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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먼동이 트는 장면. 하루가 열리는 순간이다.
아침 먼동이 트는 장면. 하루가 열리는 순간이다. ⓒ 느릿느릿 박철
2001년 9월 초부터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 성격이 모질지 못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제법 오래된 셈이다. 처음에는 500미터도 달릴 수가 없었고 숨이 차고 근육이 뭉쳐서 한밤중에 자다가도 다리에 쥐가 나곤 했다. 점차로 달리기 거리를 늘려 나갔다.

처음에는 4km에 도전했다. 보름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견딜 만했다. 여전히 통증은 계속 되었다. 발목이 뻐근하고 무릎관절이 붓고 걷는데도 통증이 오고, 자동차를 운전하는데도 지장이 왔다. 그래도 계속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나니 한결 수월해졌다.

4km에서 10km로 늘렸다. 코스는 지석리 오미로 해서 인사리로 인사리에서 삼선리로 삼선리에서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가 있다. 그다음은 대룡리 우체국까지 왕복, 지석리에서 무학리를 왕복하는 코스가 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달리는데, 여름철에는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나 어찌하랴. 달리는 거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넉 달쯤 되니까 이제 달리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어쩌다 비가 온다든지 해서 쉬는 날에는 몸이 찌뿌드드 한 게 당장 표가난다. 집에서 새벽 6시쯤 출발하면 7시에 돌아온다. 꼭 한 시간이 걸린다.

아침 일찍 부지런한 집에서 군불을 지피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다.
아침 일찍 부지런한 집에서 군불을 지피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다. ⓒ 느릿느릿 박철
집에도 도착하면, 옷을 다 벗고 교회 운동장에서 알몸으로 맨손체조를 간단하게 한 다음 풍욕(風浴)을 한다. 풍욕을 하면서 잠시 동안 단전호흡을 하면 명치끝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 희열을 아주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준다.

다시 집에 들어와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 대신 녹차 두어 잔과 사과를 깎지않고 통째로 먹는다. 공복에 사과와 녹차를 곁들이면 그 어떤 식사보다도 달콤하다.

달리기를 하면서 자연의 은총을 순전히 공짜로 구경하게 된다. 자연은 삶의 교과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겨울이면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출(日出)을 경험한다. 새벽 어슴푸레한 미명에 겨울 철새들이 떼를 지어 파도소리를 내며 비상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장관이다.

또 요즘은 새벽안개가 가히 환상적이다. 어둠과 안개사이를 뚫고 나 혼자 은밀하게 무념무상의 세계로 돌진한다. 걸릴 것이 없다. 아무 욕심도 없다. 다 벗어 던지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일 오래 신었던 조깅화. 정이 많이 들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제일 오래 신었던 조깅화. 정이 많이 들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나는 2년 5개월 동안 새벽마다 달리면서, 내 육중한 몸을 지탱해준 조깅화에 감사한다. 그동안 조깅화 일곱켤레가 뒤꿈치부터 해져 못 쓰게 되었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수명을 마친 조깅화들이 신발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버릴 수가 없다.

한때 자신의 일을 다 마치고 사라지는 조깅화처럼, 나도 언제가 사라질 것이다. 내 수명이 다해 쓸모없이 사라진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 다만 조깅화 만큼이라도 유용하게 살다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이 내게 주신 숙제이다. 그 숙제를 잘하고 가야할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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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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