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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대표
이동호 대표 ⓒ 권윤영
'채소장수'

그랬다. 그의 별명은 채소장수였다. 초등학교 시절, 등교하는 길에는 언제나 시골 장에 가는 어머니의 리어카를 끌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어머니께 찾아가 집까지 리어카를 끌고 돌아와야 했던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

"수업 끝나면 다시 리어카 끌어야죠. 비닐하우스 일을 하거나 골을 베야죠. 친구들하고 놀 시간이 없던 저는 수업이 끝나고 놀아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어요."

(주)세광철강을 운영하는 이동호(47) 대표. 지금에야 대전에서 철강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건실한 중견기업의 대표지만 그의 유년시절은 지독히도 가난했다. 쌀이 없어 고등학생 시절에는 3개월 동안 국수만 먹고 자랐던 탓에 지금도 분식을 싫어할 정도였다.

충남 예산에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나 자라온 속절없는 세월 앞에 그는 지난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가난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는 않았다. 가난 속에서도 언제나 행복을 꿈꿨다.

하사관 월급으로 적금을 부어 대학등록금에 사용했을 정도로 성실했던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철강대리점을 하는 숙부를 돕기 위해 대전으로 왔다.

“애초에는 5년간만 도와주기로 했었어요. 약속했던 5년이 다됐을때 농협공채에도 합격한 상태였지요. 하지만 숙부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철강일을 하게되었답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던 그는 지난 95년, 철강 관련 회사를 창립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자신의 부모형제보다 그를 더 잘 따르던 후배가 곁에 있었고 그 후배는 담보까지 해줘가며 회사를 설립하는데 큰 힘을 실어줬다. 자신 역시 그만큼 믿었고 아껴왔던 후배였다. 몇 년 후 회사가 주식회사로 전환을 하던 찰나 그 후배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후배를 대표이사로 임용했다.

하지만, 그는 배신을 당했다. 그 후배는 회사직인으로 신용보증기금에서 30억을 빼내 별도의 회사를 만들었던 것.

"돈 잃는 것은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돈은 어차피 쓰기 위해 버는 것 아니겠어요. 가장 바보 같은 짓은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것이지요."

그가 단장을 맡고 있는 (사)국제교류문화원 부설 국제교류예술단의 공연.
그가 단장을 맡고 있는 (사)국제교류문화원 부설 국제교류예술단의 공연. ⓒ 권윤영
단지 사람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는 지난 85년에 겪은 첫 부도를 잊지 못하고 있다. 어음을 갚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한 달 후에 갚아도 된다며 사정을 봐줬지만 그 내외는 밤새 도주를 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이 대표는 한 달 후에 그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니에게 아이만 달랑 맡겨져 있었다.

새까만 아이들이 코를 흘리며, 연기 속에서 나무를 때서 밥을 해먹는 모습을 보고는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주고 쌀 한가마니도 사주고 온 사람. 이 대표는 그토록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한다. “사람을 마냥 믿어 배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인간관계가 좋아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는 이 대표. 지인이나 혈연 없이 홀홀 단신 대전에 와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기에 그는 마냥 행복하다.

지난 2001년 세광철강을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중견업체로 자리잡은 것도 그의 사람 좋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해부터는 (사)국제교류문화원의 국제교류예술단장으로 활동하며 해외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사절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역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아 시작하게 된 활동이다.

그가 진정으로 꿈꾸는 삶은 농사꾼으로서의 삶이다. 지금도 주말이면 시골에 가서 직접 나무를 심는다. 언젠가 멋진 펜션을 짓고 도시민들이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돈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있는 사람은 있는 만큼 내고, 없는 사람은 없는 만큼 형편껏 내는 그런 도시민들을 위한 쉼터…

“농촌을 체험하면서 상추나 깻잎을 뜯고 봄이면 쑥을 캘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매년 예산군 산양면 죽천리에 나무를 심고 있답니다. 해바라기, 유채꽃이 만발할 그곳이 완성되면 꼭 한번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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