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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대로 작품이었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형상 모두가 로마 제국의 박물관이었다. 밀라노(Milan)의 밤거리를 걸으며 눈에 들어왔던 상점의 외관부터 골목길 구석 곳곳에 고색 창연한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패션 모델의 정취를 풍겼다. 이른 겨울이건만 거리는 웬 모피 경연장이던지. 밍크와 여우 목도리는 기본이요, 부드럽고 색감이 뛰어나면서 가벼워 최고의 의상 원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친칠라(Chinchilla)와 담비(Sable)로 만든 의류를 걸치고 쇼핑에 나선 귀족들을 보라. 섬유 원단과 직물의 전시장이면서 세계의 남성패션을 주도한다는 밀라노.

세계 두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 건축물인 두오모(Duomo) 성당(사진)을 대하는 순간,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오른 첨탑의 장관에 그만 할 말을 잊는다. 3천여 개의 거대한 조각 덩어리가 100미터의 성곽을 겹겹이 둘러 싼 비경(秘境). 450년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된 157미터 폭의 위풍 당당한 성당 앞으로 비둘기가 나르는 광장에 청춘남녀 관광객들이 저마다 끌어안고 황홀경에 빠져 있다.

중세 연극 무대의 중심에 선 느낌이다. 다시 올려 보니 장엄한 분위기가 양어깨에 엄습해 와 전신에 전율을 일으킨다. 이태리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수백년을 달려와 나의 뇌리에 접속되어 환한 호롱불을 켰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역사(驛捨)에 나갔다. 그곳에도 여명의 움직임은 부산했다. 문예 부흥의 종착역인 피렌체(Florence)를 향한다니 그 자체가 이미 꿈이었다. 기차에 오르니 청교도(淸敎徒) 시대의 영화 무대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맞은 편에 앉은 중년의 아저씨가 깊게 눌러 쓴 체크 무늬 중절모와 입에 물어 든 파이프에서 우러나는 중후한 갈색 칼라의 조화를 본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목제로 보존된 문과 황동 장식에서 다시 한번 깊은 역사의 체취를 맡는다. 기차는 드디어 플로렌스에 안착한다. 중세 문화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유명 브랜드 가죽 핸드백을 제조하는 회사를 방문키로 되어 있었다.

패션 명품인 펜디와 뚜루사루디 그리고 페레가모와 아르마니 또한 구찌의 본향(本鄕)이 아닌가. 그 뿐 아니다. 단테의 신곡이 머물고 있는 문학의 고장이면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이 숨쉬고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다 간 곳. 유럽 3대 미술관에 꼽히는 우피치 미술관과 미켈란젤로 광장을 지난다.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금방이라도 성가대의 웅장한 합창이 흘러나올 것 같다. 15세기 르네상스의 발상지로서 종합 문화를 꽃피운 도시의 명성에 걸맞는 풍미가 감돌았다.

그 뿐이랴. 3000년 전통의 와인의 나라. 음악과 요리가 전통을 자랑하고 축구에 온 나라가 미치는 나라. 동서 유럽의 교차점이면서 중동을 오가는 곳에 위치해 우등 인종으로 개량되었음인가. 용모가 한결같이 영화 배우다. 칼날같이 오똑 선 콧등과 적당히 멋을 낸 수염들이 입체적인 얼굴선을 따라 조화를 이루어 버릴 구석이 없다. 거리마다 정열이 가득찬 가운데 영어로 질문해도 거침없이 내뱉는 이태리어의 답변에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나왔다.

크리스찬 코반(Christian Koban). 사장의 이름이자 핸드백 브랜드 명이다. 까렌(Karen). 그의 부인 이름을 딴 영 캐쥬얼 상표. 60세가 다 된 노인네가 30대 미모의 부인을 거느리다니. 디자이너 출신의 비서와 부적절 관계 끝에 재혼에 성공했단다. “도둑놈”이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내심 배가 아팠다.

저녁에 정통 레스토랑에 앉아 이태리 산 와인을 들었다. 핸드백의 당시 패션으로 본론이 돌아왔다. 색상과 디자인의 춘계 유행을 따지고 나름대로 작품 스케치를 그려 가면서 각론에 설전이 오가기도 한다. 현악 4중주에 맞춰 무대 가수가 여흥을 살린다. 잠시 후 손님들이 마이크를 잡고 한 곡 뽑는데 모두가 성악가 실력이었다. 이태리의 감춰진 예기(藝妓)가 위엄을 갖추고 내귀에 다가왔다.

상담 업무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로마로 향했다. 기차역에 나갔더니 뜻밖에 파업이란다. 밥먹듯 파업을 일삼을 뿐 아니라 상점들이 낮에는 두세시간을 식사시간으로 묶어놓고 느긋하게 문을 닫으며 만사태평이다. "그것이 너희들의 문화적 자만이요 숨겨진 후진성이구나. 명차 피아트는 만들어도 첨단 컴퓨터는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로다" 꼼짝없이 하루를 묶였다.

로마는 참으로 로마다웠다. 로마 신화에 로마법과 로마숫자로 상징되는 도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큰폭 도로가 모두 로마 중심가로 거미줄처럼 통하고 있었다. 콜로세움 광장과 바티칸 박물관을 한바퀴 돌았더니 하루가 다간다.

카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시국(Vatican市國)의 로마 교황청을 옆에 둔 탓에 명동성당에서 세례받고 냉담 중인 필자의 입장이 바늘방석에 앉은 듯 뜨끔했다. 베네치아 광장에 서서 잠시 묵상을 하며 종교 개혁의 역사와 지리적 조건을 어슴프레 더듬어 보았다. 지중해성 기후의 따사로운 햇볕이 이방인의 등을 감싼다.

한국인 유학생 가이드의 자취집 아파트에 초대 받았다. 피자와 스파게티에 질려 한식 타령을 해댔더니 별미 한식을 손수 보이겠다며 소규모 파티를 꾸민 것. 역시 한국인의 집이 푸근했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김치던가. 베란다에 앉아 상치에 싸서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니 후각이 즐겁다. 즉석에서 마련된 미니 공연장에서 클래식 기타의 선율이 퍼져 나온다.

'알함브라의 궁전의 회상' 그리고 '월광(月光)'. 구르듯 흐르는 강물처럼 기타줄은 달빛을 받아 속삭였다. 연주자는 서울에서 유학온 저명 클래식 기타리스트였다. 막간을 이용, 남학생의 목청을 타고 흘러 나오는 곡조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였는데, 국립 음악원 무대의 파바로치를 만난 듯 했다. 이태리의 밤은 이내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튿날 인도(India) 델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활주로. 이름 모를 공허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륙 후에도 마음은 날개 끝에 매달린 채 작별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 문화 유품의 향기가 몸에서 서서히 빠져 나간다. 하늘로 떠오른 기체.
"밀라노의 밤거리여, 피렌체의 성당이여.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비행기 아래로 중세기의 찬연한 작품들이 현란한 불빛을 하늘위로 연신 쏘아대고 있었다. 나의 소매를 잡아 당기고 있었다. 내 필히 다시 오리라.

"I left my heart in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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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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