를 가르치는 일부터 그녀의 봉사 활동은 시작됐다. 지금도 그녀는 항상 바쁘다. 양로원 무료 공연과 민요 가르치기, 독거노인 위문공연 등 봉사 활동과 파주시여성회관에서 경기민요와 장구 강사로 출강하는 등 쉴 틈이 없다.

"받은 것은 남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병을 얻은 후에 깨닫게 됐어요."

그동안 박씨에게 경기민요를 배운 제자들은 보득솔경기민요를 만들어 박씨와 함께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엔 한지공예가로서 프랑스에 가서 전시회와 국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

어려서부터 병상에서 생활해 학교에 갈 수는 없었지만 병상에서 가정교사에게 공부를 배웠다는 그녀는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쳤다. 그리고 지금도 성균관대에 나가면서 국악 공부를 계속할 정도로 배움의 욕심도 크다.

"우리 것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젠 국악 보급에 더 정성을 들일 작정입니다."

지난 3월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이은주(72) 선생으로부터 전수자 자격증을 받았다. 민요를 시작한 지 18년 만에 이룬 성과에 박씨는 감개가 무량하다. 아직도 그녀는 가난하다. 그래도 한지공예방을 열어 남편에게 사장 칭호(?)를 만들어 준 것과 선생님 소리를 듣는 자신은 성공한 것이라고 웃는다.

"어머니는 항상 못사는 내가 제일 걱정스러웠지만 지금은 우리집에 오시면 젤 맘이 편하고 좋다고 해요. 이 정도면 인생 성공한 거죠."

나이는 비밀이라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지만 긴 생머리에 단아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 젊다. 자신의 어려움은 밝게 웃으며 넘겨버리고 타인을 돕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박씨의 이런 삶이 더욱 진실하고 예쁘다고 주위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