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부산 진구 전포동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 정연우
부산시 진구 전포동에는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다. 그곳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자원 활동가들이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방문해 그들의 하루를 들여다 보았다. <기자주>

5월 9일 일요일 오후.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이 자리하고 있는 부산시 전포동 송광빌딩에는 드문드문 외국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의 미등록(불법)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이곳에는 일요일을 맞아 무료 진료소가 열렸다. 4층에 위치한 작은 진료소에는 10명 정도의 이주 노동자들이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을 처음 맞는 사람은 외국인노동자모임의 터줏대감인 구교헌(46)씨. 5년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이주 노동자를 돕는 자원 활동가를 모집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구교헌씨. 중학생 아들과 함께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아들은 대학생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구교헌씨도 이곳에서 이주 노동자로부터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 이곳에서 5년째 자원 활동가로 봉사하고 있는 구교헌씨. 그는 이곳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할 만큼 갖가지 일들을 꼼꼼히 해내고 있다.
ⓒ 정연우
이날도 구씨는 의사 선생님들이 오기 전에 진료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래도 이주 노동자들이 그를 보며 반갑게 "짜짜~(아버지라는 뜻)"라고 부르자 구씨도 농담으로 응대했다.

지금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구씨는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며 "내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즐거움을 얻고 간다"고 말했다.

오후 1시가 되자 러시아인 이주 노동자가 제일 먼저 진료를 등록했다. 1년 전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러시아인 이주 노동자 세르게이(52)는 복통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한다. 세르게이는 불행히도 공장 프레스 기계에서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을 받기는 했지만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해 완치가 되지 않았다고. 한국에 오기 전 세르게이는 클래식 기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현재 세르게이는 한 전기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하루 빨리 돈을 벌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 치과는 시설과 장비가 있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치료가 가능하다.
ⓒ 정연우
세르게이의 복통을 진찰한 진료실의 김성희씨. 김성희씨는 "아는 의사의 소개로 처음 이곳을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료실은 간단한 진료와 몇 가지 약만 지급할 뿐이지 수술과 같은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수술이 필요할 때는 이곳에 봉사하러 오는 의사 선생님들이 자신의 병원에 데려가서 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내과와는 달리 치과는 웬만한 치료를 할 수 있어 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났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야기

▲ 중국인 노동자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찾아 왔다.
ⓒ 정연우
오후 2시 5층 외국인 인권 모임 사무실에 한 무리의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찾아 왔다.

그들은 상담실장인 이미란씨에게 두툼한 흰 봉투를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란 실장은 한사코 거절을 하며 "마음만 받겠다"며 그대로 돌려 주었다. 흰 봉투에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이유인즉 이미란 실장이 중국인 노동자들이 모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것을 상담과 노동청 진정을 통해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감사의 뜻으로 갹출해 약간의 돈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돈으로 음료수와 과자를 사와 이주 노동자들과 자원 활동가가 함께 하는 작은 파티를 열었다. 필리핀, 인도 등 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침 봉사 나온 수녀님들도 건물 옥상에 마련된 옥탑방 부엌에서 부침개를 내오셨다.

베트남에서 왔다는 응옥(34)은 "일요일마다 이곳 모임에 온다"며 "예전 회사에서는 아플 때 병원에도 가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무료로 진료받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97년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는데 현재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다"며 "어떤 한국 회사는 미등록 상태인 것을 알고 월급날에도 임금을 일부러 다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시간 외 근무도 강제로 시켰다"고 털어놓았다.

▲ 베트남 노동자 응옥이 컴퓨터 앞에서 자원활동가로부터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 정연우
응옥은 "지금 일하는 곳은 우리들을 같은 동료로서 인정해 주고 있어 행복하다"며 "요즘 이곳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으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응옥은 "한국에서 부인도 만났다"며 "지금 임신 중이라 베트남에 가 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수줍게 말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을 운영 중이다. 응옥도 그 교실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설에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이주 노동자들의 배움을 해결해 주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인터넷에 접속을 하려 해도 자주 연결이 끊겨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했다.

이미란 실장은 "전국에 대략 37만 명 정도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는데 그 중 10분의 1이 부산 공업 단지인 사하구와 김해에 있다"며 "외국인 인권모임에 오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가 지금 미등록 상태라 단속이 떴다 하면 속수무책"이라고 밝혔다.

▲ 결혼을 앞둔 자원활동가 이도희씨가 베트남 노동자 웬도우에게 청첩장을 보여주면서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 정연우
이곳 자원활동가 출신의 이도희(27)씨도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도희씨는 얼마 후 자신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노동자 웬도우(36)에게 청첩장을 손수 건네며 "결혼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웬도우도 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답례했다.

▲ 자원활동가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 정연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실시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에 대해 특별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과연 몇 명이 '불법'에서 '합법'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산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은 인권 사각 지대에 놓인 부산, 경남 지역 이주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 보호 활동과 이 활동을 함께 하는 한국인들과 이주노동자간의 신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성숙해 나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1996년 10월 28일 발족하여 사무실과 무료 진료소, 강당이 있는 48평의 공간이 마련됐다. 그리고 2001년 11월 문을 연 이주노동자 교육문화공간인 한울타리도 같이 운영중이다.

식구들은 정귀순 대표를 비롯해 김민정 사무국장, 조문희 상담실장, 이미란 행정실장, 이인경 상담차장이 상근하고 있으며, 현재 후원회원 200명과 자원활동가 60명이 구성되어 있다.

홈페이지) http://fwr.jinbo.net 연락처) 051-802-343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