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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이사기자가 수상 소감을 밝히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지금은 말과 글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서로의 갈등과 대립이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 동안 우리 언론인들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괴감이 든다."

서울대 출신 전·현직 언론인 모임 관악언론회(회장 안병훈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이하 관언회)가 한국언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큰 동문 언론인에게 주는 '서울대 언론인대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조선일보> 이사 기자의 소감이다.

그는 11일 오후 6시45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된 관악언론인회 정기총회 및 제1회 서울대 언론인대상 시상식에 참석, 상패와 함께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지난 2002년 말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2년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다.

'시상식'이라는 개인적으로 즐거운 자리이건만, 그는 즐겁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는 40년 기자생활을 돌아보는 소회와 함께 달라진 언론상황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비장한 어조로 언론내부의 분열을 우려하며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또 언론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퇴장의 문턱'에 비유하면서 "신문기자로서의 자긍과 자부가 옳았던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는 후회를 밝히기도 했다.

퇴장의 문턱에 선 언론인의 회의

그는 "자식과 며느리가 기자라는 길을 택했을 때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미안하다"며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내가 퇴장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갈지 자신이 없어졌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 발언을 두고 벌어진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논쟁을 겨낭한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말과 글이 통하지 않고 서로 삿대질하고 패대기치고, 사회원로건 뭐건 없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것을 부수는 상황"으로 묘사하고 "이를 극복하는 게 언론의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같은 역할을 해내기에는 언론의 대립양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옛날에는 권력하고만 싸우면 됐지만 지금 언론의 문제는 언론 내부의 분열과 갈등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학교 출신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프로들이 주는데다 '어떤어떤 글을 써온 기자에게 상을 주자'는 생각이 깔린 이번 상은 40년 언론생활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상을 받는 자체로써 이 사회에 깊은 의미를 되새기겠다"며 수상소감을 마쳤다.

이날 행사에는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비롯 윤세영 SBS 회장, 이길녀 경인일보 회장, 이정석 대한언론인회장, 장영섭 연합뉴스 사장, 최준명 한국경제신문 사장,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신동호 전 조선일보 발행인, 이제훈 전 중앙일보 사장, 김경철 전 내외경제 사장, 장준봉 전 경향신문 사장,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 등 언론계 인사와 김재순 서울대 총동창회 명예회장, 임광수 총동창회장 등 동문 2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명패가 마련된 300여명 중 정연주 KBS 사장과 이긍희 MBC 사장, 표완수 YTN 사장, 박권상 전 KBS 사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엄기영 MBC 앵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박무 머니투데이 대표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안병훈 관악언론인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서울대 출신 전·현직 언론인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렇게 많이 모였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안 회장은 "1년에 단 몇 분이라도 한국 제일의 서울대가 세계 중심 대학으로 나가고 있는지 생각하고 동문끼리 자주 접촉한다면 이 모임은 활활 타는 불꽃이 될 것"이라며 "오늘 자리의 주요 목적은 서울대 언론인대상 수상"임을 강조했다.

임광수 서울대 총동창회장은 "김대중 이사기자가 언론인 대상을 수상한 것을 경하해 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서울대 언론인대상이 단순히 관언회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언론문화 창달을 위한 역사적 금자탑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이 함께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임 회장은 관언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해 출범한 관언회에 대한 각계각층의 관심이 높고 따갑게 느껴지고 있다"며 "이는 한국언론에서 차지하는 관언회 비중이 너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의 모습. 왼쪽부터 안병훈 관악언론인회장,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이경재 한나라당 국회의원, 윤세영 SBS 회장.
ⓒ 오마이뉴스 김태형

정운찬 서울대 총장, 김대중 이사 극찬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확실한 우군'이라는 표현으로 동문 언론인의 활동을 격려하면서 "세상의 부당한 비난에 대해 울타리가 돼달라"고 요청했다.

정 총장은 김대중 이사 기자를 "수많은 저서와 칼럼 등으로, 위암언론상·중앙언론문화상·운경상·효령상 등 수상을 통해 이미 언론계 거목으로 우뚝 선 분"이라며 그의 행적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그는 '겁날 것 없는 소신있는 논객, 신화적 언론인'으로 김 이사 기자를 표현하며 "그의 칼럼은 화살처럼 날아가 짧은 일격으로 독자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바꾼다, 비록 생각을 달리 할지라도 그의 글에 영향은 받는다"고 평가했다.

정 총장은 "그가 조선일보 사장에게 했다는 '사장,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 내 목을 자르세요, 하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해서는 토씨 하나 손댈 생각 마세요'라는 말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제2, 제3의 '김대중 동문'이 많이 나오길 염원하다"고 덧붙였다.

유재천(한림대 과학원장) 심사위원장은 심사결과 보고에서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김대중 조선일보 이사 기자를 제1회 서울대 언론인대상 수상자로 결정, 통보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출신 일부 언론인 '관언회 탈퇴운동' 움직임
언론·시민단체는 '곡필언론상' 역선정

▲ 언론·시민단체 소속 회원들이 김대중 이사 기자의 수상자 선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태형
관악언론인회 정기총회 및 제1회 서울대 언론인대상 시상식은 이를 반대하는 언론·시민단체의 항의시위로 시작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과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6시10분께부터 행사장이 위치한 서울 프레스센터 1층과 20층 복도에서 "왜곡 편파 1등에게 본받으란 말인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언론인 조선 김대중 기자 퇴출"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30여분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편파 왜곡의 대명사인 김대중 조선일보 이사기자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매우 잘못됐다"며 김 이사기자의 언론계 자진 퇴진을 촉구했다. 또 서울대라는 학연을 바탕으로 결성된 '관악언론인회'의 즉각 해체를 주장했다.

이재국 언론노조 신문개혁특별위원장은 "김대중씨는 2002년 후배 언론인 3000명으로부터 곡필의 대명사라는 비판을 받아 한국언론사상 최초로 퇴출촉구 서명운동의 대상이 된 인물"이라며 "80년 광주항쟁 때는 물론 그동안 일그러진 역사관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등 언론계를 욕보인 '가짜 언론인'"이라고 비판했다.

자신도 서울대 출신인 이 위원장은 "관언회가 우리 시대 언론의 발전과 정상적 회복을 원한다면 현직 언론인이 1위로 꼽은 퇴출 인사를 가장 모범적인 언론인으로 선정할 수 있느냐"며 "이번 일을 계기로 특정 학교나 지역 출신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관행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은 "그동안 독보적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곡필역사에 길이 남길 업적을 쌓았다"는 이유로 김대중 이사 자를 '곡필언론상' 1호로 역선정하는 약식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사실상 자동가입 형식인 관악언론인회 일부 회원들은 김 이사기자 수상 선정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 신문학과와 사회학과, 경제학과 등 출신의 전·현직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은 11일부터 본격적인 관악언론인회 탈퇴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한 현직언론인은 "또 하나의 언론인 패거리문화를 만드는 관악언론인회 발족과 김 이사 기자에 대한 시상의 문제점을 적극 알려나가기 위해 회원탈퇴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대중 이사 기자가 행사장에서 구두로 밝힌 수상 소감이다.

▲ 김대중 이사 기자가 내외빈의 축사를 듣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오른쪽)의 모습도 보인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택시를 타고 오면서 여러가지를 준비했습니만, 아까 이 자리를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우선 상(賞)중에서 제일 좋은 상은 서로를 잘 아는 선수들끼리 주는 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저기서 상을 받았지만 그 상은 상마다 약간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주는 상, 더욱이 같은 학교 울타리에서 공부를 했다는 그런 배경과 함께 주는 이 '프로'들이 주는 상은 상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 아닌가, 저는 그래서 이 상이 제 40년 언론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상이 저한테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래 있다 보니까 현역으로서 제가 제일 늙은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까 저하고 같이 언론생활을 했던 많은 동문과 동료들이 지금은 다 은퇴를 했거나 현역에 없습니다. 결국 '오래 있으니까 돌아오는 게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이 상이 어째서 하필 나한테 왔을까.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이 어떤, 어떤 글을 써온 기자에게 이 상을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이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저는 이런 두가지 의미에서 이 상을 받게 된 것을 나름대로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을 고맙게 받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상당히 황량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저희들은 말과 글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서로 토론하고 대화하는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말과 글이 지배하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심정적으로는 우리가 지금 전쟁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서로의 갈등과 대립이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 동안 우리 언론인들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자괴감이 듭니다만은, 지금 이 상황은 선배들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런 즐거움에 자족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는 신문기자로서 퇴장의 문턱에 서서 우리한테 말과 글이 서로 대화의 수단으로 통하지 않는 시대를 보면서 설명하는 심정은 상당히 착잡합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황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신문기자를 택한 것은 극히 진부하지만 '무관의 제왕'이라는 그 글자 때문에 시작을 했습니다. 왕은 뭐 하는 겁니까? 왕은 다른 사람한테 영향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신문기자를 향해서 영향력을 독점한다고 비판합니다.

언론은 그 게임의 본질이, 영향력을 되도록 많이 가지려고 하는 상호간의 건전한 노력 속에서 이뤄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영향력을 많이 갖느냐? 그러나 요즘은 제가 '무관의 제왕'이라는 글자에 현혹당한 것은 아닌가,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후배 기자들을 교육할 때마다 '내가 신문기자가 되어서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돈하고 관계가 없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지금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라, 당신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 뭐 하러 척박한 직업 전선에 들어왔냐, 더 좋은데 가면 그 머리로 훨씬 더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솔직히 저희 동료 중에 돈 벌러 가서 돈 많이 번 사람도 있습니다.

(신문) 기자는 이 세상에서 자기 실력과 노력만 있으면, 어떤 아부와 비정상을 통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직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저는 후배들한테 여러분이 기자를 택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과연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긍과 자부가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너무 늦었죠.

제 자식과 며느리도 신문기자라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제 자식과 며느리가) 기자라는 길을 택했을 때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안합니다. 과연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내가 퇴장하는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그런 상황으로 갈 것인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말과 글이 통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삿대질하고 패대기치고, 사회 원로건 뭐건 없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부수는 이런 상황, 저는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언론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그 언론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 전에는 정직한 언론은 항상 권력과의 관계에서 살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언론의 문제는 언론 내부의 분열과 갈등, 거기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권력하고만 싸우면 됐습니다. 그런데 권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습니다.

사실 여기 계신 동료분들 중에서 남산이라는 곳에 불려가서 자술서를 써야 되고, 물먹은 대장을 들고 시청에 검열 받으러 다니면서, 저는 '만주에 비적떼가 출몰했다'는 (기사를) 왜 선배 기자들이 썼던가를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비적이라는 표현이 바로 '독립군'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검열 앞에서 독립군을 쓸 수 없기에 비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비판받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날 기쁜 날 다 같이 즐거워야 되는데 제가 주제넘게 제 소회를 너무 많이 말씀드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고, 이렇게 상을 받는 자체로써 이 사회에 깊은 의미를 되새기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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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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