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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이상을 가꾸어온 <대나무골 테마공원>의 울창한 대숲
삼십 년 이상을 가꾸어온 <대나무골 테마공원>의 울창한 대숲 ⓒ 장권호
깔끔한 연출력과 섬세한 영상 표현으로 내공을 쌓은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이영애가 그녀 특유의 청신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내레이션의 한 구절이다.

강릉 일대에서 찍었다는 이 영화는 대숲에 일던 바람소리와 절제된 영상이 사랑으로 아파하는 젊은이의 상처와 어우러져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남도, 담양은 예로부터 대나무의 고장이다. 나지막한 산자락과 들판을 사이에 두고 실핏줄처럼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마을마다 지난 겨울의 혹한을 이겨낸 대숲이 봄볕 아래 그림처럼 곱기만 하다. 우수, 경칩도 지나고, 따뜻한 햇살 넘치는 봄날의 대숲을 찾아 길을 떠났다.

빼어난 안목으로 기획 관리되는 <대나무골 테마공원>

우리가 보존해야 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우리가 보존해야 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 장권호
담양에서도 제대로 된 대숲을 구경하려면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에 자리한 <대나무골 테마공원>을 찾아가는 게 좋다. 광주에서 담양,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달리다 보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가로수, 메타세쿼이어 길이 나온다.

24번 국도를 확장하면서 이 가로수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했지만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한 나무며 군데군데 동선이 끊긴 도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숲을 가꾸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수십 년이지만 파괴하는 것은 순간의 일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금성면 소재 석현교(石晛橋)에서 우회전하여 1.5km 정도 달리면 야트막한 고지산 자락에 부챗살 모양으로 둥지를 튼 3만평 규모의 <대나무골 테마공원>이 나타난다.

반평생을 신문사 사진기자로 지내다 정년 퇴직한 주인 신복진씨가 30여 년에 걸쳐 가꿔놓은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담양군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고 있는 대숲이다.

이 공원의 미덕은 여느 대숲과는 달리 조성 초기부터 주인 신복진씨의 빼어난 안목과 솜씨에 의해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 부는 대숲 사이로 바라본 봄 하늘이 에머랄드 빛보다 곱다
바람 부는 대숲 사이로 바라본 봄 하늘이 에머랄드 빛보다 곱다 ⓒ 장권호
하늘을 찌를 듯한 울창한 대나무 숲길 사이에 난 다양한 코스의 죽림욕 산책로와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만을 먹고 자란다는 야생 차밭. 또 맨발로 걸으면 더욱 좋다는 솔밭 사이 삼림욕 코스와 공원 내 도처에 잘 가꾸어진 잔디구장까지 모두 신복진씨가 치밀하게 연출해 놓은 공간 구성이다.

바람 부는 날의 대숲은 섬세한 악기의 연주

바람 부는 날의 대숲은 섬세한 악기의 연주를 듣는 것만 같다. 바람의 작은 흔들림에도 잎들은 몸을 뒤척여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더니, 어느새 대지를 질주하는 소나기의 힘찬 리듬이 되어 온 숲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숲은 여인의 고운 속살을 스치는 열두 폭 비단 치마가 되어 아침 안개처럼 온몸을 휘감고 돈다. 그러다가 바람이 그치면 대밭은 이내 고요한 침묵 속에 빠져든다.

야생 차밭과 울울한 대숲이 함께 어우러진 죽림욕 산책로
야생 차밭과 울울한 대숲이 함께 어우러진 죽림욕 산책로 ⓒ 장권호
유연한 몸짓으로 깊은 바다를 회유하는 물고기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 순간, 반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대숲의 모습은 '바람 부는 대숲'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극적인 모습이다.

바람이 지휘봉을 쥐고 지휘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온갖 소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음악으로 세상의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아름답다.

바람 부는 대숲에 서서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을 열어 놓고, 긴 호흡으로 느리게 걷는다. 공원에는 제1 산책로에서 제3 산책로까지 600m에 달하는 세 갈래 대나무숲 길이 열려 있어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다시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세상과의 완벽한 차단이다. 부드러운 햇살이 사선으로 비켜드는 대숲에 서서 세상과 시간을 잊고 마음마저 놓아버린다. 하늘까지 쭉쭉 뻗어 올라 미끈미끈 잘 생긴 고죽(왕대) 아래로는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야생 차나무가 대숲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 청량감을 더한다.

솔바람 소리 들으며 맨발로 걷는 황톳길의 감촉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밭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밭 ⓒ 장권호
행복한 죽림욕 산책로가 끝나갈 즈음 맨발로 걸으면 더욱 좋다는 고지산 뒷자락 솔밭길로 이어진다. 완만한 경사의 황톳길 위로 지난 가을에 떨어져 쌓인 솔가리를 밟는 느낌은 폭신폭신한 융단 위를 걷는 느낌이다. 산정에서 부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걷는 황톳길의 감촉은 정말 각별하다. 산책로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잔디밭이 있어 쉬엄쉬엄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시간 있을 때마다 이곳을 가족과 함께 찾는다는 김은주(순창읍)씨는 “이곳은 정말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야 해요”, “저는 한 시간 이상을 소요하며 이 길을 충분히 즐기는 편이랍니다”라고 말한다. 공원 내 산책로는 1km 내외. 그러나 그 길을 충분히 즐기며 걷는 사람에게는 깊고도 아득한 길도 된다.

죽림욕 산책로 사이 사이에 설치한 통나무 디딤돌
죽림욕 산책로 사이 사이에 설치한 통나무 디딤돌 ⓒ 장권호
더구나 이곳 테마공원은 넓은 잔디광장, 숲 속 집회장, 캠프파이어 시설, 실내강당, 샤워장과 야외취사장 등이 고루 갖춰져 있어 가족단위, 청소년 단위 야영지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밀려드는 인파로 가급적 주말은 피하는 게 좋고, 1박을 원한다면 테마공원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이곳 테마공원이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각종 CF 촬영과 영화인들의 단골 촬영지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여름 인기를 끌었던 ‘여름향기’와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그리고 ‘청풍명월’ 등이 모두 이곳 테마공원에서 촬영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행복한 산책이 끝날 무렵, 정신까지 쇄락하게 하는 약수 한 잔의 시원함이란.
행복한 산책이 끝날 무렵, 정신까지 쇄락하게 하는 약수 한 잔의 시원함이란. ⓒ 장권호
중국산 죽제품과 플라스틱 제품이 거세게 밀려오면서 대숲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사람들이 대숲을 외면하던 시절, 신씨는 대숲이 주는 생태와 문화에 주목, 하나의 상품으로 대숲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소득 만 불을 바라보는 문화의 시대에야 비로소 그이가 반평생을 걸쳐 가꾸어 온 대숲이 제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테마공원은 가족이나 친구 아니면 연인끼리 찾아도 정말 좋은 곳이다. 봄볕이 솜이불처럼 따뜻한 3월, 한나절 나들이로 이만한 곳도 흔치 않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담양읍 죽물박물관을 들러 각종 죽세공품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또 돌아오는 길, 금성면 원율리에 최근 개장한 <담양리조트>에서 뜨거운 노천탕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을 듯.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교사신문에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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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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