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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막판 보수와 수구의 진보협공이 볼 만하다. 보수정당인 열린우리당 논객을 자처하는 유시민 의원과 수구논객이라 할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민주노동당을 향한 공세가 그것이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총선을 불과 사흘 남겨놓은 금쪽 같은 시기에 상대가 걸어온 싸움도 아닌데 '민주노동당을 향한 전투'를 시작했고 '24시간 안에 전투가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24시간이 지나도 전투가 끝나지 않았던지 13일 다시 포문을 열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공간과 유권자의 심리 속에 보이지 않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총선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이 민주노동당을 '김정일 정권이 대남지령문을 내려보내 지원한, 정강정책이 친북사회주의적인' 당이라며 '붉은 칠' 공격을 가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궁을 대한민국 국군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극우 반공논리를 소신으로 삼고 있는 조갑제 편집장 눈에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인지 모른다.

보수논객과 수구논객이 진보를 협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자체가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반영해주는 것이지만, 이 협공을 어떻게 무사히 통과하느냐가 50년만의 진보정당 원내진출을 가늠할 마지막 시험대인 것도 사실이다. 색깔론과 시기상조론 때문에 진보정치 원내진출이 좌절됐던 예가 과거에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보수논객과 수구논객의 협공

그렇다면 막바지 총선 국면에서 과연 수구와 보수의 진보협공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수구의 '색깔론'은 물론이고 보수의 '사표론'의 위력은 적어도 이번 총선에서 과거와 같은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조 편집장의 공격 논리는 낡기도 낡았고 현실성도 없어 공격의 효과를 따지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TV 토론에서 자민련이 민주노동당을 똑같은 논리로 공격하고 있지만 거의 토론에 재미를 주는 개그 수준이 되고 있다.

다만 수구의 진보 공격논리는 비록 그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당 강령을 거론하며 전보정당의 정체성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공격의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허위사실로 명예훼손한 대가로 재판을 거쳐 '진보정당 육성금'을 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유시민 의원이 시작한 전투는 조 편집장의 공격보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조차도 과거처럼 엄청난 효과가 날지는 의문이다. 표 이동 자체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 폭은 제한될 것이며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동당 지지자 대부분이 소신이 뚜렷한 데다, 유시민 의원이 겨냥하고 있는 젊은 유권자 상당수도 이미 유 의원이 제기하기 이전부터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하도 여러 차례 부딪혔던 일인데다 특히 지난 대선 학습효과가 아직 생생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오히려 보수세력에게 약간의 전리품을 챙기는 대신 전쟁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 전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유 의원 논리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땀 흘려 농사지으려 하지 않고 남의 밭에서 익어 가는 참외 넘보느냐'는 식의 반론도 많은 게 솔직한 현실이다.

더구나 4.15 총선에서 수구세력은 물론이고 보수세력도 정책대결보다는 울고 사과하고 굶고 머리 깎는 감성정치를 계속해 경쟁력이 매우 낮다는 점을 드러냈다. 특히 유시민 의원이 수구가 아니라 진보를 상대로 펼친 막바지 전투는 그 가운데서 가장 질이 낮은 선거운동이 아닐 수 없다.

적의 스파이? 수구를 막기 위한 희생양?

어쨌든 이제 국민의 선택만 남았다. 어느 당이 몇 석을 얻을지도 관심거리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은 한국 정치지형을 보수와 수구의 경쟁에서 보수-수구-진보의 각축으로 바꿔 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진단하듯이 길게 보면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은 기존 여야가 몇 석을 얻느냐보다 훨씬 한국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깊고 넓은 변화가 될 것이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어떤 당에게는 4월이 '잔인한 달'이 될 것이나, 진보정치의 원내진출이라는 한국정치 발전의 새 장이 열린다는 점에서 2004년 4월은 한국 현대사에 '뜻 깊은 달'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갑제 편집장과 유시민 의원의 진보협공은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낡은 시대의 흐름과 논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수구와 보수논객을 자처한다면 거역할 수 없는 진보정치 시대에 맞는 자기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진보는 수구가 말하는 '적의 스파이'도 아니며, 보수가 요구하는 '수구를 막기 위한 희생양'도 아니다. 진보는 수구와 보수가 대변하지 못했던 이 땅의 노동자 농민 민중이 앞세우고 17대 국회로 당당히 들어가는 전혀 새로운 경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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