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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정씨
서훈정씨 ⓒ 권윤영
“우리 것을 찾고 연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더구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어울려서 호흡하는 일이 더없이 즐겁고 소중합니다.”

설화민요연구회 운영자인 서훈정(35)씨의 주말은 특별하다. 다른 직장인들은 달콤한 늦잠의 유혹에 빠져서 휴일을 보내겠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주말이면 녹음테이프, 노트, 카메라를 들고 전국 각지로 떠난다. 바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다.

그녀가 우리의 이야기, 민요를 찾아 나선 것은 지난 92년부터 방송통신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우리 것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선배 1명과 의기투합해서 회원을 모집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 활동이 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나 여름휴가철을 이용, 1년에 6~7차례 전국 각지를 누볐으니 지금껏 70회 가량을 우리 소리를 찾아 떠난 셈이다. 현지 조사를 위해서는 사전답사도 가야하기에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다만 열정을 갖고 시작한 회원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다.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일일이 발로 뛰어 찾아나서야 하는 일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었겠지요. 설화민요연구는 신념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 것을 찾고 지켜나간다는 것은 아집이 없으면 하지 못하죠. 미련스러워야 해요.”

민요, 설화의 조사 대상자는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늦은 새벽까지 육성을 녹취(錄取)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도 있다. 우리 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1년만 더 빨리 오지 그랬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좀 더 서두르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해진다.

방문한 시골 마을에서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경우가 더 많다. 인생의 뒤안길에 선 노인들은 삶의 참맛을 다 알고 있다. 한마디 한마디가 철학자일 수도 있고 부처의 혜안일 수도 있다. 그녀는 생활 속에 숨겨져 있는 생활의 지혜와 따뜻한 온정을 덤으로 얻어오기도 한다.

전국 각지로 현지조사를 나선다.
전국 각지로 현지조사를 나선다. ⓒ 권윤영
“진도로 2박 3일 조사를 갔던 적이 있어요. 출발하는 날 태풍이 불어서 밤 9시에 출발했는데 다음날 아침 8시에 도착을 했죠. 마을 전체 어른들이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환영하며 맞아줬는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현지조사에서 녹취를 한 자료들은 1년에 한번 <하늘아, 소리야>라는 한 권의 자료집으로 완성된다. 현지 조사에 나서는 인원은 4~5명 정도지만 사전답사, 워드작업, 자료집을 만드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을 그녀 혼자서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녹취 후 자료집 '하늘아, 소리야'를 발간한다
현장에서 녹취 후 자료집 '하늘아, 소리야'를 발간한다 ⓒ 권윤영
전에는 비용문제도 만만치 않았지만 3년 전부터 시에서 나오는 문예진흥기금이 일정부분 보탬이 되고 있다.

1년에 한두 개의 새로운 민요, 설화를 찾을 수 있지만, 이미 알려진 것이라 해도 더없이 소중한 자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을 통해 구전의 변천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보면 모두가 똑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만의 음성이나 가락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로 우리의 소리는 전해진다.

이제는 이러한 현지조사를 벌이는 팀도 찾아보기 힘들다. 워낙 작업이 고되다 보니 학자들도 두손 두발을 든 지 오래. 총 82권으로 이뤄진 ‘구비문학대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책도 출판되고 있지 않다.

“사실 채록(採錄)한 후 자료집을 내는 데에 그쳐서는 안돼요. 그 이후에 해야 할 작업들이 더 어마어마하지만 여력이 없어요. ‘민요’하나만 해도 여러 가지 분류를 해야 하고 그 분류 안에서도 세세하게 나눠집니다. 단순히 채록으로 끝낼 일이 아니죠.”

그녀는 스스로를 ‘바보’라 부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웃으며 양보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다. 예전에 같이 하던 사람들에게 “너 아직도 하고 있냐?”, “너는 일하고 결혼했지?”라는 말을 들어도 그녀는 웃음으로 답한다.

현재 교육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어른들에게 들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자신이 수집한 수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학생들을 위한 책을 발간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시간은 오래 걸릴지라도 언젠가 한 가지는 이룰 수 있겠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니까 힘들 겨를이 없어요. 이제 날이 따뜻해졌으니 다시 현지조사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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