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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젊은 여성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어?”
“네 자신을 믿어라!(Trust yourself!)”
“겨우 그 한마디?”
“응, 그 안에 모든 비밀이 들어 있지.”

전에 소개한 <이갈리아의 딸들>이 소설을 통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적절하게 구현했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현실 속에서 페미니즘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그녀의 글들을 모아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고전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 전의 글이다. 인문사회 분야의 책들은 갈수록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이 책 또한 그렇게 취급될 수 있을 법한데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지금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책이 오래 동안 읽혀지는 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녀 자신은 그 점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작가로서 책이 장수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여성운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를 주장한 텍스트들이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970년대에 쓴 글들조차 지금도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여성운동이 아직도 제 빛을 내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21세기를 맞이하며 젊은 여성들에게 남기고 싶다는 “네 자신을 믿어라!”도 아직도 유효한 셈이다.

자의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일전에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성의 필독서라고 언급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여성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소녀에서 아가씨로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변화해 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들이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갖고 있었던 남성우월주의적 편견을 생각해보면, 그 편견 안에는 여성에 대한 경멸,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서 하등인간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가혹한 처벌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우리를 세뇌하여 우리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게 만든다. 설사 우리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해도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여자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한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中)


이 책이 페미니즘 필독서로 분류되는 이유 중 하나는‘경험’과 ‘실천’이 뒤받침 된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을 다루는 숱한 책들은 남성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로리아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생각을 통해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주장을 하는 점은 그녀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가령 플레이보이클럽의 바니걸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바니걸로 위장 취업해 겪은 대목만큼은 누구도 그녀의 용기와 열의를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유명여성들을 만나며 겪은 이야기나 자신의 가족들과 주변인과의 경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성운동을 피력하는 글들은 여성들로 하여금‘살맛 나는’ 여성의 삶에 대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물론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여성들에게만 주문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에게는 용기와 격려를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성들에게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데 소홀해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날 갑가지 이상하게도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되면 분명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량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야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군장성들, 우파정치인,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월경은 남자들만이 전투해 참가해 나라에 봉사하고 신을 섬길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우익 정치인들은 생리를 하는 남자들만이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종교 광신도들은 남자만이 신부나 목사가 될 수 있고 신 자체도 남자이며 남자만이 랍비가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바로 월경이라고 주장한다.”(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中)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 읽혀지지 않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빠져 나올 날은 언제일까? 또한 세상의 반이라는 여성이 진정한 반으로 인정받는 날은 언제일까?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실망하지 않고 말한다. “세상의 여자들이 가져야 하는 분노를 소중히 간직하라”고. 분노는 행동을 위한 에너지를 일으키는 배터리와 같으니 말이다.

또한 그녀는 말한다.

“이 책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여러분의 노력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그렇기에 2004년 오늘에도 여자들을 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반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현실문화(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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