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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얼지 않고 싱싱한게 보기 좋습니다.
무가 얼지 않고 싱싱한게 보기 좋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작년 늦가을 밭에 묻어둔 무를 캐기로 했습니다. 무를 캐기 전 무를 깊이 묻지 않아 무가 얼어서 못 먹게 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기를 제안했지요. 선택권을 아내에게 주었더니 아내는 ‘얼지 않았다’는 쪽을 택했습니다.

아내가 ‘얼지 않았다’는 쪽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를 밭에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내게 “그만하면 되었으니 너무 깊이 파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지요. 그러니 아내 입장에서는 자기 말대로 무가 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얼었다’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파 놓은 구덩이에 무를 담은 자루를 내려놓은 다음 비닐을 덮고 흙으로 봉분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짚을 얻어다 덮어주고 그 위에 또 비닐을 덮어주었습니다.

무를 캐려고 밭에 내려가 준비를 하는데 지나가시던 동네 아저씨가 “지금 뭐하는 거요?”하고 묻기에 “땅에 묻어둔 무를 캐려고요”고 했더니 “아이고, 다 뭉크러져서 못 먹겠네!”하고 농을 하십니다. 왜 못 먹게 되었냐고 여쭸더니 무 캘 때가 이미 지났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내와의 내기에서 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캐고 볼 일입니다. 비닐과 짚을 걷어내고 오랜만에 삽질을 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려 부드러웠습니다. 삽으로 흙을 걷어내자 자루에 담겨 있는 무가 나타났습니다. 제일 궁금한 것은 ‘무가 얼었을까? 안 얼었을까?’였습니다.

자루를 벌리고 무 몇 개를 꺼냈습니다. 무가 싱싱해 보였습니다. 칼을 가져다 잘라 보았습니다. 바람도 들지 않았고 하나도 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더 좋아합니다. 무가 얼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인지, 내기에 이겨서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 한 자루에 부자가 된 듯합니다.
무 한 자루에 부자가 된 듯합니다. ⓒ 느릿느릿 박철

, 여름쯤이면 다 자라 꽃이 피고 씨가 맺히게 됩니다. 그 씨를 받아 심으면 늦가을 김장용 순무를 수확할 수 있게 됩니다. 무도 그렇게 하면 되는데 무는 종묘상에서 씨를 사서 하기 때문에 뽕을 박지는 않습니다.

땅에서 캔 무가 양이 제법 많았습니다. 밭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시고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시는 어머니가 워커를 잡으시고 마당으로 나오셨습니다.

“어디 무가 괜찮은가?”
“예, 어머니! 무가 하나도 얼지 않고 싱싱해요.”
“무가 많네. 깍두기도 담그고 채김치도 담그고 무국도 끓여 먹고 하면 되겠네.”
“어머니, 무가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아요. 다른 집과 나눠먹어야 하겠어요.”
“그러면 좋지.”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 잘 통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좋습니다. 우리 어머니 특기 중의 하나가 ‘무구이’입니다. ‘무구이’는 이북 음식인데, 한 겨울 무를 밖에 내놓아 얼립니다. 꽁꽁 언 무를 방에 들여놓아 녹입니다. 그러면 얼었던 무가 녹으면서 물이 질질 흐릅니다. 그걸 칼로 길고 넓적하게 썰어서 물기를 꼭 짭니다. 물기를 뺀 다음 양념고추장을 발라 석쇠에 굽습니다. 그러면 맛있는 ‘무구이’가 되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무구이’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쩌다 ‘무구이’를 해주시면 그걸 먹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순무. 순무는 뽕을 박았습니다.
순무. 순무는 뽕을 박았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아내가 잘 하는 것은 ‘무채국’입니다. 무를 칼로 채를 썰어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살짝 볶습니다. 거기다 물을 붓고 끓입니다. 간은 소금으로 합니다. 먹을 때 고춧가루를 약간 넣고 먹으면 속이 시원하고 좋지요. 소화가 잘됩니다.

내기에서 이긴 아내가 돈을 달라는 말이 없습니다. 건망증 도사이니 또 잊은 모양입니다. 아마 오늘 저녁 밥상에는 분명히 ‘무채국’이 오를 것입니다. ‘무채국’ 한 그릇에 만원인 셈입니다. 그래도 아깝지 않습니다.

봄 햇살이 강렬합니다. 온갖 생명체가 그 신비스런 소생을 보여 주는 계절, 봄의 생기로, 그 봄 햇살 속에서 문득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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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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