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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는 권인숙 교수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는 권인숙 교수 ⓒ 김윤섭
1987년, 그 무렵 우리는 누구나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다가 문득 울었을 것이다. 한 젊음이 이렇게 고개를 물 속에 처박힌 채 죽임을 당해야 하는 현실에 가슴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한 여학생의 당당한 모습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독재정권을 향해 푸른 화살로 자신을 날린 권인숙, 그가 있었다.

대학생이던 그가 대학생의 선생님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9년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위를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지금 명지대학교 강단에 섰다. 그가 앞에 앉으니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는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에 권인숙 교수가 있었다. 그는 책임연구원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군대내 성폭력 문제의 실태를 다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던 군대, 터부시되어 온 성 문제. 이번 조사는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발전했다는 징표가 될 수 있을까? 또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제가 군대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제 학위 논문 주제가 군사주의(그의 박사학위 논문제목은 ‘군사화된 여성의식과 문화’)와 밀접한 것이니, 새로운 연구 주제로도 아주 관심을 끄는 것이었지요.”

성폭력에 대한 사병들의 다양한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상하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추행 문제는 군대에서도 더는 덮고 지나칠 수 없는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그간의 과정을 짚어 가며 설명한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성폭력 실태에 관해 얼마나 정확한 자료가 나올까 염려했습니다. 무엇보다 국방부의 응낙을 받는 게 너무나 큰 과제여서 설문조사 환경을 위한 조건을 타협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실태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사병들이 훨씬 자유로운 상황에서 조사에 임했더라면 피해나 가해 경험에 대한 인정수치가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원들의 이름과 함께 조사 보고서 앞장에 인쇄된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이랄까, 뭔가 마음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한 귀퉁이를 그가 지키고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하하하… 적어도 국방부가 협조하는데 제 이름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권인숙... 사회화된 고유명사

그의 이름 ‘권인숙’은 그냥 이름이 아니다. 부천서 사건의 ‘권인숙’은 도덕성, 정직성, 역사성 그런 의미를 지닌 채 우리 곁에 있어 왔다. 또한 그의 여성성은 단순한 성이 아니다. 그의 행동은 그의 여성성을 사회화, 객관화시켰다.

그 어떤 용기보다 더 용감한 행동, 그의 행동이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트는데 더할 수 없는 힘을 보탰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하지만 ‘용감한 여성’인 그의 답변은 명쾌하다.

“저는 사회통념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어요. 그러니 굳이 고민하지 않았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요. 여성의식적인 게 깊었다기보다, 다른 여성들 누구라도 고문을 당했다면 나처럼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줄 알았어요.”

개인보다는 사회 역사를 중심에 두고, 그 가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런 일이 아니었겠냐는 말이다.

“내가 나를 위해서 산다는 개념보다는 그냥 역사였지요. 이십대의 감성,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당시 저의 삶이었지요.”

막 마흔이 된 그가 자신의 이십대를 금방 떠올리며 말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모든 권위에 대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오는 반항심을 어쩌지 못하는 아이였단다.

“삶의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지요. 차별을 심하게 하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은 드러내 놓고 했어요.”

자기 삶에 대한 욕구와 성공한 이들에 대한 경멸이 뒤섞여 있던 청소년기의 권인숙은 대학시절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통해 다시 변화했다.

기득권을 버리고 옳은 일, 대의와 명분을 지키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고 실행했다. 그래서 전공인 의류학을 공부하는 대신 봉제공장과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유난히 또렷한 말씨와 큰 키 때문에 눈에 잘 띄었다. 위장취업자 신분을 숨기는데 그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사소한 데 신경 써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그에게 있어 대의명분을 따르는 일이었고, 여성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이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그에게 있어 대의명분을 따르는 일이었고, 여성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선택이었다. ⓒ 김윤섭
그는 1994년에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그때의 결정을 ‘자신이 가장 잘 내린 선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노동인권회관을 만들어 노동문제와 더불어 여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신의 결혼생활로 여성문제는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로 다가왔다.

“너무나 나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지요.”

여자는 이래야 하고, 또 이렇지 않으면 안 되고 하면서 가해지는 일방적인 틀,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납득도 안 되고 타협도 되지 않았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공부였지만 그에게 공부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명분에 휩싸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유일하게 선택한 길이지요. 사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사실 그가 역사적인 명분이나 대의에 시달려 당연히 지쳤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제 더는 명분이나 대의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진작 자신만의 길로 갔더라면 뭐가 되고 싶었을까?

“패션 디자이너요.”

발랄하게 대답이 나온다. 공부하던 중에 파리에 들렀다가 오랜 상념에 잠겨 본 적이 있단다. 딱 한 번. 정말 그 길로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도트 프린트의 스커트를 입은 그의 옷매무새가 더욱 센스 있게 보인다.

그는 홀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열 살 된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만 하는 엄마를 봐 온 탓인지 자기는 공부 아닌 뭔가를 해 보고 싶다고 선언하는 그의 좋은 친구다. 딸과 여성적 연대를 강조하는 그는 ‘엄마들이 도전해 주지 않으면 딸들이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아이에게 당부하는 말은 ‘사소한 데 신경 써라. 남을 배려하라’다. 살아가는 데 있어 참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20년 전 부천서 사건은 지금 그의 삶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완전히 극복한 것인가?

“피해의식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요. 타인의 기대감이 주는 부담, 그 피해의식이 많았고 지금도 민감한 부분이 있어요. 부천서 사건과 관련해서 나는 피해자인데 감수성 없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 있거든요. 가령, 군대 성폭력 조사를 한다고 할 경우 내가 가해자와 만나면 그때의 감수성과 연결돼서 멜랑콜리하게 뭘 느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런 신파는 좀 지겹지요. 그 사건의 주인공이었고 그 사건에 대한 시대적, 역사적 책임감은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거든요.”

그는 가능하면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쉬는 날은 그냥 아이하고 놀다가 TV연속극을 뚫어지게 본단다. 사진기자와 다시 일정을 맞추면서 그는 다음 주가 중간고사 기간이라 수업이 없다며 학생처럼 좋아한다.

초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밖에서 바람이 싱그럽게 불어오고 있었다. 그 바람 사이로 권인숙 교수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 위에 역사 속의 ‘권인숙’이 큰 나무로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와 그 나무 모두 오랫동안 싱싱하게 큰 가지를 펼쳐나갈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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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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