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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이 마침내 국회 진입에 성공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은 본래 진보적이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입증된 바다. 미군정의 진보(언론)진영 탄압과 친일(미)파 수구신문 육성에 이은 제반 상황이 진보정치의 싹을 짓밟아왔으나 오늘에야 이르러 비로소 다시 그 싹을 피게 된 것이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진보인사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는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 새라 친일파에 뿌리를 둔 친미 기득권 신문들이 민주노동당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또 이념적으로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정당이 국회에 진입한 것이다. 미군정과 독재권력에 기생하며 성장했고, 근래엔 언론권력이 되어 이 사회를 주무르던 이 신문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재앙일 것이다. 개혁정권을 상대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진보정당이라니.

<조선일보>가 먼저 나섰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이 확실해지자 4월9일 ‘민주노동당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사설이 등장한다. 이 사설에서 <조선>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문제 삼았다. 다 뜯어고치라며 거의 협박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민노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민노당의 이런 강령을 지지한다기보다는 기존 정당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관적 해석을 해놓았다.

이 부분은 “그동안 축적되고 신장돼 온 우리 사회의 좌파 세력이 일정 수준 대중적 기반을 확보했음을 입증한 것”이라는 선거 다음날 사설 ‘민주노동당, 어떤 의회 정당이 될 것인가’의 해석과 상충된다. 깎아내리다가 이념적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공론장의 기능을 포기한 편협한 ‘색맹신문’이 공당의 강령을 뜯어고치라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조선>은 9일자 사설에서 민노당 강령들을 상세하게 나열하면서 공격했다. “우리나라를 독점재벌의 민중수탈 사회로, 모든 사회문제는 자본주의 탓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기본 시각에서 나온 정치·경제·외교 등 세부 강령은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구(舊) 사회주의 체제를 연상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민노당 강령에 따라 나라가 운영될 경우 우리나라는 경제적·외교적으로 세계의 고아 국가가 돼 얼마 못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런 신문과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독점재벌이 민중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고 있는가? 민중수탈의 자본주의를 고수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이 신문의 눈에는 미국만 보일 뿐이다.

<중앙일보>도 기본 관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4월16일자 사설 ‘민노당의 국회진출에 바란다’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독점재벌의 민중수탈론, 계급사회론, 사유재산권 제한, 생산수단의 사회화, 연방제 수용, 한·미 군사조약 폐기 등 정강정책이 헌법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민노당이 “이념의 과격성을 순화”하지 “못할 경우 국민에 의해 자연스럽게 외면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심하기 바란다”며 겁박하는 점도 닮았다.

<동아일보>도 빠지지 않았다. 역시 16일자 사설 ‘民意 존중해 相生의 정치를’에서 “헌법정신이나 우리의 정체(政體)와 맞지 않는 정책이나 강령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면서 “어떤 진보세력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인하고서는 존립할 수 없다”고 겁박한 것이다. <동아> 자신부터 민의를 존중해왔는지 반추해볼 일이다.

한 정당의 강령은 그 정당의 성향과 더불어 지향하는 목표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실천하며 지지를 얻고자 노력한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4년간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5만 진성당원을 확보했으며, 마침내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회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경품과 공짜신문으로 독자를 붙들어두는 신문들과는 다르다. 경품과 공짜신문을 없애면 진성독자는 몇이나 남을까?

이런 역사적 과정을 생략한 채 구시대의 잣대로 강령을 문제 삼을 뿐 아니라 뜯어고치라고 겁박하는 것은 대단히 몰상식한 처사다. 민주노동당 당원과 지지자들을 모독하는 일이다. 조중동이야말로 독점재벌과 천민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태도와 친미·반북 일변도의 편협함을 고수하는 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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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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