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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세 식구가 어머니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그날은 전형적인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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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의 어느 날,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올라섰던 그 날과는 달리 사방은 맑고 따뜻한 바람과 함께 연록색의 싱그러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머니는 고요한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이제 제법 잔디가 활착된 듯 봉분 위에 풀잎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비석 옆에도 어린 나무 한 그루가 한껏 맑은 모습으로 심어져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이 정갈해졌습니다.

가지고 간 술을 따르고 아내와 함께 맨 땅 위에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이어 아들 녀석까지 절을 올리고 나서 이곳저곳에서 산일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전 어머니의 말투를 흉내 내며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세상살이를 힘들어 하는 동생이 떠올라 어머니께 중얼중얼 청원을 드렸습니다.

"엄니, 성주 좀 살펴주세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제발 이끌어 주세요."

생전의 어머니셨으면 "썩을 놈의 새끼"라며 욕이라도 하셨을 텐데 아무런 대꾸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승의 대화로는 의사 소통이 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최근 동생 녀석의 힘 없는 목소리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라도 매달려야할 만큼 나를 다급하게 만든 게 사실입니다.

사실 어머니를 땅 속으로 모신 후 산소를 찾은 게 이번이 꼭 여섯번째입니다. 많다면 많을 정도로 어머니를 찾게 된 것은 어머니의 산소가 집에서 도보로 1시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가까이 계시니 걸음이 잦을 수밖에요.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꿈속에서라도 어머니의 하직 인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더러 사람들은 꿈에 나타나지 않아야 망자가 편한 것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래도 50년을 함께 산 어머니를 어찌 쉬이 보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신 지 3개월이 지나도록 꿈속에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묘소를 자주 찾으며 어머니께 꿈속에 현몽해 주시도록 빌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밤 꿈에 거짓말처럼 나타나셨습니다. 확실한 형용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사셨던 우리 아파트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반적인 집이었습니다. 사위가 어두워지는 어스름한 퇴근길.

어머니는 앞문에서 나를 기다리셨고 그것을 몰랐던 난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안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앞문을 나섰습니다. 아, 어머니가 그곳에서 나를 보며 마치 봄날의 꽃같이 환하게 앉아 이를 드러내고 웃고 계셨습니다. 그 안에는 번민이나 고통, 생전의 슬픔은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식을 만난 부모의 기쁨에 찬 반가운 얼굴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내 업어달라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가뿐히 업고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장면까지 생각납니다. 그리고는 시나브로 꿈이 깼습니다. 이게, 과연 무얼 의미하는 꿈일까요?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제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편하다"거나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잘 있다"거나 욕심을 더해 "이곳에서 너희들을 잘 살게 해주마"라는 말들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꿈 속의 환했던 어머니의 웃음과 내 등에 업혔던 모자의 살가운 광경을 생각하면 어머니는 그곳에서 편하게 계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버이날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만 이제 올 어버이날부터 영영 어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꽂아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꿈에서 보았던 넉넉한 웃음과 어머니를 업어 드렸던 그 모습으로 카네이션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병환 중일 때 어머니는 제가 누구냐고 물으면 힘없는 낮은 목소리로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머니.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지 못하는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다는 심정으로 퇴근 때마다 사랑으로 되뇌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 안의 북소리로 삼아 가만가만 울려 보겠습니다. "내 아들 왔냐. 어디, 손 한 번 잡아보자"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어머니, 그곳에서나마 부디 존체 강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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