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조현미씨 재판이 있었던 법정. 배심원단이 최종의견을 모으기 위해 재판이 휴정되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법정이 텅 비어있다.
ⓒ 조명신
재판에 대한 첫 제보를 받은 것이 지난 3월 29일이었다. 제보자는 피닉스에 거주하고 있는 조현미씨의 친구였다. 그는 이메일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미국 이민자들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살해되는 사건이 줄지 않고 있는데, 이 사건을 <오마이뉴스>에 실어 주시고 앞으로 전개되는 재판 과정을 올려주시면 이민의 실상을 정확히 보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

관련
기사
재미동포 조현미씨 살해사건 범인에 유죄 확정

그 글은 1년 전 한 뉴스를 상기시켰다. 스쳐가듯 CBS뉴스에선가 한인 여성의 피살 소식을 들었고 그 주말 한인신문을 통해 전모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움도 잠시 '랄렛'이라는 지명이 생소했던 것만큼 그 사건은 오래지 않아 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다 메일을 받았다.

그 오래 전 기억 너머에 있던 사건의 재판이 이제서야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이민의 실상을 정확히 보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에는 의문이었지만, 이국에서 안타깝게 피살당한 이를 알리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원래 첫 재판 예정일이었던 4월 5일에는 피고인측 증인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한달이 연기되었다. 미리 연락을 받지 못해 댈러스 카운티 법원까지 갔던 나는 헛탕을 쳤고 한달을 더 기다려서야 재판을 참관할 수 있었다.

재판의 첫 주간을 마무리하면서 피고인의 유죄 확정 기사를 올렸고, 두번째 주에는 피고인의 사형 선고 소식을 알렸다.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마도 형사사건의 재판을 처음 참관했기에, 더구나 그것이 사형과 관련된 탓이었을 것이다.

재판정 앞 복도에서 처음 만난 피해자의 언니에게 잔혹했던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질문을 던지는 일처럼 곤혹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피고인을 쳐다보기가, 피고인의 가족을 마주치기가 겁이 난다며 법정에 발 들여놓기조차 힘들어하는 그녀였다.

힘들게 들어간 법정에서 동생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끼는 희생자의 가족을 보는 것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검사와 변호사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고,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배심원단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공을 들였다.

최후변론에서 검사는 "사형은 피고인 자신이 선택한 일의 결과"라고 했고, 변호사는 "종신형으로도 사회로부터 격리가 가능한데 사형은 과하다"고 했다. 그러다 결국 피고인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고 사형선고와 함께 소리를 질러가며 차디찬 감방으로 끌려갔다.

이로써 재판은 끝났다. 배심원단은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방청석을 메웠던 사람들도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어느 배심원의 말처럼 어쩌면 모두에게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는 피해자 가족의 말처럼 사람들 모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복잡한 감정의 교차를 경험했던 것 같다.

마지막 기사를 올린 후 익명의 이메일을 한통 더 받았다. "역지사지로 미국인이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면 해외 토픽 감인데요. 우리는 왜 이리 조용해야 하는지요.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번 기사에 어떤 분이 의견을 올린 것처럼 "미국에서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한데 안타깝게 한인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메일의 그분처럼 재미동포들이 주류 미국인 밖에서 "당하고" 사는 것인지. 그러나 이런 정서를, 그 누구도 단순히 '피해의식'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현실'과 '한인의 현실'사이 어딘가에, 앞서 첫 제보자가 말한 '이민의 실상'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