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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어 준 새날이 책상
내가 만들어 준 새날이 책상 ⓒ 전희식
어제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치른 날인데 오후에 새날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두 100점 맞았다고 했다. 새날이는 이번에 세 과목을 봤다. 8월에 또 시험이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때 보려고 국어, 영어, 수학만 본 것이다.

나는 훈탄과 목초액을 만드느라 마당에 왕겨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태우고 있었다. 모두 100점이라 하기에 나는 기뻐하면서 “그래 우리 새날이 수고했다. 집에 와서 오늘 밥 두 그릇 먹어라”고 말했다.
하도 밥을 많이 먹기에 밥 많이 먹으면 아빠가 일 많이 하고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구박을 했기 때문이다.

<실상사 작은학교>의 3학년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지만 새날이도 최근 열흘 동안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와서 공부를 했는데 지난 겨울방학 때는 제법 열심히 공부 하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텔레비전도 자주 보고 툭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해서 “이왕 치는 시험인데 후회 없도록 좀 부지런히 하라”고 했다.

그러면 새날이는 뒤통수를 긁적긁적 하면서 책상 앞으로 가곤 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맘대로 뛰어 놀다가 종일 집안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는 것이 힘들겠다 싶기도 해 안쓰러운 마음도 없진 않았다.

저녁에 새날이와 인터넷에 들어가서 몇 군데 검정고시 학원 사이트에 올라 와 있는 정답지를 확인해 봤더니 세 과목 모두 100점이 확실했다. 새날이가 학교 친구들과 컴퓨터로 한참 메신저를 날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먼저 잠들었다.

한 친구가 새날이에게 “너 시험 잘 쳤니?”라고 물으니까 새날이가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다시 그 친구가 “그럼 너 평균이 99.999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라고 하는 재치 있는 대화를 떠올리며 기분좋게 잠들었다.

왕겨를 태워 훈탄과 목초액을 만들고 있다. 날이 맑고 바람이 없어 작업이 참 순조로웠다.
왕겨를 태워 훈탄과 목초액을 만들고 있다. 날이 맑고 바람이 없어 작업이 참 순조로웠다. ⓒ 전희식
새날이의 시험에 내가 크게 도움 된 것이 있다. 아침에 시험 치러 가는 새날이에게 시험 잘 보라고 '말' 한 게 그대로 된 것이다. 새날이는 시험지를 잘 봤을 뿐 아니라 잘 쓰기까지 한 것이다.

검정고시 기출문제를 뽑아 달라기에 내가 1998년도부터 작년까지의 고입검정고시 기출문제를 인터넷에서 찾아 뽑아 준 게 시험 3-4일 전이었다. 겨울 방학 때 새날이에게 앉은뱅이 책상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지리산 실상사로 새날이가 떠나가고 나서 새날이 책상을 없애 버렸다. 그래서 두꺼운 널빤지를 대패로 깨끗이 밀고 토치램프로 은은하게 구워 나뭇결을 살려 공부하기 좋은 분위기가 나게 했다.

한번은 라면을 같이 끓여 먹다가 내 것을 다 먹고 새날이 그릇에는 좀 남아 있기에 한 젓가락 건져 먹으면서 라면 많이 먹으면 시험 못 친다고 했더니 새날이는 픽 웃었다. 라면 뺏어먹는 구실이라는 것을 안다는 투다. 우리 집에서 주로 먹는 ‘더불어식품’에서 나온 <우리밀 감자라면>은 맛이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굴뚝 작업 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집안일을 해야 시험 잘 친다고 하면서 일을 시켰을 때도 한번 픽 웃고는 일을 잘 했다. 새날이는 웃는 게 꼭 황소가 웃는 것 같다. 빙긋이 웃는 모습을 쳐다보면 어색한 듯 덤덤한 얼굴표정이 재밌다.

천성이 그런 면도 있겠고, <실상사 작은학교> 다니면서 몸에 익힌 여유와 자유로움이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정하고 거기에 전념하는 모습으로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주로 만화 사이트에서 비비적대는 새날이를 보고 “새날아, 너 컴퓨터 너무 오래한다. 그 속에 뭐가 들었다고 그러냐. 시험 잘 치고 못 치고 때문이 아니라 시험이 며칠 안 남았는데 지금은 시험공부에 집중해야지 컴퓨터 속에서 빈둥대냐” 라고 하면 바로 컴퓨터를 껐다.

어렵다는 수학문제 몇 개 내가 풀어 준 적이 있다. 1차 부등식이었는데 식을 만들라는 문제였다. 매우 정교한 문제였지만 다행히 한 번에 식을 세울 수 있었다. 문제를 공식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무엇을 미지수 엑스(X)로 할 것인가가 문제풀이의 첫 열쇠가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놀랄 정도로 새날이는 이해가 빠르다. 같이 일을 하다보면 새들이랑 새날이가 경쟁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내놓는 때가 많다. 내가 전혀 생각 하지 못한 것들이라 놀라곤 한다.

새날이는 현재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기술학교'에 가려고 한다.
어느 고등학교 갈 건지 친구들끼리 얘기해 본적이 있냐니까 처음에는 경남 거창고등학교 가고 싶다고 하기에 내가 풀무학교를 권했다. 새날이는 역시 픽 한번 웃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좀 있다 새날이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굔데 가라고 하냐고 묻기에 “농업학교라 우선 등록금이 싸고 새날이 시집 안 보내고 내가 집에서 일 시켜 먹을 거라 그렇다”고 했다. 역시 새날이는 픽 웃었다.

첫 졸업생이 된 작년 3학년 아이들이 검정고시 치고 고등학교 진학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올해는 실상사 작은학교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자기 진로를 잘 잡아가도록 하고 싶다.

마침 내가 3학년 학부모회장이라 담임과 의논하여 대안고등학교들도 방문하여 진학상담도 하고 싶다. 대안 중학교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에서 시험과 점수에 매이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언젠가 바뀔 날이 올 것이다.

새날이도 지난 겨울방학 때 과외를 했다. 영어 한 과목을 했는데 아는 분이 있어 일주일에 이틀 영어지도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도 방학 때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한다고 들었다. 대안학교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점수와 성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급학교 진학의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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