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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는 해를 받고 선 우체통에서 異國이 느껴진다
ⓒ 최윤미
마라도에 다녀오기 전에, 마라도는 존재하는 하나의 섬이라기보다 어떤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라도는 '미지' 혹은 '신비'같은 수식어와 어울려 상상 속에서는 늘 코발트빛으로 잔잔히 출렁이던,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곤 했다.

간간히 국토 최남단이라는 설명이 현실감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멀리 떨어져있는 아련한 느낌을 더할 뿐이었다. 지도상에서 보아도 제주도에 비하면 작은 점이나 흔적 정도로만 느껴지던 섬.

하지만 실재하는 마라도는 생각처럼 멀리 있지 않았다.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마라도는 꽤 선명하게 바라다 보였다. 바다가 잔잔해서 그랬던지 높낮이 없이 평평한 모습이 바다 위에 떠있는 커다란 뗏목 하나처럼 느껴졌다.

파도가 높은 날은 가물가물 신기루 같겠다, 파도가 섬 전체를 삼켜버리지는 않을까라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항선을 타고 마라도로 들어갔다.

▲ 바다 위에 떠있는 듯 마라섬이 출렁인다
ⓒ 최윤미
도항선 삼영호는 마라도의 동쪽 ‘살레덕’이라는 포구에 닿았다. 모슬포에서 직선거리로 11km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꼬박 40분 정도가 걸렸다. 동쪽 해안은 마라도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 살레덕에서 바라보면 현무암 절벽이었다. 파도 때문에 아래쪽엔 해식 동굴들이 발달해 있었고 햇빛을 등지고 해안선을 따라 멋진 실루엣을 보여주었다.

살레덕에 내렸다고 해서 마라도가 온전한 제 풍경을 다 보여주지는 않았다. 배를 타고 오면서 본 풍경들은 높낮이도 없이 그저 평평한 지대일 뿐이었고, 비탈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비로소 마라도 풍경의 절반 정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 섬의 절반 정도가 억새로 뒤덮여 있었다
ⓒ 최윤미
평평한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라도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그 풍경만으로 충분하리라. 마치 바닷물 위에 떠있는 듯 낮고 평평한 초원과 그 초원을 둘러싸고 찰랑거리는 짙푸른 바다와 물빛만큼 파란 하늘이 어디에서도 본적 없이 매혹적이었다.

거기에 멀리 아스라하게 바라다 보이는 눈덮인 한라산은 마라도의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같았다. 사방이 평평한 마라도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현무암 블럭이 깔린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관광 오토바이를 타거나, 걷거나 하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부터 두 손을 꼭 잡은 신혼부부, 오랜만에 관광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느릿느릿 마라도를 거니는 풍경이 참 평화로웠다.

마을은 섬의 서쪽에 소복이 모여있었다. 지금은 주민이 스무 가구 80여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관광객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살기는 여전히 척박한지 마을주민들은 늘지 않는다고 한다.

마라도의 자장면집 두 곳

▲ 전교생이 셋인 마라분교는 최남단에 있어서 폐교를 면했다고 한다
ⓒ 최윤미
마을 입구에 자리한 것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마라분교와 짜장면집(자장면이 표준어이긴 하다) 두 곳. 방학이라 그런지 마라분교는 텅텅 비어있었지만, 겨울 햇살을 담뿍 받은 단층의 교사는 아름다웠다. 현무암으로 낮게 쌓은 돌담과 제주의 전통 대문 양식 그대로인 교문, 철봉과 시소가 보이는 풍경 너머로는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작은 고깃배들이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공부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 아닐까, 섬 전체를 놀이터로 삼고 자랄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전교생이 셋 뿐이라는데, 국토 최남단의 학교라는 점 때문에 폐교가 되지 않은 건 그래도 축복이다 싶었다.

마라분교를 사이에 두고 자장면집 두 곳이 모두 원조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이었다. 그렇다고 도시의 음식 골목들처럼 번잡스러운 건 아니었고, 모두 토박이 주민들이 마라도 근해에서 나는 해산물로 독특하게 만들어내는 거라고 한다. 횟집이나 식당들이 즐비한 육지의 관광지에 비하면 여기 마라도의 자장면집 두 곳은 그냥 그런 명물 정도로 보아넘길만 했다.

그 중 한 집에서 해물자장면을 먹어보았는데, 정말 색다른 맛이었다. 어머님이 발명한 해물자장을 아들이 이어서 만들고 있었는데 소라와 오징어, 조개, 문어 등이 듬뿍 들어간 달콤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물이 귀해서 빗물을 모아 정화한 다음 음식용수로 쓴다는 것도 특이했고, 한번 그 맛을 보면 자장면을 먹으러 마라도에 다시 온다는 말이 이해가 갈 듯도 했다.

하지만 자장면을 먹고 나면 유람선 체류 시간인 1시간 30분 동안 마라도의 정취를 다 느끼기는 힘들텐데, 그래서 사람들이 마라도 하면 자장면으로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 마을은 섬의 서쪽에 해를 담뿍 받으며 모여있었다
ⓒ 최윤미
다시 마을로 들어가니 서쪽 바다를 향해서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민박을 겸하는 가구들도 많았고, 현무암 돌무더기로 지은 담이며 벽들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섬의 절반을 돌아 마을을 지나고 마라교회와 기원정사를 지나고 쵸콜릿 박물관도 지나면 마라도에서도 최남단인 '장시덕' 항구가 나타난다.

주변에는 검게 반짝거리는 현무암 해안이 특히 아름다웠다. 길만 따라 걷는 것보다는 한번쯤 내려가서 가까이 바다를 느껴보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특히 1백여마리는 될 하얀 갈매기들이 검은 현무암 위에서 모아이 석상들처럼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해를 받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푸른 밤을 밝히는 등대의 불빛이 고왔다
ⓒ 최윤미
최남단비는 좀 그로테스크했으나 이런 모양이 아니라면 또 어떤 모양일 수 있는가 싶기도 했다. 최남단비 오른쪽으론 하얀 등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껏 보아온 등대들과 달리 유난히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 말 그대로 번듯했다. 밤에 본 등대불빛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 등대 앞에 놓여진 벤치에 앉으면 손바닥 선인장 무더기들도 보이고, 절벽 아래서 물질하는 해녀들, 작은 고깃배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모두 보였다. 주민들은 낮동안 관광객들에게 섬을 내어주고 하루종일 바다에서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 해바라기를 하던 갈매기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 최윤미
이렇게 해안을 따라 마라도를 한바퀴 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저 걷기만 하면 빠르면 1시간 정도, 하지만 그렇게 휙 돌아보는 것만으론 마라도의 정취를 모두 느낄 수는 없다.

마라도에서는 최대한 느릿느릿 마음가는 곳마다 멈추어 서고 바라보고 느낄 일이다. 해를 받고, 바람을 느끼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마라도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마을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는 모습은 육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좀더 가까이 손에 잡힐 듯 아름다웠다.

▲ 마라도에서는 멀리 한라산이 바라다 보인다
ⓒ 최윤미
사진으론 담아올 수 없었지만, 마라도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밤하늘이었다. 어둠이 깊어진 다음 등대 불빛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검푸르게 투명한 밤하늘 가득 쏟아질 듯 반짝이던 별들이 너무나 크고 선명해서 마치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커다랗고 선명한 밤하늘은 처음 보았다. 내가 본게 맞는 걸까, 이걸 말하면 아무도 안믿을 텐데 싶을 만큼 마라도의 밤하늘은 혼자만의 비밀로 내게 남아 있다. 그 밤하늘을 나와 너와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건 언젠가 '꼭 한번'으로 고이고이 남겨두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 마라도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하루에 한 번(오전 10시) 출항하는 도항선 삼영호와 산방산 아래 송악산 포구에서 출항하는 관광유람선 유양호가 있다. 유람선은 계절에 상관없이 하루 일곱 번 출항하는데 체류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짧아 좀 아쉽다. 시간이 된다면 마라도의 밤하늘과 해가 지고 뜨는 풍경까지 볼 수 있게 도항선을 타고 들어가 하룻밤 묵으면 좋을 것이다.
* 쌍용 사보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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