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02년 11월6일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사를 방문한 '2002 대선여성연대' 소속 여성단체 대표들로부터 '호주제 폐지' 등 여성이 바라는 '대선 핵심과제'를 전달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11월6일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사를 방문한 '2002 대선여성연대' 소속 여성단체 대표들로부터 '호주제 폐지' 등 여성이 바라는 '대선 핵심과제'를 전달 받고 있다. ⓒ 마이너
호주제 폐지, 17대 여성 국회의원 39명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

많은 국민들은 호주제가 폐지된 줄 알고 있다. 참여정부가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을 마련해서 국회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적인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성 여론이 60% 이상 됐기 때문에 당연히 국회에서 통과됐으리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은 16대 국회 권력이 발목을 잡아 제대로 심의조차 못하고 폐기처분 됐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회 권력을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여성운동계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과 여성의 정치세력화 운동에 총력을 기울인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퇴행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남성의원들을 물갈이하고 성평등 의식을 갖춘 여성의원을 확대하는 것이 호주제 폐지의 지름길이라고 보았다. 17대 총선 결과를 보면 호주제 폐지의 희망을 보게 된다.

17대 총선 결과 총 299명 의원 중 여성이 39명으로 13%를 차지하게 됐다. 16대 국회는 여성의원이 16명으로(마지막 회기엔 15명이었음) 5.9%에 불과해 국회 17개 상임위원회에 여성 의원이 1명씩 참여하기 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총선으로 여성 의원의 비율이 아시아 평균치인 14.5%에 근접했고, 세계 60위 안에 들게 됐다. 그동안 한국은 여성의원 비율이 세계 100위권 밖이었다. 이 39명의 여성의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연 소속 정당에서 호주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도록 추동하는 일이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호주제 폐지를 총선공약으로 내놓았고 한나라당은 호주제 개정이 당론이지만 박근혜 대표가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론 변경을 고려할 수도 있다.

39명의 여성의원들은 당론을 떠나 호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하고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선 법제사법위원회에 여성의원들이 역할분담해서 참여해야 한다. 16대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에 여성이 1명밖에 없었고 그마저 16대 국회 말기에 의원직을 사퇴해 호주제 폐지에 대한 여성계의 목소리를 거의 대변할 수 없었다.

6월 1일 17대 국회가 개원되자 마자 39명의 여성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국회의원 절반 이상의 서명을 받아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하도록 해야 한다.

'호주제 폐지 여론' 철저히 무시한 16대 국회

2000년 16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호주제폐지시민연대'(이하 '호폐연')를 구성하여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에 관한 청원을 했다. 하지만 16대 국회는 청원안에 대해 심의조차 하지 않았고 여성의원들 조차 국민적인 여론이 더 모아져야 하고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국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 속에서 호폐연은 소속 단체별로 호주제 폐지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전개했고 그 결과 2002년 대통령 공약에서 호주제 폐지는 여성의 요구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대표적인 공약으로 부각됐다. 국민 여론도 호주제 폐지 찬성 의견이 전체의 65% 이상을 차지했다.

이러한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호폐연은 호주제 폐지 의원입법을 추동하여 2003년 5월 52명의 의원들이 발의하여 민법개정안을 법제사법위에 상정했다. 마침 정부가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을 정부안으로 발의하는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자 국회 법사위는 정부안이 나올때까지 의원들의 안은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2003년 11월 정부안이 발의되면서 국회안에서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했지만 17대 총선을 의식한 법사위원들은 지역 유림의 표심을 의식해 노골적으로 호주제 폐지 반대를 주장했고,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는 의원들조차 논의할 순간에는 자리를 피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는 발언을 해봐야 지역구에서 표를 잃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면서 반대도 하지 않고 찬성 발언도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의원발의안과 정부안이 동일한 입장으로 제출되면 통과되는 것이 상례인데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은 예외가 되고 말았다.

16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한 이유를 보면 여자가 호주가 될 수 있다는 근거를 들어 호주제가 성차별적인 제도가 아니라 남녀평등한 제도라고 우기고, 호주제가 폐지되면 집안의 가장이 없어지므로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계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면 재혼할 때마다 자녀성이 변화되므로 뿌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등 가부장적인 사고와 가족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퇴행성을 드러냈다.

법사위가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동성동본금혼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1997년 헌법재판소는 동성동본금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관련 민법을 정비해야 할 국회는 이를 정비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유림 측에서 조직적인 저항을 하더라도 헌재에서 법률 정비를 하라고 결정해 준 내용도 추진하지 못한 것은 법제사법위원 대다수가 유림들의 사고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7대 국회, 호주제 폐지하고 새로운 신분등록제 추진해야

호주제 폐지를 기다리던 많은 국민들은 이제 인내심이 다했다. 상생의 정치를 약속한 각 정당이 사회통합 차원에서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을 공동 발의하고, 호주제 폐지 이후 호적제 대안에 대해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1인1적 대안을 조속히 만들어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호주제 폐지 반대 집단에서 제기하는 문제들 즉 가족해체 우려, 부성승계 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씻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정부가 제시한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에 따르면 여성단체의 의견도 수렴하고 유림의 의견도 수용하여 중간적인 조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안을 검토하여 각 정당이 입장을 정한 후 국회에서 논의하면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정부가 제시한 개정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호주에 관한 규정, 호주제를 전제로 한 입적·복적·일가창립·분가규정을 삭제하고 민법 779조의 '가족의 범위'조항을 호주제 폐지에 따라 재규정한다. 즉 가족의 범위로 '부부, 그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부부와 생계를 같이하는 그 형제자매'로 한다.

둘째, 자녀의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신고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였다.

셋째,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아버지, 어머니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안을 보면 호주 조항은 삭제하되, 부성강제주의에서 부성원칙주의로 개정하고 재혼 가정에서 계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여 여성계와 유림의 의견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윤인순 대표
남윤인순 대표 ⓒ 여연
17대 국회에서는 최소한 정부안 수준이라도 통과되어야 이혼·재혼 가정의 호적문제와 자녀성 문제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고, 딸만 있는 220만 가구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대가 끊어진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호주제 폐지 이후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되고 있는 시점에서 호적의 기준인으로서의 호주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17대 국회의 합리적 이성과 미래지향적 사고를 기대한다.

관련
기사
[개혁의제① 친일규명특별법 개정] 김희선 의원 인터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