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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년 2월 25일, 3면 '대통령의 위험한 올인'
동아일보 2004년 2월 25일, 3면 '대통령의 위험한 올인' ⓒ 동아일보
보라! 오늘도 '올인'에 올인하는 신문을! (동아일보 2004년 2월 25일, 3면 <대통령의 위험한 올인>, 31면 <자치행정은 없고 총선 올인만 있나?>)

임채정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통용되고 있는 올인"이란 말은 도박판에서나 쓰는 말로 "국정용어로는 부적절하"지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용어가 유포"되는 이유가 노무현정권이 "올 아웃 정권"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올인은 "말도 안 되는 용어"라 하면서도 "올 아웃"은 어떻게 말이 되는 용어라고 생각했는지 칼럼의 제목으로까지 올려놓았다(동아일보, 2004년 2월 18일, [동아광장], '올 아웃 1년').

오래 전부터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에서 쓰는 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오염시킨다는 비판이 있었고, 특히 방송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쏟아지는 비속어와 외국어들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일상 생활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저급한 언어생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인터넷이란 공간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철자법을 무시한 글이나 공개된 곳에서는 쓰기 어려운 거친 표현, 욕설을 넘어 거의 언어폭력에 가까운 글, 비속어, 신조어들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소설가 이문열씨가 한 언론사와 인터뷰(조선일보 2004년 2월 11일)를 하면서 인터넷이란 공간을 "타락한 광장"이라 부르며, "지적 수준은 프티인텔리겐챠에 가 있는 부류"들인 그들(네티즌)은 파렴치할 정도로 룰을 깨버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혹독한 비판을 했다. 기성 언론과 명망있는 작가가 보기에는 인터넷이란 공간이 몹시 생소하긴 하겠지만 "파렴치하다" 거나 "탈레반"이란 표현은 좀 지나치다 싶다.

그렇다면 "타락한 광장"을 비판하는, 언론으로부터 공인된(?) 지식인의 글은 어떤 수준인가? 김일영 교수가 쓴 동아일보 금요칼럼(2004년 1월 20일 '짱과 엄지족이 만날 때')을 한번 살펴보자. "짱", "엄지족(thumb trive)", "몹", "신드롬", "스타일" "이미지", "퍼포먼스", "플래시 몹", "스마트 몹"…. 인터넷의 거친 표현과는 수준이 다른, 낯선 외국어가 뒤범벅이 되어 있어 한번 읽어서는 이 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어를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섞어 쓰는 지식인이나 출범한 지 1년이 지난 정권을 "올 아웃 정권"이라고 명쾌하게 평가할 수 있는 혜안을 지닌 언론인들에게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 가득 차 있는 인터넷 공간이 타락한 광장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성 언론인과 지식인들의 인터넷 공간에 대한 불만은 단순히 표현의 수준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김일영 교수의 글에는 "군중은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지배층의 상징조작의 대상이었으며, 대량소비사회의 부속품"일 뿐이었는데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생기면서 "똑똑해졌다"는 외국학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한국의 엄지족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문자 메시지나 주고받으며", "감각적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는 부류들인데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추구하는 짱 정치인"이 이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으니 "인터넷 정치의 앞날"이 몹시 우려스럽다는 것이 김일영 교수의 생각이다.

이 지적이 타당한 지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추구하는" 풍조 중의 하나가 "짱 신드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몸짱, 얼짱 열풍으로 이 나라가 "짱하고 해뜨는 짱 공화국(매일신문 2004년 2월 10일자)"이 된 것은 인터넷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신문 2004년 1월 27일, '몸짱 만들기 딱이야'
매일신문 2004년 1월 27일, '몸짱 만들기 딱이야' ⓒ 매일신문
몸짱, 얼짱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민첩하게 이를 포착하여 대중들을 "상징조작"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몸'과 '얼굴'에 예속시켜 버림으로써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독자들을 "대량소비사회의 부속품"으로 붙들어 두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은 바로 기성 언론들이다(매일신문 2004년 1월 27일, '몸짱 만들기 딱이야', 한국일보 2004년 1월 30일, '마케팅도 몸짱 열풍', 매일신문 2월 10일, '하루 두 번 복근운동, 나도 몸짱', 경향신문 2004년 2월 10일, '몸짱 위한 다양한 상품들').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짱이어야 한다며 "몸 속짱", "뼈짱(조선일보 2,004년 2월 11일, '몸 속 튼튼히 하려면...겉 몸짱 보다도 몸 속짱')"이란 말까지 만들어내며 졸부들의 건강염려증을 부추긴 신문도 있고, 방송매체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대장, 우두머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짱"이란 말과 이 말을 덧붙여 인터넷에서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얼짱, 몸짱 열풍은 적어도 인터넷 안에서는 조정기를 거치면서 분명히 제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비록 "타락한 광장"이라 매도당한다 할 지라도 그 공간 안에서는 스스로를 정화시켜 나갈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 언론들의 "상징조작"을 통해 우리들 의식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버린 외모숭배사상의 폐해는 김일영 교수가 우려하는 "플래시 몹" 현상에 비할 바가 못된다.

게다가 지금 기성 언론들은 또 다른 "상징조작"을 통해 특정부류들을 "대량 소비사회 부속품"으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꾸미고 있다. 그것은 "감각적 재미만을 추구"하는 짱 문화도 아니요, 지난 6-70년대 밤낮으로 귓전을 때리며 우리 어린 시절의 의식을 지배하던 "잘살아 보세" 와도 수준이 다른, 삶의 품격을 드높이고, 그 사람의 인격까지도 고양시킨다는 "웰빙(well being)" 문화다.

동아일보는 지난 1월 12일자 건강 면부터 5주에 걸쳐 "웰빙으로 가는 길"을 연재하였으며, 중앙일보는 매주 금요일자 섹션 신문에는 "웰빙"이란 제목의 특집기사가 연재되고 있고, "지구촌 자연의학 바람거세다"라는 연재 기사(2004년 1월 15일부터)에는 "세계 의료계 웰빙 바람"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다른 신문들도 웰빙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음악도 웰빙시대- 현대인에 뉴 에이지 음악 어필(스포츠조선 2,004년 1월 20일)", "베스트 웰빙-2004 베스트 웰빙 선정(한국일보 2004. 2.17)", "생활 속의 웰빙 바람- 의식주 전반 뿌리내린다(매일 2004년 1월 30일)", "떠나자 웰빙 투어(매일신문 2004년 2월 5일)", "주택시장 웰빙 아파트 바람 분다(한겨레 2004년 2월 16일)"…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웰빙의 개념이 도대체 무엇이며 언론에서 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웰빙족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동아일보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2004년 1월 12일, '웰빙 속으로…새 문화냐 상술이냐?').

"웰빙은 물질적 가치에 매달리지 않고 정신과 신체의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문화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고상한 취향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문화일보 2004년 2월 21일 '타워팰리스는 주민 입맛도 최고급-타워 팰리스는 웰빙 1번지(?)'
문화일보 2004년 2월 21일 '타워팰리스는 주민 입맛도 최고급-타워 팰리스는 웰빙 1번지(?)' ⓒ 문화일보
그런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물질적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 웰빙의 개념이라고 설명하면서 한편으로 '웰빙'족이 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경제력"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결국 이 웰빙이란 "물질적 가치"에 목매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충분한 여유를 가진 부유층들의 또 다른 소비행각인 셈이며, '이대로' 천년 만년 살고 싶어하는 졸부들의 취향을 겨냥한 상술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웰빙 1번지"는 당연히 타워팰리스가 되는 것이다(문화일보 2004년 2월21일 '타워팰리스는 주민 입맛도 최고급-타워 팰리스는 웰빙 1번지(?)').

이 세상에 잘 살아(웰빙)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또 그 잘 산다는 것은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성을 지닌 것일텐데 우리 언론은 '웰빙이란 말을 지어내면서 분수 넘치게 "잘 산다는 것"에 대해 똑똑한 의과대학 교수들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함부로 답을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어린 자식들 거느리고 하루하루 힘겹게 그러나 "잘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천박하게 "물질적 가치"에 목매달며 사는, '잘 못사는 사람'들로 몰아가는 반면 이 땅의 부자들은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고, "한발짝 물러서서 세상을 만나는"(동아일보 2004년 2월 13일, '웰빙족 여성 10인이 틀어놓은 노하우') 여유를 가지고 있고,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수양의 미덕을 가진 사람들로 그려놓고 있다.

지금 기성 언론들은 우리 사회를 이념으로 편가르기를 해 오던 "기존의 룰"들을 엄지족들과 네티즌들이 "타락한 광장"에 모여 "파렴치하게 깨"버리자, 그들과 "코드"가 맞는 부류들을 골라 그들만의 언어로 "웰빙"에 "올인"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메인스트림"을 건설하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닌지….

늙으신 아버지가 먼길 떠나는 자식 내외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쓸쓸하고도 외로운 얼굴에 슬픔으로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잘 살아야 된데이" 신신당부하던 그 목소리… 쓸쓸하고 외로워서 그리하여 더 작고 힘없는 어깨를 추스리며 "잘살아야 될 낀데… 잘살아야 될 낀데…" 들릴 듯 말듯 혼자서 중얼거리던 그 말을… 어렵고 힘들지라도 성실하게 "잘 살아" 보려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이 나라의 언론과 글 깨나 읽은 지식인들은 "웰빙"이란 고상한 외국말로 "파렴치하게 깨" 버리고 있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내뱉는 말들이 우리 말들을 오염시키더니 이제 지금 우리 삶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참언론 참소리 40>

참언론대구시민연대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언론개혁운동단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 참소리>칼럼은 기존의 <참언론 대구시민연대 언론신경쓰기 칼럼>을 확대 개편했다. <참언론참소리>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진국님은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 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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