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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한겨레
'좌파'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붉은 피, 그리고 높이 쳐든 손이 그것이다. 오른손이 정당하고 바른 손이라는 인식에 붙들려 왼손인 좌(左)는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온 내게 있어 '좌파'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위에 든 이미지의 연장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 의식의 전환점'홍세화'

하지만 '홍세화'를 시작으로 내 인식의 틀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도통 몰랐다. 우연히 손에 넣은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감상적으로 읽었을 뿐. 그가 고국으로 돌아온 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가 '민주노동당'의 지지자이며 '학벌 없는 사회'의 대표로 활동한다는 것도 몰랐으며, <한겨레>에서 그의 칼럼을 접한 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었다. 그의 사상을 책만을 통해 '얼마 간의 거리'에서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으니 말이다.

그 '얼마 간의 거리'는 소위 좌파인 그에 대해,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힌 데서 기인하는 거리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거리감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조작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 '누군가'를 찾는 일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동기로 작용했다.

이 책을 읽는 행위는 무지몽매하게 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는 일상인인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민초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향한 눈을 뜨게 하는 놀라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아웃사이더에 대한 단상

이 책의 부제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에서 나의 시선은 잠시 머물렀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는 곧 아웃사이더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돌아가는 정세로 봐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형국이 아닌가.

우파에 비해 여전히 약세이지만, 그래도 이제 좌파는 우리 시대의 어엿한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젊은층에게는 주류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 '홍세화'가 우뚝 서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똘레랑스'라는 상징을 내걸었던 그도 이제는 더이상 변방의 위치인 아웃사이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홍세화는 왜 아웃사이더를 자칭하는가? 그가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명명하는 것은 철저히 '수구세력'을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판 속에 대안을 찾아서

처음 책과의 면식에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란 감상적인 제목은 '홍세화'의 감수성에 바탕한 가벼운 산문집이려니 했다. 하지만 가볍게 책장을 넘기던 손은 점점 더디어갔다. 칼럼 모음인 이 책은 제목과는 비례하지 않게 진중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책읽기는 그가 누구에게 악역인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한민국의 '사회 귀족’에 맞서는 악역을 자처한다. 그가 가리키는 '사회귀족’은 이른바 '사회명사',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우리들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선망하며 부러워하는, 가진 것 많고 많이 배운 유명인들이다.

그는 사회 귀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사회 귀족들은 사회의 모든 부문을 장악해 시민들을 그들의 발 앞에 묶어 놓고 그들만의 대한민국임을 소리친다고.

그 대표적 예로 <조선일보>와 거기에 빌붙은 수구 지식인들(이문열, 이회창, 박완서)을 거론한다. '안티 조선일보'의 유명세가 껍데기가 아님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일보>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데 이보다 더 구체적인 텍스트는 없으리라 여겨질 만큼 적나라한 수구언론의 거짓말 나열이 흥미롭다.

또한 보수와 진보에 대한 나름의 시각도 제시한다. 프랑스의 예를 들어 진정한 보수는 '진보보다 우익과 멀다'는 논리이다. 극우는 다름의 관계를, 우열의 관계로 환치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비열한 속성을 이용, 혐오-배제의 논리를 관철시킨다고 한다. 그 적나라한 예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종주의와 망국적 지역주의다.

이 책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신문 개혁은 오직 시민 의식의 성숙에 의해 가능함을 시사한다. 특히 광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신문을 만들고 있는 우리의 신문 시장을 르몽드지와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그 밖에도 교육비의 국가 전액 부담과 주5일 근무제 등도 명확하게 주장한다.

이론서에 머물고 마는 여느 사회비평서에 비해 아주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살기' 위한 따뜻한 시선에 근거한 '홍세화'의 글을 대면해 보시길 바란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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