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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상
ⓒ 이종원
우리는 지금 통일시대에 살고 있다

난 보통 여행후기를 후닥닥 쓰는 편이다. 생각나는 대로 줄줄 쓰다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데 금강산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계속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우리 말을 쓰고 우리 글을 쓰는 우리 형제들이 불과 30리 안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생각할 때 내 혈육이 집안 돈을 다 훔쳐가 탕진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대할까? 참 난감하다. 그냥 내쫓을 것인지 아니면 용서해 줄 것인지….

결론은 성경 말씀처럼 따뜻이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밖에 없는 내 핏줄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탕자는 이제 갈 곳이 없다. 손 벌릴 친구도 없다. 실낱같은 자존심만이 유일한 버팀목인 것이다.

자존심을 무릅쓰고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금강산을 개방했고, 심장부인 평양과 백두산마저 보여줄 태세다. 그만큼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벼랑 끝에 놓인 형제에게 의지할 곳이 어디일까? 오로지 핏줄 나눈 형제밖에 없지 않는가?

50년 전 쓰라린 과거는 엄연히 살아있다. 그 비극을 잊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과거지향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보다 큰 그림을 그려보자. 지구의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조그만 땅덩어리가 반이 뚝 잘려서 아웅다웅 싸운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 구룡폭포
ⓒ 이종원
주변엔 그 싸움에 재미를 붙이는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은 누구보다 통일을 반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패거리의 보스가 되고 싶었고 경제적 이득을 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과 북은 공멸하고 만다. 그렇다면 평화통일을 해야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양보와 타협밖에 없다. 힘이 센 쪽에서 더욱 유연한 자세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열지 않을까?

이번 여정에서 상반된 이념과 이질화된 언어에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 50년동안 갈라놓은 세월이 이렇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될지 모른다. 그럴수록 그 괴리감은 더욱 커지고 만다.

난 금강산 관광이 효도여행으로 흐르는 것이 못내 아쉽다. 외적인 아름다움 말고도 뭔가 흐느끼게 하는 것이 금강산 여정이다. 아름다운 금강산을 바라보는 것보다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내 형제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여정이 아닐까? 그래서 남한의 많은 젊은이들이 금강산을 찾을 것을 권한다.

휴전선을 넘으며

남측 출입국사무소다. 북측에서 통과가 늦어 30여분을 통일전망대에서 기다렸다. 과일, 떡 등이 통관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가방에서 그걸 꺼내먹느라고 분주하다. 딸기가 나오고, 자몽이 나오고 인절미까지 나왔다.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은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핸드폰까지 맡기고 북에 올라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제 2박 3일 동안 남한과 단절된 생활을 해야한다.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내나라 내 땅에 가는데 외국 나가는 것보다 절차가 복잡하니 말이다.

버스기사는 조선족이다. 남북을 왕래하면서 금강산 여러 곳으로 우릴 안내해주신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고이 모아 고향 연변에 송금한다고 한다.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남쪽사람이 북쪽을 가고 그걸 연결해주는 기사는 조선족 중국인이라니….

국군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남방한계선을 넘어간다. 세 겹의 철책이 가슴 떨리게 한다. 남쪽은 수비형 철책이고 북쪽은 공격형 철책이기에 한 겹이다. 남방한계선 출입문을 통해 비무장 지대로 들어간다. 이것이 소위 휴전선이다. 원래 전쟁 중인데 지금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하지 않는가?

강화도 옆의 교동도에서 시작하여 판문점-철원-김화-이곳 명호리까지 총 155마일의 철책이 이어진 것이다. 세계 유일의 이념 대립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비무장지대의 남북 4km만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생태의 보고다. 긴장 속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 상팔담
ⓒ 이종원
나는 지금 긴장과 평화가 함께 공존하는 사슬을 넘어가고 있다. 짜릿한 전율이 느껴온다. 세상에 이런 긴박한 곳이 어디 있을까? 드디어 북한의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황색표지판을 지났다.

말로만 들었던 인민군을 아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차창에서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지어 보여도 그들은 아무 표정도 없다. 그 무미건조한 얼굴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이 함박웃음을 보여줄 때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조금 지나서 검문소가 나온다. 차는 멈춰서면서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어느 누구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북한군이 버스에 오르기 때문이다. 뚜벅뚜벅. 얼굴은 시커멓고 피부는 거칠었다. 허리에 찬 권총이 움찔하게 만든다. 처음 보는 북한군을 가장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한때 늑대로 알았던 인민군이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안내선생, 몇 명 탔나?"
"34명입니다."

차내를 힐끗 돌아보더니 그냥 내려 버린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버스가 지나칠 때마다 군인들은 부동자세로 서있다. 호수에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두루미만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고갈 것이다.

북쪽 산은 완전히 민둥산으로 변해있다. 땔감으로 나무를 모조리 베어서 그럴 것이다. 군인들이 머무는 막사는 말 그대로 지붕만 간신히 놓여 있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군 생활을 한다니 우리의 적군이지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슬슬 민간인도 보이기 시작한다. 등짐을 지고 있는 아낙과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두른 학생들도 보인다. 우리네 70년대 시골의 모습이랄까? 그들은 과연 우리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분단의 현실을 가장 절묘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휴전선을 넘는 1시간의 버스 여정이다. 아마 통일이 되면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볼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북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세관검사를 한다. 남한처럼 자유롭게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일렬로 들어가야 한다. 벌써부터 사회주의 체제에 진입했음을 실감한다. 우리 일행 중에서 한 사람이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썼다가 혼쭐났다. 멀쩡한 사람이 직업이 없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나보다. 결국 그는 출입증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숙박업을 하다가 잠시 사업 구상차 쉬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 중에 '조대흠'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는 '흠'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가 보다. 그에게 몇 번을 물어본다. 이름 정말 맞냐고?

"제 이름 조대흠 맞다니까요…."

온정리 버스 안에서

북한 주민이 다니는 길과 관광버스가 다니는 길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철조망 사이로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장전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땔감을 지고 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애타게 손을 흔들었건만 민간인 역시 무표정이다. 북한의 권력층들은 어떻게 이들을 설득했을까? 김정숙휴양소 옆에 붙어 있는 붉은 글씨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가는 길 험해도 웃으며 살자."

▲ 북한에서 만든 정몽헌 회장의 가묘
ⓒ 이종원
정몽헌 공원

잠시 시간이 남아 온정각 앞에 있는 '정몽헌 공원'에 들렀다. 실은 난 그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현대의 퍼주기식 경영 때문에 그룹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손가락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북한 땅을 밟아보니 '그가 참 큰 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질시와 수모를 참아가며 일관되게 대북사업을 진행했고 아버지 정주영의 유지를 가장 잘 따랐던 것이다.

그도 사업성이 희박한 이곳에 돈을 쏟아 붓고 싶었겠는가? 민족의 미래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기에 힘든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 곳에 와서야 그가 양심 있는 기업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나보다. 짓누르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북한은 금강산이 보이는 곳 양지바른 곳에 그의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도올이 쓴 비문처럼 그의 혼과 백은 금강산에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

▲ 여성 안내원과 나란히 걸어가는 조대흠씨
ⓒ 이종원
구룡연에서의 '사랑이야기'

금강산의 얼음이 사르르 녹고 있다. 아마 우리 일행 대흠이와 북한 여성 안내원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 아닐까? 구룡폭포의 안내원인데 보기 드문 미인이다. 총각 대흠이가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안내원이 대흠이 보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이렇게 잘생긴 분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습네다. 남한 여자들 이상합네다."
"저 동무 때문에 북한에 남아야겠어요."

그 소리를 듣고 뒤에서 막 웃었다. 사랑은 묘한 것이야. 대흠이는 다음달에도 북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교예단

온천을 마치면 북한 교예관람이 기다리고 있다. 온정각 옆 금강산 문화회관 건물에서 하루 한 차례 공연이 있다. 교예는 연극, 무용, 체조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란다. 묘기만 보여주는 서커스와는 다르다고 한다. 악단까지 총 12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묘기를 현장에서 보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다. 각종 국제대회의 입상작만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인민배우, 공훈배우들의 묘기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줄넘기, 널뛰기, 봉재주, 장대 재주 등 얼마나 많은 손뼉을 쳤는지 모른다.

어린 학생들이 저런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훈련을 많이 받았겠는가? 그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청중과 다함께 손뼉을 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시 한번 금강산을 찾게 되면 교예단 때문일지도 모른다

▲ 교예단과 북한의 음식
ⓒ 이종원
금강원 북한음식

온정각에서 뷔페로 먹을 수 있지만 왠지 북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무려 25달러나 되지만 북한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북한인이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은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음식을 먹어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50달러짜리도 기꺼이 먹을 수 있다.

메뉴는 도루묵튀김 3마리, 꿩만두 2개씩, 흑돼지 불고기, 석죽(홍합죽), 냉면이 전부다. 반찬은 김치와 금강산도라지, 고사리가 나온다. 맛이나 값으로 따지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지만 북에서는 이것이 최고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남길 수 없었다.

고성 앞바다에서 잡아왔다는 도루묵은 두툼한 알을 씹는 맛이 그만이며 꿩만두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흑돼지는 털을 잘 깎지 않아서 그런지 돼지털도 함께 넘어간다.

접대하는 아가씨에게 호칭을 어떻게 부를지 몰라 "선생동무"라고 외쳤다.

"혹시 이 돼지 흰 돼지에 검은색 물감 칠한 것 아닙니까?"

농담 한 번 했더니, 아주 정색을 한다.

"북에는 흰 돼지가 별로 없어요, 까만 돼지 맞습네다."

평양소주에 잔을 가득 채우고 통일을 기원한다.

"통일 만세."

"내가 지은 시 좀 들어보소"

일행 중에 시인이 한 분 계신다. 체코에서 샀다는 희한한 털모자를 쓰고 바다를 보러 나갔다. 달빛이 바다를 비추고 있는 장전항 선창가에 앉으니 뜨거운 시심이 올라온 것이다. 급히 수첩을 꺼내들고 시를 적어갔다. 순찰 도는 북한군이 그 모습을 본 것이다. 희한한 모자를 쓴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글을 쓰고 있으니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동무 여기서 뭐하고 있소?"
"아-군인동무, 이리 앉으세요… 제가 쓴 시를 들어보세요."

시인은 목청을 가다듬고 금강에 대한 찬미가 가득 담긴 시를 읊은 것이다. 시 낭송을 마치고 초조하게 북한군인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거저… 시 좀 잘 쓰시라요."

그 소리를 듣고 밤새 술을 퍼마셨다. 아마 시인은 북한에서 시집 한 권 팔지 못할 것이다.

해금강 호텔에서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그냥 잠자기에는 왠지 허전하다. 해금강 호텔로 달려갔다.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호텔의 야경이 그림 같다. 그 앞에 있는 장전항은 큰 항구임에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전력난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예이기도 하다.

해금강 호텔에는 주점이 있다. 필리핀 여자들이 남한 가요를 구성지게 부른다. 북한 땅에서 외국인이 남한 노래를 부르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 귀면암과 통일계단
ⓒ 이종원
'통일계단'

만물상에 오르려면 급경사의 철제 계단을 올라야한다. 원래는 안심대 하늘문 쪽으로 길이 있었는데 길이 좁아 6개월 전에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현대에서 자재를 대고 북한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 곳은 군사지역이라 헬기가 뜰 수 없어 북한사람들이 일일이 무거운 철제 계단을 등에 지고 날랐다고 한다. 남측관광객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쓴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난 이 계단을 '통일계단'이라고 명명해 주었다.

도끼와 삽을 멘 북한 일꾼들이 우리보다 먼저 산을 올라 꽁꽁 언 얼음을 깨어 미끄러지지 않는 등산로를 만들어 주었다. 하도 고마워서,

"선생동무 덕에 편안한 등산이 되었습니다."

배시시 웃으면서 '할 일을 한 것인데…'라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작은 일부터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면 통일이 빨리 올 것이다.

남북이 함께 통일의 노래를

▲ 만물상을 보고 만세를 외치는 회원들
ⓒ 이종원
만물상이 가장 잘 보이는 천선대는 10여명만이 서 있을 정도로 터가 좁은 곳이다. 우리 일행들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하나가 되었다.

"안내원 동무… 우리 만세 삼창 외쳐도 되겠습니까?"

"좋지요…. 저희도 함께 하겠습네다."

우리 일행과 북한 안내원은 하나가 되어 만세 삼창을 외쳤다. 남쪽에서 매번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만 이번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만세, 만세, 만세"를 목놓아 흐느꼈다. 무엇을 위해 만세를 외쳤는지는 각자 알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함께 불렀다. 그 감동이 금강산 1만2천봉 골짜기 곳곳에 메아리쳤다. 마음속엔 이미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북측안내원이 내 손을 꼭 부여잡고 한 마디 한다.

"통일되어서 다시 만납세다."

난 아직도 그 뜨거운 손길을 잊을 수 없다. 그 손길이야말로 냉전의 사슬을 끊는 화해의 손길이 아닌가?

▲ 온정각에서 아쉬움을 달래며 만세 삼창을 외쳐본다.
ⓒ 이종원
북한을 떠나며

온정각이다. 마지막으로 금강의 비로봉을 배경으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통일 만세! 만세! 만세!"

이제 몇 시간 후면 남한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변함없이 우리의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이번 여정을 통해 1만2천 봉우리 중 각자의 봉우리 하나씩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통일의 시대가 다가올수록 우린 그걸 자주 꺼내 봐야 한다. 그 곳엔 봉우리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포의 눈물과 한숨소리도 함께 묻어 있다.

그 단단했던 금강산의 얼음도 계절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남북의 뜨거운 열정이 금강산의 얼음을 녹이고 있다. 50년 동안 얼어붙었던 동토는 이제 화해와 용서로 녹아 가고 있다.

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주 금강산을 찾아가는 것이다. 외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내면의 슬픔도 함께 발견해야한다. 금강산 여정은 눈으로 재미를 느끼는 관광이 되어서는 안된다. 50년 동안 얼어붙은 눈물과 한숨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그 눈물은 사랑만이 감싸줄 수 있다. 그 숙제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통일은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오늘의 만세 외침을 잊지 말자'.

'만물상을 바라보며 불렀던 통일의 노래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2월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간 금강산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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