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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 기행>
책 <일본 기행> ⓒ 새로운사람들
오마이뉴스의 독자들 중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자 뉴스게릴라로 활동하는 박도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에 아버지가 겪었던 고초를 기억하며 '의를 좇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 민족의 문제에 대한 연재를 하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일본 기행은 특이하게도 눈이 많이 쌓이는 기타도호쿠 지방과 뱃길을 따라 간 세토나이카이 지방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오사카, 쿄토, 나라 지방만을 여행한다던가 도쿄를 다녀온 여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 속에는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여행을 하고,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을 체험과 함께 우러나오게 쓴 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의 전반부는 눈길을 따라 다닌 여행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뱃길을 따라 다닌 여행기이다. 여행은 눈밭을 샅샅이 헤매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배 멀미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작가이지만 여행의 과정에서 만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을 고수하고 기록하길 좋아하는 꼼꼼한 성격의 일본인에 대하여 그 어느 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랴.

"일본 공무원들의 보고서는 이미 자세하고 정확하다는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그네들은 보고 배우고 기록하는 데 매우 극성, 아니 광적이다. 몇 해 전에는 JAL기의 한 승객이 후지 산으로 추락하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기록을 남겨서 해외 토픽이 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독립 투사에 관한 기록도 그들의 기록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시대 누가 진짜 애국자인지 그들의 기록을 봐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이다(독립투사들이 기록을 남기면 증거가 되기에 일부러 남기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자행되었던 그들의 만행은 용서하기 힘들지만, 일본은 배울 점이 많은 국가이다. 저자는 학창 시절 우리 방언조차도 일본인이 처음으로 연구하여 저서를 남겼다는 데에 큰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일본인은 문화를 사랑하고 자신들의 가치 있는 전통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작가가 만난 어느 조그만 지방의 한 공무원은 자신의 명함에 일하고 있는 지방의 유명 작가인 미야자와 켄지의 작품을 새겨 넣었다.

이처럼 자신이 속한 세계를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일본인이 과잉 친절을 베푼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의 예의바름과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태도는 일본을 방문한 많은 나그네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본인들은 놀이에서도 다음 세대에게 자기네 고유 문화를 전수하는 데 아주 철저해 보였다. 일본인들은 외래의 것 중에서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데 그것도 철저히 일본화해서, 나중에는 본토에 역수출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나라였다."

전통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킬 줄 아는 자세는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발전을 위해서 일본을 무작정 비난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버리는 정신이 필요하다.

작가가 만난 일본인들 중 공무원들이 꽤 있었는데, 이들의 태도 또한 우리와 너무 다르다. 성실하고 품위를 지키며 매사에 절제하는 모습은 우리 공무원들이 지닌 안일하고 거만한 태도와 매우 비교된다. 물론 그의 시각과 달리 우리 공무원들도 최근에는 많이 노력하고 있다.

작가가 기타도호쿠 지방 여행을 마치며 느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일제 35년 간의 치욕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지만 견원지간(犬猿之間)처럼 되어 있는 한일 양국의 고리는 두 나라 모두를 위해 언젠가는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물론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일본의 진정한 사과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일과 한중일 세 나라가 대등하게 베네룩스 삼국이나 EU처럼 블록을 만들어서 미국이나 유럽에 맞서야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앞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그만한 아량도 없는 소아(小兒) 국가가 아니길 빈다!"

그리고 일본에서 배울 만한 점과 좋은 점들은 과감하게 배우고 우리나라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일본보다 문화의 역사가 훨씬 오래고 깊이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이 보존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또한 그 이유를 "우리가 우리의 고유 문화를 스스로 천시하고 소홀히 한 데서 오는 결과"라고 밝힌다.

저자가 일본 문화의 보존성과 전통 보호 노력, 친절하고 예의바른 자세 등을 칭찬한다고 하여 그들의 만행을 묵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뱃길을 따라 간 세토나이카이 여행을 기록하며 일본을 '두 얼굴을 가진 나라'라고 평한다.

"일본은 두 얼굴을 가진 나라다.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 오만하다. 우리는 그 실체를 똑똑히 알고 그들을 대해야 지난날과 같은 역사의 과오를 남기지 않는다. (중략) 일본인들이 '하이, 하이'하면서 혼을 뺄 듯한 친절 뒤에 숨은 비수를 늘 경계해야 그들에게 속지 않을 게다."

싸움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상대의 장점과 약점을 제대로 알고 싸울 때에 그 싸움은 진정 가치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을 무턱대고 폄하하기보다는 제대로 살펴보고 그들과 정정당당히 경쟁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을 뛰어넘는 역사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일본기행

박도 지음, 새로운사람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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