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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결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각 일간지 1면.
ⓒ 신미희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고삐를 높이며 '탄핵정국'을 주도해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뒤늦은 '나라 걱정'을 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뒤 사설을 통해 '합법적인 결정'임을 내내 강조했다. 따라서 법 절차에 따라 원만하게 탄핵처리를 하자는 한결같은 주장을 펼쳤다. 또 조속한 탄핵처리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전폭적인 협조를 요구했다.

이들 신문은 11일까지만 해도 "탄핵안 표결밖에 다른 길이 없다"면서도 한쪽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타협'을 주문했었다. 총선과 관련, 고건 대행이 이끌 정부의 엄정중립을 재차 촉구하는 모습 역시 동일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북한위협론, 이라크 파병문제까지 연계하는 구태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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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언론 "정치공세" 비난 속 <조선>만 찬성


조선,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 협력하라"

▲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제하의 조선일보 13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13일자 사설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를 통해 "온갖 풍상을 겪어온 우리 국민조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로 대통령 탄핵결의를 설명했다. 그러나 탄핵결정에 대한 정당성, 합법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신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국회 결정에 즉각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고 사려깊은 처신"이라며 "헌재가 순조롭게 탄핵심판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노 대통령이 협력하는 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조선일보는 또 야권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못지않게 더한 책임을 느껴야 할 대상자는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야권"임을 전제하고 "승리감에 도취돼 경거망동하거나 분열의 자극적 언동을 한다면 결코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숙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고건 총리를 비롯한 공직자의 사명감과 함께 안보점검 및 기업의 전폭적 협력, 사회질서 유지 등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 "한미연합 방위태세는 우선적으로 점검, 강화돼야 하고 이라크 파견군의 준비엔 한 치의 허점도 있어선 안된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법을 보고 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절제하고 법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나라를 지키고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정작 가장 힘주어 강조한 대목은 관련한 정부의 엄정중립이다. 조선일보는 "이번 총선은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를 연계한 데다 탄핵사태까지 겹쳐 사생결단의 싸움판이 될 것"이라며 고 대행에게 "정치에 눈을 감아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중앙, "노 대통령은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중앙일보>는 13일자 사설 '평상심으로 슬기롭게 풀어가자'를 통해 "전인미답의 길이지만 모두 단단히 마음을 먹고 흔들리지 않고 한발한발 앞으로 나가야 한다"며 차질없는 헌정유지를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국회의원 3분의 2의 판단으로 결정된, 합당한 절차에 따른 이번 사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제한 뒤 "국회표결 과정에서 박관용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해석했다. 또 "헌법재판소 판단도 적법절차에 따라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며 나아가 "혼란을 야기시키는 세력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국민이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안보상황과 관련, 대북위협론을 언급했다. 중앙일보는 "북한 핵문제는 북미간 불신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어 언제라도 화약고가 될 수 있다"며 "꽃게잡이 철을 앞두고 남북간 충돌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지 상황의 악화로 우리 장병들의 안전확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며 때아닌 이라크 파병문제를 들먹이기도 했다. 따라서 중앙일보는 "북한이 우리의 이러한 틀을 엿보지 못하게 군은 본연의 국방업무에 대해 정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사태를 수습할 책임자로 정치권을 꼽고, 전면적인 정쟁중단과 여야 대표자 회담의 조속한 개최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마지막까지 추궁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반성과 책임이었다.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은 헌정 사장 최초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이 됐음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며 "국회 결정이 내려진 만큼 겸허하게 받아들여 정부가 현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 "법치정신으로 돌아가자"

<동아일보> 역시 탄핵정국의 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묻는 것은 두 신문과 같았으나 '국정공백 최소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데 역점을 뒀다. 동아일보는 그동안에도 탄핵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야당의 정략적인 처사를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동아일보는 "더 이상의 국가적인 불행이 없도록 탄핵사태로 대립양상이 확대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며 "통합과 대화의 기본 원칙을 회복하자"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그 첫걸음으로 법률이 정한대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는 법치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덧붙였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자업자득'이란 표현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책임을 간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탄핵안이 통과되던 날 아침의 한발 늦은 사과를 보면서 국정 전체를 보는 넓은 눈과 책임감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앞세웠던 대통령의 편협한 리더십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동아일보의 생각이다.

한겨레, "국민이 짓밟힌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자"

<한겨레>는 13일 사설 '야만의 정치로 후퇴한 날'을 1면에 전진 배치하고 "수구세력의 '탄핵쿠데타'를 규탄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한겨레는 "꺼져가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낡은 정치세력이 헌법을 가장한 '의회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찬탈하려 했다"면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한겨레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물러나는 국회의원들이 탄핵할 수 있는가"라며 이번 결정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불과 한달 뒤면 새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국회의원들이 4년 남짓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다수 힘으로 몰아내는 게 과연 어떤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반문이다. 한겨레는 탄핵소추가 법률적으로도 정당성을 지니지 못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원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날치기로 탄핵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안하무인, 오만불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야당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번 탄핵정국의 원인을 야당의 총선정략으로 풀이했다. 한겨레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로 나타날 위기감을 느낀 정치세력이 지역주의에 기대 개혁을 외면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낡은 정치세력과 야합한 것이 탄핵안 처리"라고 규정했다.

국민의 외면으로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를 반전시키고 흩어진 지지층을 결집해 전세를 뒤집어보겠다는 얄팍한 잔꾀에 국민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결국 의회 쿠데타를 감행한 낡은 세력을 심판하는 것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짓밟힌 민주주의를 국민들이 나서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온몸으로 민주화를 지켜온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과 <한겨레>의 너무나 다른 사진
탄핵결의 다룬 1면 사진 대조

▲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13일자 1면
ⓒ오마이뉴스 신미희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가 같은 사건을 두고 대조적인 사진을 게재했다. 두 신문은 13일자에서 여느 신문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결의를 1면 톱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 탄핵가결·권한정지'로, 한겨레는 '탄핵안 가결 노 대통령 직무정지'로 각각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시선을 끈 것은 제목이 아닌 사진기사. 조선일보는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인 12일 오후 경남 진해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 크기는 1면의 절반에 해당될 정도이다.

반면, 한겨레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에서 농성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경위들과 야당 의원들이 강제로 끌어내려 하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1면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비록 묵념하는 장면이지만,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탄핵결의와 연계시켜 부각한 대신, 한겨레는 '의회쿠데타로'로 불리는 야당의 폭거를 저지하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저항을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 신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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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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