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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파타르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와 로체, 눕체. 왼쪽 눈덮인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숄더, 검은 바위봉우리가 에베레스트, 그 오른쪽으로 겨우 드러난 검은 바위봉우리는 로체, 그 옆은 눕체.
칼라파타르에서 바라보는 에베레스트와 로체, 눕체. 왼쪽 눈덮인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숄더, 검은 바위봉우리가 에베레스트, 그 오른쪽으로 겨우 드러난 검은 바위봉우리는 로체, 그 옆은 눕체. ⓒ 김남희
트레킹 여덟째 날
날씨 :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걸은 구간 : 로부체(Lobuche 4930m)-고락쉡(Gorak Shep.5150m)-칼라파타르(Kalapatthar. 5545m)-고락쉡-로부체
소요 시간 : 7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불량


눈을 뜨니 6시다. 날은 화창하게 개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우선 복장부터 새롭게 무장한다. 그동안은 내의 위에 플리스 천을 안으로 덧댄 겨울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고소내의 한 벌을 더 입는다. 양말은 세 켤레를 껴 신고, 위에는 플리스 티셔츠 두 개, 그 위에 보온 점퍼, 다시 윈드스토퍼를 입고 마지막으로 점퍼를 걸친다. 보온 모자와 장갑을 끼고, 어젯밤 던킨에게 빌린 바라클라바와 방풍 장갑을 가방에 넣는다.

오늘은 짐을 작은 가방 하나로 줄여 마실 물과 비상 식량, 여벌의 옷
만을 넣고 그 가방을 기얀드라에게 준다. 우리는 각자 카메라 하나씩만 메고 스틱을 들었다.

뜨거운 코코아를 한 잔 마시고 7시 10분에 출발.
계속 굽이도는 바위 언덕 길이다. 페리체를 떠난 지 두 시간 만에 고락셉(Gorak Shep)에 도착한다. 집 두 채가 전부인데 그 중 하나는 문을 닫았다. 스노우랜드 인(Snowland Inn)에서 토스트와 코코아로 아침을 먹고 10시에 다시 출발. 푸모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급한 경사의 언덕길을 오른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흙길. 북소리처럼 울려오는 내 심장 소리. 그 다음은 너덜바위들이 널린 길이다. 30분 쯤 오르니 고갯마루가 나온다. 여기가 정상인가 둘러보는데 기얀드라가 말한다.

“여기가 칼라파타르야. 저 위랑 전망은 똑같아.”

음, 저 위가 정상이군. 이 놈이 이제 잔머리까지 쓰네. 그것도 금방 들통나는 잔머리.

“더 올라가자."

푸모리를 등지고 칼라파타르를 내려오는 트레커들.
푸모리를 등지고 칼라파타르를 내려오는 트레커들. ⓒ 김남희
올라오는 속도가 좀 느리던 언니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된다.
기얀드라를 내려 보냈는데 가방을 메고 왔다갔다 하게 만들기가 영 미안하다.

“가방은 날 주고 갔다와”라며 호기롭게 건네 받았는데, 그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가방 메고 너덜지대를 이십여 분 간 오르는 동안 도무지 숨이 차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방의 무게가 이토록 처절하게 내 어깨를 눌러오기는 처음이다.

이 가방 속에 조국의 생사와 존망이 고스란히 담긴 핵무기의 제조방법, 혹은 남북한 정상회담 비밀 문건이 들어있다 해도 이토록 내 어깨가 무겁지는 않으리라. 두어 걸음 떼고 지팡이에 기대어 쉬고, 다시 두어 걸음 떼고 또 기대어 쉬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쿵쾅거리며 뛰고¨. 정말 이 가방이 내 가방만 아니었으면 사정없이 던져버렸을 거다.

마침내 12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이 끝나고 칼라파타르 정상. 에베레스트(8850m)가 바로 눈앞에, 그 옆으로 살짝 드러난 로체(Lhotse 8501m)와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눕체(Nuptse 7864m)가 우뚝 솟아있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푸모리(Pumo Ri 7165m). 전후좌우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눈 덮인 산 뿐이다.

나 혼자서 저 눈부신 봉우리들을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조지 맬러리. 왜 산에 가느냐는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Because it is there*(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죠)"라는 고전이 되어버린 답을 남긴 등반가. 그는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지 76년 만인 1996년에야 한 등반가에 의해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의 목에는 사진기가 걸려있었지만 세월과 기후로 인해 현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그가 정상을 올랐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셈이다.
1953년 영국 원정대에 속한 뉴질랜드 출신의 모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진 셀파에 의해 초등된 후에도 수많은 등반가들의 목숨을 앗아간 산. 그게 에베레스트다.

칼라파타르 오르는 길.
칼라파타르 오르는 길. ⓒ 김남희
수만 년의 침묵을 이고 에베레스트는 따가운 햇살 아래 서 있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져온 모든 도전과 성공, 그리고 참혹했으나 아름다운 실패를 지켜봤을 저 산은 오늘도 말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산을 오르기 위해 누군가 짐을 꾸리고 있으리라.

나는 그들이 흘렸을 땀의 양을 모른다. 그들이 꾸었을 꿈의 깊이도 모른다. 그들이 견뎌야 했을 고독과 좌절의 높이도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인간을 전진케 하는 것은 ‘격렬한 희망’이라는 것. 격렬한 희망과 그 희망에 대한 치열한 믿음 하나만으로 세상을 버티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삶은 빛이 되어 꿈 없는 이들의 가난하고 어두운 삶을 비추고 있을 것이다. 오늘 나의 경배는 이 산에서 내려온 이들이 아닌, 다시 내려오지 못한 이들에게 바쳐진다.

이곳에 넘치는 건 오직 죽음에의 공포와 막막한 고독. 그리고 희박한 공기. 저 거대한 산에 청춘을 묻고 꿈을 묻고 몸을 묻은 이들의 꿈 한 자락을 잠시 들여다보는 지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조금씩 치밀어 오른다.

숙연한 마음으로 서 있는 동안 기얀드라와 언니가 올라온다. 침묵은 깨진다. 사진을 찍고,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잠시 머물다가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 누군가의 혼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칼라파타르에서 내려와 고락쉐로 오는 길에 지나는 바윗길.
칼라파타르에서 내려와 고락쉐로 오는 길에 지나는 바윗길. ⓒ 김남희
하산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인 1시 15분 고락쉡 도착. 스노우랜드 인으로 다시 돌아와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며 쉰다. 갈증이 난 언니는 콜라를 마시는데 이곳에선 콜라 한 캔이 250루피(4000원)다.
기얀드라가 머리가 아프다며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있다. 언니가 두통약을 꺼내 건네준다. 어떻게 된 게 우리는 멀쩡하고, 포터가 고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이 식당의 천장과 벽은 온통 트레커들이 남겨 놓은 티셔츠와 팬티, 모자, 손수건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 천에 자신들의 이름과 날짜, 감상을 적어 놓았다. 우리도 손수건에 “까탈이와 수영, 인내와 겸손을 배우고 갑니다. 2004년 2월 4일 From South Korea‘라고 적어 주인 아저씨께 건네준다. 아저씨는 남체 시장에서 핀을 사와 걸어놓겠다는데 다음에 오면 걸려 있을지 궁금하다.

2시 10분. 페리체로 하산을 시작한다. 한 시간 남짓 바위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나니 평지가 이어진다. 3시 50분. 페리체 도착.
더운 물에 얼굴을 씻고 저녁은 야채커리와 언니가 싸온 김으로 먹는다. 다 부서진 김이 얼마나 맛있는지!

난롯가에서 랜턴 켜고 책 읽다가 방으로 돌아와 엄마께 엽서를 쓴다. 엄마에게 그랬다. 오늘로써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겠다는 꿈 하나는 확실히 버렸다고. 다른 것 다 떠나서 추위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러니 엄마도 걱정 하나는 내려놓으셔도 된다고.

로부체 숙소 마당에서 바라본 로체샤. 마침 달은 보름달.
로부체 숙소 마당에서 바라본 로체샤. 마침 달은 보름달. ⓒ 김남희
트레킹 아홉째 날
날씨 : 펄펄 눈이 옵니다.
걸은 구간 : 로부체(Lobuche 4930m)-페리체(Periche 4280m)-팡보체(Pangboche 4252m)
소요 시간 : 4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점차 불량해지고 있음


8시 기상. 푹 잤다. 계란을 넣은 토스트와 코코아로 아침을 먹고 9시 35분에 출발. 한 시간 만에 투글라에 들어선다. 올라올 때 차를 마셨던 집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덧붙인다.
“아버님은 결국 고산병 때문에 페리체에서 하산하셨어요!”라고.

아버지가 누굴 말하는지 잠시 헷갈렸는데 알고 보니 정 선배님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님이 우리를 딸과 조카딸이라고 소개하고 다니셨는데, 그새 온 트레일에 소문이 다 났나보다. 나는 언니에게 속삭인다.

“언니, 우리 이러다가 아버지를 버린 매정한 딸들로 소문나는 거 아니야?”

바위산 하나를 넘고 나니 평지가 나온다. 투글라에서 페리체로 가는 길 왼쪽 앞으로는 멀리 아마 다블람이 보이고, 오른쪽 옆으로는 따우체와 촐라체가 따라 온다. 어제 칼라파타르에 오를 때 고소로 인한 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기얀드라가 오늘도 몸이 좋지 않은 지 자주 쉰다. 사탕을 몇 알 건네니 초콜릿을 달라고 해 초콜릿을 꺼내 나눠 먹었다.

촐라체와 따우체. 투글라에서 페리체 가는 길.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트레커들이 보인다.
촐라체와 따우체. 투글라에서 페리체 가는 길.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 트레커들이 보인다. ⓒ 김남희
멀리 페리체 마을이 보인다. 풀을 뜯거나 햇볕을 쬐고 있는 야크들도 간간이 보인다. 12시. 페리체 도착. 지난 번에 머물렀던 쿰부 로지(Khumbu Lodge)에서 점심. 야채 커리와 코코아를 주문한다. 그 사이 주방장은 카트만두로 휴가를 떠나고 주방 보조가 혼자 요리를 한다. 그래서인지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 음식 나올 기미가 없다. 햇볕 따스한 창가에서 언니는 졸고 있고, 개 한 마리 역시 내 발 밑에서 자고 있다.

한 시간 반 만에 나온 음식을 10분 만에 끝내고 다시 출발. 시간은 두 시가 다 되어 간다. 2시 35분. 오르쇼(Orsho) 경유. 눈발이 날린다. 2시 50분. 소마레(Shomare)를 지난다. 개천을 왼쪽으로 끼고 계속되는 절벽길. 저 멀리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물소리와 야크 방울 소리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다. 그사이 눈발은 제법 굵어져 사위를 하얗게 덮는다. 희뿌연 구름과 눈발 사이로 가끔 그림처럼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내가 지금 인간 세상을 걷고 있는 건지,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지 모르겠다.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는 야크떼.
눈 덮인 산길을 걷고 있는 야크떼. ⓒ 김남희
팡보체(Pangboche)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사원’ 표시가 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이십여 분 이상 오르니 절과 마을이 보인다. 타쉬 로지(Tashe Lodge)에 짐을 풀다.

건축설계가 직업인 수영 언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집 굉장히 재미있는 집이야. 경사를 그대로 이용해 집을 지었어. 여기 계단 보여? 그리고 저 나무 좀 봐. 집 한 가운데를 뚫고 나가잖아.”

정말 식당에서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거대한 나무 둥치가 보인다. 자연적인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 지어진 집답게 내부 구조가 좀 복잡하다.

이 집에서 화장실을 가는 방법을 소개해 보면 이렇다. 우선 방을 나서서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7-8개쯤 내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첫 번째 나무문을 열고 나가 다시 돌계단을 열 개쯤 내려가면 허리께 쯤 오는 나무문이 나온다. 그 문을 열고 나가 찬 공기와 바람에 어리둥절해진 정신을 추슬러 정면으로 열 두 발자국쯤 걸어가 문을 열면 화장실이다(물론 푸세식이고, 거의 용량이 찼으므로 조심해서 조준해야만 한다. 볼일을 본 후 가득 쌓여 있는 나뭇잎을 뿌려주면 잘 썩은 거름으로 재활용된다).

우리는 우선 뜨거운 우유를 주문한다.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덥썩 받아온 미숫가루를 꺼낸다. 정말이지 이 미숫가루를 우리에게 주고 간 ‘미숫가루 소년’에게 축복이 있기를.

뜨거운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서 약간의 설탕과 함께 마시는 이 기분.
이 집 안주인 타쉬가 맛을 보겠다기에 따라줬더니 “아니, 짬파랑 똑같네” 한다. 그렇지. 짬파가 보릿가루 볶은 거니까 비슷하겠지. 미숫가루를 마시고 있는데 기얀드라가 또 “Shop"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No!"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못 가게 감시하는 중.

팡보체 타쉬델레 롯지의 여주인 타쉬.
팡보체 타쉬델레 롯지의 여주인 타쉬. ⓒ 김남희
이곳 주인인 타쉬는 스물 여섯 살의 이혼녀다. 이혼 후 친정집으로 돌아와 4살 난 아들 장부를 혼자 키우고 있다. 중매로 결혼 한 그녀는 처음부터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임신을 하면 대부분이 집에서 아이를 낳는데, 그녀는 갑자기 하혈을 시작해 헬기로 병원이 있는 쿰중으로 가야만 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남편은 여전히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병원에 혼자 누워 있는 동안 이 남자를 남편으로 믿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퇴원하는 길로 이혼부터 했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이혼녀가 드물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주 드물다고 한다.

네팔도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고, 20여 개의 부족이 있는데 카스트가 낮은 부족과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팔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결혼이 중매로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부모가 맺어주면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많이 민주화(?)되어 직접 만나 보고 “Yes"냐 "No"냐를 결정할 말미를 하루 정도는 준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 동네의 존경받는 라마스님인 타쉬는 이곳의 돈 있는 집의 자녀들이 그렇듯 카트만두에서 유학을 했다. 이곳 산간마을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를 카트만두로 유학 보내고, 겨울이면 엄마가 자식들을 보러 카트만두로 간다.

팡보체 마을에서는 5명이 카트만두에서 공부를 했는데 다들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카트만두에서는 직장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 해도 월급이 적어 이곳으로 돌아와 부모의 게스트 하우스를 물려받거나 가이드나 포터, 고산 셀파 등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타쉬의 소원은 미국 같은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 아들을 공부시키는 거라고 한다. 그녀에게 그 꿈이 가장 절실한 것이라면 부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돌레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돌레 가는 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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