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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악을 써대는 듯한 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심장을 울리는 듯한 심각한 새소리가 학교 울타리 너머의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비는 시간을 이용해 한가롭게 봄볕을 쬐고 있던 조 선생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심상치 않은 새 두마리를 보았습니다. 한 마리는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에 양 날개를 걸쳐 최대한 자신의 몸을 크게 보이려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또 한 마리는 주변을 빙빙 돌며 악을 써 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앞에 턱이 삼각형인 뱀 한마리가 아기 새의 날개를 물고 툭하고 떨어졌습니다. 우리들은 그때서야 사태를 알아차렸습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침범하고 아기 새를 물려는 뱀을 향해서 어버이 새들이 죽을 힘을 다해 짖어댄 것입니다. 그 소리는 노래하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생사의 갈림길에서 필사적으로 내지르는 어버이 새들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플라스틱 장난감 삽을 들어 두 번 내리쳤더니 뱀은 스르르 꼬리를 끌고 도망갔습니다. 그 순간, 그렇게 짖어대던 새들이 일순 조용해졌습니다. 그 정적 후에 새 한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우리들의 바로 위, 손을 뻗치면 잡힐 듯한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새는 우리가 자기들을 도와 줬다는 것을 아는 듯 했습니다. "저는요, 당신들이 우릴 도와주신 것을 알아요, 감사해요"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새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아는구나"하면서요.

뱀에게 물린 아기 새는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도 눈초리가 똘망똘망한 것으로 봐서 잘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내 어버이 새들이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주위로 모여든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어이, 거 양호실에 데려가 치료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우유도 좀 먹이고."
"어머, 새가 우유를 먹을까요? 호호."
"그런데 어떡하죠? 우리 곧 퇴근하는데…. 그러지 말고 아기 새를 어미 새 있는 곳에 올려 줘요."

결국 트레이닝복 차림의 날씬한 김 선생이 흰 장갑을 끼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나무가 휘청거려서 혹 새들의 보금자리가 훼손되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니다. 잠시 후 김 선생이 가지를 헤치고 새들의 집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나무 아래서 검은 비닐 주머니 속에 아기 새를 살짝 넣어서 김 선생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때, 또 한번 우리들을 경악케 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아-악, 아-아-악." 안타깝게 이어지는 신음 같은 어미 새의 울음 소리였습니다. 어미 새의 울음 소리는 흡사 "우리 아기가 검은 주머니 속에 들어서 올라오고 있군요. 조심 조심해서 우리 품으로 돌려 주세요"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아기 새를 둥지에 정착시키자 새들은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우리의 작업은 뱀이 무서워 접근하지 않는다는 명반을 나무 밑에 뿌리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어린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을 지니고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또 새들이 소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안타까운 비명이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 놓을 듯이 맑고 명랑하게, 청아하고 빠르게 노래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경이로움이란! 새들이 내는 소리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안타까움과 안도감을 그들은 소리로써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 우리 앞에 박씨 하나가 떨어질 거에요. 그럼 나눠 가집시다." 이런 농담을 하며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작업을 했던 그 곳에는 가녀린 목을 축 늘어뜨린 아기 새의 주검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 두마리가 어디선가 소리없는 기척을 내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리들은 부모 새들이 아기 새를 마음껏 조상할 수 있게 하자며 어린 새를 가만히 눕혀 두고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때, 둥지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양호실로 데려와 상처를 좀 치료하고 보낼 것을…. 왜 우리는 뱀이 다시 침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 명반을 뿌리면 뱀이 오지 못한다는 말을 100% 믿었는데. 그건 잘못된 상식일까? 만약 내 자식이 어떤 곳에서 불의의 강도를 당했다면, 강도가 물러갔다고 해서 다시 그곳에 놔둘 수 있었을까? 맞아, 우리가 너무 어리석었어."

아기 새의 죽음이 흡사 우리의 잘못인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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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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