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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모 시설의 어린 아이들
비혼모 시설의 어린 아이들 ⓒ 김윤섭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토록 세상을 모르는 줄 미처 몰랐다.

3월 말 광주에 있는 비혼모 보호시설 ‘우리집’을 방문하고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피자를 먹으며 비디오를 보고 있는 임산부들 13명 전원이 스무 살 이하, 10대 소녀였다. 열여섯 살짜리도 있었다.

이곳에는 주로 미성년 비혼모들이 모인다니 나도 짐작이야 했다. 내가 놀란 이유는 이들이 나이에 비해 그리 성숙하달 것도 없는, 너무나 앳되고 평범한 소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기를 낳는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나는 아기도 걱정됐지만 만삭의 이 아이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비혼모 가운데 90%는 미성년자

“진통이 가장 겁나요. 정말 그렇게 아픈가요?”
“모르겠어요. 아기가 빨리 입양되어 어서 일이 끝났으면 싶기도 하고, 늦어져서 아기를 오래 보고 싶기도 하고.”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집’ 이선희 원장은 비혼모 가운데 미성년자가 90%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또 20대라고 해봤자 고작 스물 두셋, 20대 초반이니 별 차이도 없다.

결혼을 전제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어감을 내포한 ‘미혼모’든, 객관적으로 결혼 상태가 아니라는 것만 표현하겠다는 ‘비혼모’든, 당사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은 모두 마음에 안 드는 명칭이라고 했다. 임신했어도 이들은 결혼과는 한참 거리가 먼,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엄마’가 그나마 낫단다.

미성년 비혼모가 많다 보니 출산 후에 대부분 양육을 포기한다. 2002년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기아 및 미혼모’로 인한 ‘요보호 아동’이 4971명이라고 한다. 이는 한 해에 5000명으로 추산되는 비혼모들의 수치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요보호 아동’이란 대체로 비혼모들의 아이들이며, 이들은 대개 입양된다. 평균 1700명은 국내 입양, 2400명은 해외 입양, 900명은 장애 등 어려움이 있거나 기회가 오지 않아 입양 대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어린 엄마. 어리다는 건 연령만이 아니라 엄마로서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준비 없이 엄마가 되는가! 물론 생명의 잉태와 탄생은 숭고한 일이며, 상황이야 어떻든 생명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이 엄마들의 결심은 고귀하다.

어린 엄마들은 낙태로 엄마가 되는 사태를 방지한 몇 배나 많은 여성들에 비하면 마음이 여리고 순진하다. 자신(?)의 잘못으로 한 생명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이들의 양심은 맑다. 처음에는 이 엄마들도 원하지 않은 아기를 인생의 장애물로 여기기도 했지만, 초음파 사진을 보거나 태동을 느끼고는 도저히 모진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은 아닌데 그리고 좋은 엄마가 없는데 너를 낳으려니 미안한 마음부터 드는구나. 진짜 너에게 미안하다. 키우지 않을 바에야 초기에 없애 버릴 걸 그랬나 봐. 하지만 엄만 너의 초음파 사진을 보니 차마 없애지를 못하겠더라. 그렇게 작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없앤다니 정말 죽고 싶도록 싫더라구. 좋은 곳으로 입양이 되면 후회 정도는 안 하겠지만 만약에 입양이 안 돼 고아원에 보내진다면 넌 나를 죽는 그 날까지 원망하며 살겠지? 차라리 낳지를 말지 하고 말이야.’(열아홉 살 엄마가 태어날 아기에게 쓴 편지)

직접 키우지는 못하더라도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아이를 세상에 내보낼 어머니의 권리, 그리고 자신을 낳아 준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성장할 아이의 권리는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어머니와 아기에게 이 경험은 크나큰 고비이고 아픔이다. 어린 엄마들은 입양될 아기의 행복을 빌면서도, 자신도 아기도 고생할 일을 어쩌다 저질렀다고 후회한다. 한 번 실수가 평생의 실수가 되고 말았다고.

철없는 나이에 엄마가 사고를 쳐서 너를 갖게 되었고…. 언젠가는 네가 버려진 아이라는 생각에 힘들어할 날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한테 큰 실망을 하겠지. 하지만 우리 아기는 엄마하고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열여섯 살 엄마의 편지)

자원봉사자 이선심씨가 영아일시보호소에서 비혼모가 낳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자원봉사자 이선심씨가 영아일시보호소에서 비혼모가 낳은 아이를 돌보고 있다. ⓒ 김윤섭
'엄마처럼 무책임하게 인생을 살지 말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라.'

어린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아기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엄마나 아기나 장차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그래야만 하지만, 이 일 자체는 사고며 실수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대책은 ‘예방’이라고 서울에 있는 비혼모 보호시설인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말한다.

여자는 인생 파국, 남자는 ‘멀쩡’

애 낳아서 데리고 와도 내 핏줄이라고 안 한다.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데, 난 요즘 여자들 못 믿어. 함부로 몸 굴리다가는 병 걸린다, 우리 아들한테 옮기는 거 아니냐? 다 네 잘못이다. 네가 약을 먹든지 했어야지, 남자는 아무 잘못도 없고 아무 흠도 없다. 이런 일 있어도 우리 아들 좋은 데 장가보낼 수 있다. 우리 아들 소문나면 안 되니까, 입조심 해라.

인터넷 카페 ‘미혼모들이 사는 이야기(http// cafe.daum.net/mihonmo)’ 상담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여성에게 상대 남자 어머니가 일갈하는 말이다. 이는 전형적인 사례일 뿐이다. 남자 집에서는 부모가 펄쩍 뛰며 제 아들의 아기를 가진 여성의 도덕성과 실책을 비난하고, 여자 본인의 집에서는 통곡이 터지고 팔자 망친 딸의 부모가 쓰러진다.

여자는 인생의 파국에까지 다다르지만, 남자는 흠집도 안 남는다. 비혼모들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회복지사들은 친부에게 책임을 지우거나 강력하게 처벌까지 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남자들도 연애에 신중해져서 비혼모가 덜 생기고, 그런 일이 발생해도 고생을 분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어린 엄마들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실정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친부를 찾기도 어렵고 찾아봤자 같은 나이 또래이니 책임질 형편도 아니다. 어린 엄마들 대부분 임신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상대 남자친구와 헤어졌거나 그가 연락을 끊고 도망간 뒤다. 남자 친구 부모를 찾아갈 일도 없고, 본인의 부모한테는 끝끝내 말도 못한다.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아도, 비혼모 보호 시설에서 아이를 낳아도 그들의 부모는 모른다. 가출을 하거나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입는다. 낙태 후에 흔히 우울증에 걸리고, 몇 년씩이나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울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아기를 입양시켜도 그렇다. 어차피 기르지 못할 바에야 정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어린 엄마들은 결심한단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단 하루만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 그만 눈에 아기 얼굴이 찍히고 만다.

개중에는 아기를 기르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엄마들도 있다. 몇 달간만 아기를 봐 달라며 보호시설에 부탁하고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일하며 눈물겹게 돈을 벌어 보지만, 대체로 몇 달 만에 소식을 끊는다.

이럴 경우 아기의 처지는 더욱 모호해진다. 입양될 거라면 하루라도 빠른 게 좋은데, 친모의 명확한 의사 표시가 없으면 대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설령 친부가 가정을 꾸린다고 해도, 어린 엄마와 비슷한 십대라면 기특하게 여길 일만도 아니다.

어떤 열일곱 살짜리 어린 엄마가 동갑인 아빠와 함께 출산 준비를 하는데 월세 10만 원짜리 방을 얻어 아는 사람들에게서 이불이며 아기용품을 얻어다 놓았단다. 아빠는 지방으로 ‘노가다’를 뛰러 가서 엄마 혼자 출산하고 신생아를 돌보아야 한단다. 가족들의 도움 없이 이들 부부의 노력만으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는 힘들 것이다.

학습권도 빼앗겨 버린 엄마들

원하지 않았고 준비하지 않은 임신이었다. 참으로 놀랍게도 어린 엄마들 중 상당수는 피임과 임신에 대해 무지하다고 한다. 피임법을 몰라 임신하고, 임신 중절을 원하면서도 미적거리다 시기를 놓친다. 급변하는 성 풍조에 발맞추어 성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아직도 많은 여학교에서는 자기네 학생들은 단정하다며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성교육까지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린 엄마들은 아집에 가득 차고 위선적인 어른들이 만들어 낸 희생자들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지극히 어린 정신력도 문제다. ‘우리집’ 13명의 어린 엄마 중 5명이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경산부이며, 네번째 아이를 임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30세가 넘어야 부모에게서 독립한다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지나치게 어리다. 이 세계 최장의 유년기는 교육 전반의 문제니 여기서 거론하기는 적절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겠다. 어린 엄마들의 학습권이다. 어린 엄마들은 평소 품행이나 학업 성취도와 관계없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임신 중에 휴학했다가 출산 후 복학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 엄마가 된다는 것은 평범한 여학생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청소년들의 신체는 일찍 발육하고 성은 어디나 넘쳐난다. 이것이 실정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학칙은 어린 엄마들을 공교육에서 단절시킨다. 이들은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하지만 혼자 공부해서 진학하는 경우는 실제 매우 드물다. 교육 기회의 박탈은 직업과 자아실현 기회의 박탈로 이어지고, 결과는 사회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철없는 나이에 실수한 어린 엄마들에게 학습권을 제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린 엄마들의 인생 전체를 징벌하는 셈이 된다. 인터넷 사이트 ‘미혼모들이 사는 이야기’는 자발적으로 비혼모가 된 이들의 모임이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그렇다. ‘아이를 선택한 엄마’ 혹은 ‘아이를 지킨 엄마’들이라고 할까.

그러나 비혼모들의 삶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미비하다. 비혼모들의 자녀는 20년 뒤에라도 친부가 자기 자식이라고 주장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과 호적이 바뀐다. 엄마 혼자 아이의 양육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이중 부담도 크다. 친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해도 거부하면 받아낼 길이 없다. 비혼모들이 살면서 겪는 이러한 모순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사회적 차별과 냉대다. 취업, 진학, 결혼 등등 매사에 주민등록등본과 호적이 문제되는 현실에서, 엄마와 자녀의 같은 성은 내내 결함이 된다. 이들이 뭘 잘못했을까! 남과 다른 선택을 했을 뿐. 자신에게 찾아온 생명을 당당하게 책임졌을 뿐. 사회는 바뀌고 사람들은 예전과 다른 삶을 개척해 간다. 낡은 틀로 새로운 삶을 옥죄지 말고, 제도도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생각해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무관심한 것도 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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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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