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머슴날 '하드렛날'은 2월 초하루
음력 2월 초하루를 하드렛날이라고 한다. '하(下)들의 날'인가? 어원으로 따지면 '하인들의 날'이나 '아랫것들(下人's)-Day'로 보아도 무방하다(필자 주). 또한 '콩 볶아 먹는 날'로도 통했다. 널리 쓰이는 말은 '머슴날'이다.
70년대 후반까지 '하드렛날'은 빠트리지 않고 지켰던 작은 명절임은 분명했다.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시집장가 보내주기도 했던 이날도 차례를 지냈다.
보름 전날 세웠던 꼰지대에서 벼 이삭을 내려다가 흰 떡을 만들고, 콩으로 소를 넣어 송편을 만들어 머슴들에게 나이만큼 먹인다. 이날만큼은 머슴들에게 풍족하게 음식을 장만해 대접하는데, 그 상차림을 보고 주인님의 농사를 짓는 머슴들의 힘쓰는 것이 일년 내내 결정될 정도였으니 초라한 상은 차리지 않는 것만 못했다.
특히 이날은 콩과 식물의 작물을 먹는데 대표적인 것이 칡과 콩이다. 칡을 먹으며 무병을 기원하고 콩을 볶아 먹어 노래기나 좀 등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새나 쥐가 곡식을 축내는 일이 없어진다고도 한다.
콩 볶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마실 나갈 때나 일 갈 때 먹던 심심풀이
우리 집에선 두 가지 전통이 있었다. 하나는 먹는 것이니 빠트릴 일이 없다. 무지하게 콩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메주콩을 두 되 이상 잘 씻어서 바짝 말린 다음 가마솥에 불을 때서 요리조리 볶는다. 몇 개가 토독토독 튀면 볶기를 멈춘다.
설탕이든 소금이든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상태로 달달 저어 볶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뜨거운 콩을 한 두 개 입 안에 톡 털어 넣는다. 혓바닥이 따끔거린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몰캉몰캉 또는 몰랑몰랑한 맛이다.
아버지는 "됐구만!", 나는 "됐구만이라우" 하고는 다음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려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콩이 함지박에 퍼지면 탈 듯 말듯하며 부드러운 연기를 내는 콩을 외투 호주머니에 두세 줌 넣는다.
잘록하게 부른 주머니에서 콩이 흘러나오지 않게 보듬고 조심히 사립문 앞을 나선다. 마실 나갈 때마다 염소나 한우가 되새김질하듯, 심심풀이 땅콩 먹듯 꺼내 궁금한 입을 달랬다. 고소함이 가득 퍼지는 그 맛. 왕복 이십 리 길 나무하러 갈 때나 십리 길 퇴비를 져다 나를 때 오가며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도 방에 배를 깔고 누워 혼자서 두 홉 이상을 먹어 치우는 볶은 콩. 어머니는 이왕 일을 벌이신 김에 서리태와 검은콩을 볶아 남은 조청에 버무려 콩강정을 만들어 주셨다. 아삭아삭 씹히는 그 느낌은 개암이나 호두 씹는 맛에 버금간다.
가짜 목을 매는 풍속
하드렛날에 또 한가지 빠트리지 않던 풍속이 있었다. 새끼줄을 꼬아서는 몽매(토끼나 고라니, 멧돼지 등 짐승에 걸리도록 만든 덫)를 만들어 불에 태운 다음, 날이 어둑해질 무렵 밖에 설치해 둔다. 토끼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서 목을 집어넣는 일종의 자살 행위를 체험하면 오래 산다고 했다. 가짜로 목을 매는 건 왜일까?
어릴 적 하드렛날엔 해마다 방바닥엔 콩 껍질이 날렸다. 집안 내력인지 아이들도 콩을 골라 먹으니 이 웬일인가.
덧붙이는 글 | 바삐 살다보니 벌써 음력 2월 초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며 콩 한 번 볶아 먹어보았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단백질도 보충할 겸 한번 볶아 드셔보세요. 사르르 녹습니다. 오래 말리지 말고 물기만 쭉 빼고 하시면 됩니다. 다만 타지 않게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