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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경남 진주에 소재하고 있는 경상대학교와 창원에 위치한 창원대학교가 대학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 각서의 체결은 한국의 고등 교육 체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통합 노력이 한국 고등 교육의 국제 경쟁력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IMD 세계경쟁력연감>은 한국의 대학 경쟁력이 비교 대상 60여 국가 중 꼴찌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이 그동안 국제적으로 자랑했던 고등교육 붐은 그 부실함 만큼이나 갖가지 부작용을 양산하였다. 특히 고학력에 걸맞는 '품위 있는 직업' 추구로 인해 청년 실업 증대와 중소기업 인력난이라는 모순된 결과를 초래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다.

경남의 거점 국립대학교인 경상대학교가 도청 소재지인 창원에 소재하고 있는 창원대와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노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학부의 편제정원 1만5천명의 경상대학교와 8천명의 창원대학교를 합치면 학부 정원만 2만3천명 정도가 되는, 학부 편제 정원이 1만7천명인 서울대학교를 6천명이나 능가하는, 한국 최대의 대학이 탄생된다.

대학 통합은 여러 가지 효과를 수반한다. 필연적으로 중복 보직의 축소, 중복 학과의 통합, 학생 정원의 재조정, 행정 인원 재배치, 각종 교육·연구 시설의 통합을 통한 고정 비용 절감, 각종 시설과 연구에 대한 중복 투자 해소와 같은 다양한 효율성을 초래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통합의 효율성에만 관심을 갖다보면 두 대학이 통합하려는 진정한 이유를 놓치기 쉽다. 경상대학교와 창원대학교가 통합하는 진정한 이유는 경남 지역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대학교를 탄생시키기 위함이다.

최근 서울대학교의 정운찬 총장이 "서울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와 같은 대학이 대여섯 개 더 생겨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경상대학교와 창원대학교의 통합 취지는 "서울대학교와 같은 대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감히 말하거니와 "서울대학교를 능가하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경상대학교는 생명과학과 항공공학 분야에서, 창원대학교는 메카트로닉스 분야에서 이미 각각 한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새로이 탄생하는 (가칭)경남국립대학교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우리가 몽매에도 그리는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대학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국립대학이 나타나려면 다음 네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국제 경쟁이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갖추어야 한다. 필자가 종사하는 정치학 분야의 교수 수를 예로 들면, 하버드의 정치학과 전임교수 수는 현재 57명이고, UCLA 정치학과는 51명이다. 그런데 경상대학교의 정치외교전공 교수 수는 5명뿐이다. 창원대학교의 국제관계학과 교수와 합쳐도 9명이다. 5명더러 50명과 경쟁하여 이기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통합된 이후에도 국제적 수준을 보장하는 대규모 충원이 필요하다.

둘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성화와 대폭적인 투자의 필요성이다. 이미 성립된 고등교육의 시장 경쟁 체제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면, 대학 내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특성화와 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자격 요건의 강화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설치하여 경쟁력 있는 분야와 교수에게 더 많은 자원이 부여되는 체제를 설치하고 교수들은 이를 감내해야 한다.

셋째로 현행 대학 교육 체제의 모순적 구조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방화 시대를 주장하면서도 서울대는 서울대설치령으로, 여타 국립대학들은 국립학교설치령으로 다루는 것은 중앙집권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폐지라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동급의 성격을 지닌 국립대학들은 동등하게 대우하는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고등교육의 특성화를 추구하는 대학 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작년에 교육부총리는 지역에 7∼8개의 국립대학교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옳은 방향이다. 사립과 국립, 교육 중심과 연구 중심으로의 분업과 특성화는 한국 교육 체제 전체의 효율성을 위해 불가피하다.

통합의 성공을 위해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

경상대학교와 창원대학교의 통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려면 해당 대학들의 구성원간에 합의도 중요하지만 교육 당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로 지적되어야 할 점은 대학의 통합을 기업의 통합에서처럼 비용절감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지적한 바처럼, 통합으로 양 대학은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경상대학교와 창원대학교가 합치더라도 교수 수는 서울대의 60.2%에 지나지 않게 된다. 통합 이후에도 학생 대 교수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교원 산출 기준을 발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둘째는 재정 감축 요인에 대한 보전이 약속되어야 한다. 통합의 경우에 장기적으로 학생 정원의 감축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에 교원들의 처우는 개선이 아니라 악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우려의 해소책으로 기성회계의 감소분을 일반 회계로 이전해 주는 방안 등도 생각해 봄직하다.

셋째는 모집 단위에 자율성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교들은 학부 혹은 학과군으로 신입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그런데 양 교의 모집 단위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현행 학부제를 유지한 채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경상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는 한문학과와 학과군이 되어있는 데 반하여, 창원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는 사학과와 학과군을 이루고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이를 일단 풀어야 한다.

교육 분야의 유치산업보호론

국제적 관점으로 보자면 경상대학교와 창원대학교의 통합은 고등교육 산업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은 교육 산업에서의 국제 경쟁력도 자동차산업이나 금융산업에서처럼 유치산업보호론이 적용되는 분야라는 점이다. 도저히 외국의 고등 교육 기관과 경쟁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갑자기 국제 교육 시장에서 경쟁하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우리가 자동차와 TV와 반도체에 막대한 자원을 집중시켜 마침내 이 분야들이 세계적 경쟁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게 만든 것처럼 고등교육 부문도 집중적인 투자를 체계적으로 진행하여 멀지 않은 장래에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주체, 특히 국립대학 교수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실로 지금까지 우리가 안주해온 바를 크게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지녀야 한다. 공정한 경쟁 체제의 도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2020년이 되면 한국 대학교의 미충원율이 60%를 상회할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가린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심기일전하여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국립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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