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문화재보호법상 50년 이상이 되면 지정문화재 내지 등록문화재로 등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 내 근대 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 언론보도가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서울시 문화재과 허대영 학예사(근대문화유산 담당)는 "현재 학술기관에서 용역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용산기지 내 일제시대 건물이 있다는 내용은 얘기를 들어 알고 있고 사진자료도 있지만 현장 접근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미군부대 내 문화재 지정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오는 6월에 용역 결과 보고서가 나오면 가치 있는 것은 시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김지성 주사는 "(용산기지 내 근대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은) 신문지상에 나온 것만 가지고 취한 것"이라며 "미군 관할지역에 들어가 조사를 하려면 협조가 필요한데 만약 그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조사를 아예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월 초 현장조사를 위해 협조요청을 했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서울시와 중앙정부는 용산 미군기지 반환 이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기지 내 건물을 철거하고 공원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고건 대통령권한대행 지시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용산기지 공원화 기획자문위원회'를 설치해 뉴욕 센트럴시티와 비견되는 도심공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지성 주사는 "(반환 이후 기지 용도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이 나올 수는 있지만 제반적인 여건을 검토해 나올 사항"이라며 "한국에 반환되지 않은 상황이고 조사 대상지에 대한 문화재청의 의결도 나오지 않아 근대 문화유산 보존 내지 공원화 방안에 대해 논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 용산 미군기지 반환 후 국립공원화…문화유산은 헐겠다?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천문학적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할 가능성이 농후해진 가운데 국방부는 용산기지를 매각한 자금으로 이전비용을 충당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매입 1순위는 서울시가 된다.
국방부 공보과 관계자는 "용산기지 반환 후 건물과 부지는 국방부 소유가 된다"며 "이를 민간 매각해 주한미군 이전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우선적으로 지자체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김성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서울시나 국방부의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용산기지 내에 존재하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천기원 공간환경위원회 간사도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 반환이후, 용산 고속철 역사 주변에는 첨단 산업 단지를 조성하고 미군 기지 일대는 민족공원으로 만들어 생태 축을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만약 미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한다면 국방부는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용산기지를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는 미국과 협상 중에 있지만 문제 해결에 따라 내용이 전혀 틀려질 수 있다"면서 "국방부는 용산 미군기지 민간 매각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문화유산도 헐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서울시가 보여온 근대문화유산 보호 정책을 살펴보더라도 기지 내 근대건축물이 보존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시인 박목월과 육당 최남선의 고택이 철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용산기지 내 근대문화유산 문화재 지정만으로 부족해
용산기지 내 일제시대 건물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문화재를 중심으로 반경 최대 500m, 최소 100m의 문화재 보호구역이 설정되지만 근대 문화유산은 문화재 보호구역이 설정되지 않는다.
문화재는 주변의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호구역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런 구역이 없는 근대문화유산은 외딴섬으로 고립될 위험성이 크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되면 주변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김성한 간사는 근대문화 유산 소멸을 우려하면서 다른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경복궁 옆에 있던 국립박물관이 용산 시민공원으로 이전했다. 용산 미군기지 반환 이후 국립박물관과 근대 문화유산을 문화유산 벨트로 묶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 근대문화유산을 '일제시대 박물관' 내지 '자료 전시관'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근대문화유산의 경우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전체 1/5 한도 내에서 일부 변경이 가능하다. 실내 전기 배선, 공간 활용 등을 통해 일제박물관 내지 자료전시관으로 활용한다면 일제 36년, 용산 미군기지 반세기의 역사를 후대에게 고스란히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영규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은 "국방부에서 요청한 기지 내 근대건축물 현장조사와 관련한 협조 요청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현재 관련 부처별로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