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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일보 외고의 수준이 저하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좋은 필자들을 대상으로 조선일보에 기고도 인터뷰도 하지 말자고 바람을 잡은 주모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조를 철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더 확대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열심히 기고하는 이들 중에 고려대 서지문 교수가 있다.

서 교수는 3월27일자로 시론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을 기고했다. 가정법을 전제로 하여 온갖 독설을 퍼부어놓았다. 그는 “노 대통령이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이라도 되며, 그가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나라의 모든 꼬이고 뒤틀린 문제들이 깨끗이 해결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라며 탄핵에 항의하는 민중을 꾸짖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절대 다수당이 된다면 민중의 반 이상은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토를 달았어도 너무 심하다. 결국 서 교수의 논지는, 경미한 사안으로 대책 없이 탄핵을 결행한 것은 잘못이지만, 노 대통령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헌재 판결이 나기 전에 탄핵이 철회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말이 되는가?

서 교수는 "대통령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열린우리당마저 거대여당이 되면, 극심한 보-혁(保-革)의 갈등을 야기할 것이 뻔하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잠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민을 들먹였지만 그 불안감은 서 교수 자신의 것일 터. 하여 내가 그 불안감을 씻어드리고자 한다.

서 교수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다 보수정당이다.이제 부패정치는 청산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어떻게 담보하느냐가 될 것이다. 서 교수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한나라당이 건강한 야당으로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지를 곰곰 따져보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 앞에 죄인이 되어 정죄(定罪)를 기다려야 할 야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게 사리에 맞지 않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정죄’란 “죄가 있는 것으로 규정함”의 뜻이 아니던가? 스스로 그리 규정하고도 지지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도무지 싫고, 죄인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면 해답은 민노당 지지로 귀결된다. 서 교수님은 앞으로 민노당을 지지하세요!

나도 앞으로 민노당을 지지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적어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둘 중 한 표는 민노당에 찍을 생각이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조선일보 기고(3월11일자) 및 인터뷰(3월18일자), 그리고 이에 대한 대변인의 변명을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박영선 대변인은 “조선일보 독자에게도 탄핵이 부당하다고 알려야겠기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특정 미디어에 대해 인터뷰 하고 안하고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선진정당이 될 수 없다”면서 “진보 보수를 뛰어넘는 정당이 돼야 하는데 (언론에 대해) 양극을 달리는 마인드를 가진 정당으로는 다수 의석을 확보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독자들 중에서도 탄핵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며, 탄핵이 정당했다고 굳게 믿는 골수독자들에게 정 의장의 기고나 인터뷰는 전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정당이라니. 이로써 나는 확실히 진보정당으로 간다. 당장에는 다수 의석 확보도 중요하겠지만,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미덕이 더 중요하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수구신문과 더불어 개혁을 하려는가?

열린우리당은 언론에 대해 양극을 달리는 마인드를 가진 지지자들에게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도덕적 비난을 무릎 쓰고 새로운 역사를 열기 위해 분당을 감행했던 열린우리당이 아닌가? 그런 정당이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신문에 기대할 게 있는가? 노무현은 바로 그양극을 달리는 마인드로 대통령이 되었다. 하물며 다수 의석에서랴.

좋다. 열린우리당은 대변인이 밝혔듯이 앞으로도 현안과 이슈에 따라 조선일보 인터뷰를 계속 해라. 이로써 서지문 교수가 불안해하는 보혁구도가 뿌리를 내리는 것도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총선은 보수정당-진보정당-지역당의 삼각구도로 재편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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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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