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는 내 컴퓨터를 고쳐주기 위해 강화도 교동까지 찾아왔다
그는 내 컴퓨터를 고쳐주기 위해 강화도 교동까지 찾아왔다 ⓒ 느릿느릿 박철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보니 금쪽같은 반나절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심각하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 친구는 웃으면서 한다는 말이 “인터넷이 안 되면 오늘부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인터넷을 안 할 수 있겠냐고 했더니 “느릿느릿 살자는 사람이 인터넷을 안 하면 어디가 어떻게 되느냐?”고 되묻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느릿느릿’의 컬러가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과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을 맞아 느릿느릿 홈페이지도 새롭게 단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컴퓨터가 지나치게 혹사를 당해 인터넷이 나를 거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열을 받다가 저녁 무렵이 되자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문제를 해결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지요.

일단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과 자료를 백업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진만 25기가바이트 가까이 되었습니다. 사진도 내용에 따라 분류해 두었으면 나중이라도 필요한 사진을 찾기 쉬울 텐데 그때마다 아무데나 저장해두었더니 엉망진창으로 있었습니다.

그 다음 문제가 되는 것은 컴퓨터 주변기기의 설치였습니다. 컴퓨터 운영체제는 윈도우XP인데 주변기기는 그 이전에 나온 것들이어서 일일이 제조회사에 접속하여 드라이버를 다운받아야 합니다. 맛이 간 인터넷을 살살 달래가며 필요한 드라이브와 패치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느릿느릿’ 홈(slowslow.org)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민우씨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며 손을 보고 있다.
이민우씨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며 손을 보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작년에 컴퓨터를 포맷하고 XP를 깔고 그동안 문제없이 잘 썼는데 이제 완전 맛이 갔군요. 사진만 25기가이고 프린터 평판 스캐너 필름 스캐너 등 주변 장치 등등… 먼저 백업을 하고 다시 포맷하고 깔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또 주변기기가 오래된 것이라, 패치 프로그램을 자료실에서 일일이 다운받아 설치해야 합니다. 꾹 참고 느릿느릿 정신을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 이 글은 아딧줄 컴퓨터로 쓰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입니다.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혀 모르는 청년이었습니다. 컴퓨터가 어떻게 안 되냐고 묻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 전화로 해결하기는 어려우니 내일 우리집을 찾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생긴 문제이니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광명시에서 이민우(30)라는 청년이 우리집까지 찾아왔습니다. 교동이 섬지역이라 말이 그렇지 한 번 오기가 쉽지 않은데,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강화 창후리에서 차를 왕복으로 선적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민우씨는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군대 갔다 와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꼬박 3시간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서 컴퓨터를 정상복구 해주었습니다. 성가시고 귀찮은 일을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으니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도움을 요청하면 귀찮겠다고 했더니,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즐겁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다음에도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제가 시간이 되어 올 수 있으면 오겠고, 그렇지 않으면 전화나 메일로 해결책을 알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연락을 주세요.”

컴퓨터를 정상으로 복구해 놓고 이민우씨가 일어났는데 밖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되어 조심해서 가라고 했더니 “눈이 오니 기분이 더 좋은 데요”하면서 활짝 웃어 보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이민우씨가 떠난 다음 녹차를 한 잔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모르고도, 전혀 불편한 줄 모르고 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이는 꼼짝 못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인터넷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안 하고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민우씨. 내가 만난 아름다운 청년이다. 교동을 떠나려고 하는데 눈발이 날리고 있다.
이민우씨. 내가 만난 아름다운 청년이다. 교동을 떠나려고 하는데 눈발이 날리고 있다. ⓒ 박철
그야말로 문명의 최첨단 사회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저급한 문화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들어와 범람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그물망에 내 자신을 맡기고 의존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사실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독서나 묵상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 하겠습니다.

눈발은 앞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날리고 있습니다. 3월에 이런 눈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민우씨가 걱정됩니다.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위험할 텐데, 집까지 잘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민우씨, 고맙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