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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이었다. 밤 11시쯤 아버님이 갑자기 발음이 잘 안 되고 어지럽다고 하시는 데다 얼굴 근육까지 약간 굳어지는 현상이 생겼다. 증상으로 보아 뇌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밤에 형님과 상의하여 다음날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기로 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다음날 오전, 병원에 가신 아버님은 CT촬영과 MRI 촬영 등을 통해 뇌경색이 시작된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뇌경색 초기 상태였기 때문에 치료가 잘 되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적이 안심했다. 이렇게 해서 아버님은 평생 한번도 병원에 가보신 적이 없던 기록을 깨고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연세가 79세이니 만큼 강골이던 근육도 쇠퇴하고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라고 하는 검버섯도 한두개 피어오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어제까지도 매일 소주 3잔을 비워야 잠자리에 들고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낚시와 산책을 즐기는 천부적인 건강 체질이었기 때문에 입원이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2년 전이던가, 아버님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힘에 부치신다며 오토바이를 사오라고 명령을 내리신 일이 있었다. 다른 건 다 해드려도 오토바이만은 안 된다고 극구 말려서 결국 오토바이 타령을 접고, 힘들지만 계속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하셨다. 그래야 운동이 된다고 하면서. 그런데 바로 그 자전거를 이제는 타실 수 없게 되신 것이다.

병실에서 아버님은 무척이나 갑갑해 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누비며 강바람을 쐬고 다니실 기세이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얼마나 서운하였겠는지 알 만하였다.

화장실에 가실 때면 부축을 해드렸다. 늘 혼자서 굳건하게 사시던 아버님, 어떤 어려움도 아버님이 계시면 든든하기만 하였던 기억들, 그런데 이제 부축을 해 드려야 한다는 데에 서러움 이상의 아픔이 가슴 속에서 밀고 올라왔다.

아버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버님의 손을 잡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 손 잡고 갔던 가물가물한 기억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늘 크고 강한 손으로만 기억되었는데 오늘 잡아본 아버님의 손은 힘이 없고 가냘팠다. 피부도 탄력을 잃어 축 늘어지고 내 손을 쥐는 힘이 너무 약하여서 또 한번 가슴이 아려왔다.

아버님의 억센 손이 약해지는 것도 모르고 이제껏 살아왔다니…. 그리고 아버님의 손을 한번도 잡아드린 적이 없었다니…. '나는 정말 무심한 아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잡았을 때에야 비로소 아버님의 따스한 온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그동안 못 느꼈던 정감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부 접촉이란 게 이런 거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나는 아버님의 정을 이론이나 논리로서가 아니라 피부로 알게 되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버님의 손이 어느새 정겨움의 대상으로 바뀌었음을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다. 집안을 지탱하던 강한 손이 이제는 붙잡아드려야 할 약한 손으로 변하였음도 모르고 나는 살아왔던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제라도 아버님의 손을 잡아 드리려고 하는데 이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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