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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내가 잘 아는 J목사가 있었다. 남들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 부르고, 흥이 많은 친구였다. 늘 웃는 낯이어서 대하기가 편하다.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농담도 잘 하고 유머도 많았다. 어느 모임에 가서 사회를 보면 자기가 다 한다. 그래도 밉지가 않다.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한마디로 코미디언보다 더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목소리도 타고난 미성이어서 노래를 부르면 청중들을 압도한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한다.

목회자로서 좋은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목회는 순탄하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교회를 서너 번 옮겼는데, 교회를 옮길 적마다 삐거덕 소리가 났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그런 것일까, 한 번 뒤틀리고 나니 계속 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목회를 적당하게 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매우 성실하다. 독서량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학구파이다. 설교하는 걸 들으면 설교에 힘이 느껴진다. 최근에 옮긴 교회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본래 잡음이 있던 교회였다.

J목사는 한동안 매우 힘들어했다. 그래도 잘 참으면서 교회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교회 분위기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재작년에는 50평 규모의 교육관도 새로 지었다. 오래된 예배당을 헐고 그것부터 다시 지어야 하는데, 교육관 먼저 지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럭저럭 목회가 안정감을 갖고 제 속도를 찾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간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달려가 검사를 맡았더니 간암이라는 것이다. 그전부터 몸이 쉬 고단하고 힘들어서 속으로 생각하길 '피로가 누적이 되어 그런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병이 오래 진행되어 수술을 해도 회생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너무나 기가 막힐 일이 J목사와 가정에 불어닥친 것이었다. 결국은 건강 때문에 교회를 사임하고 말았다.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보험 하나 들어놓은 것 없이 빈손으로 그 교회를 나오고 말았다. J목사의 가족이야기는 혹 누가 될 것 같아 하지 않겠다.

J목사는 기도원을 전전하다 재작년 겨울 서울 어느 병원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육신마저 묻을 땅이 준비되지 않아 주검을 인근 산에 뿌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아프다 못해 아리다. 내 주변에 나와 친했던 목사 여럿이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할 말을 잃게 된다.

대부분 목사가 건강을 잃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욕심, 혹은 집착 때문이다.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 건강을 쉬 해친다. 일종의 성공주의이다. J목사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일 욕심이 많았다. 늘 일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녔다. 교회에서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거덕거리면서도 늘 일을 했다. 일을 벌려놓고 그 일을 끝마칠 때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누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일 중독자처럼 일을 벌이기를 좋아했고 잠시도 가만있질 못했다.

또 하나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자기 몸을 혹사하는 것 이상으로 건강의 적이다. J목사는 사람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스펀지 같은 사람이어서 교인들의 요구나 불만을 다 들어주는 스타일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목사가 목회의 주파수를 교인들에게 맞추다보면 제대로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목회가 교인들 비위나 맞추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 비위를 맞추다보면 한도 끝도 없다. 물론 교인들의 요구(need)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다 들어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목사가 교인들 문제의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때로는 교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 오기도 한다. 목사를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그런 때에는 참 난감하다. 들어주기도 그렇고 묵살해 버리기도 그렇고….

예전에 내가 새로 부임한 교회에 'K'라는 전임목사님 이야기이다. 연세가 60세인 분이신데 청년처럼 활달하시고 매우 부지런한 분이셨다.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동네를 꼭 한바퀴 돌았다고 한다. 집집마다 다니며 안부를 물으시고,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 난 집이 있으면 즉석에서 때워주고, 형광등이 다 되어 껌벅거이면 의자 놓고 올라가 새 것으로 달아주고….

K목사님은 오토바이가 있었는데, 그 때만해도 십년도 훨씬 전의 일이니 자동차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면서 교인들 심부름을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목사님, 오늘 두부 한 모만 사다주세요.”
“콩나물 3백원어치만 사다주세요.”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이나 들어주는 사람이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목사님께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목사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교인 심부름만 들어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소문이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충돌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은 회갑을 앞두고 회갑잔치도 못 하고 교회를 떠나시고 말았다.

후배 C목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느 시골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무개 집사가 주택으로 찾아 왔더란다.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취직 한번 안하실래요? 지금 읍내 공사판에서 막일 할 사람을 구한다고 하대요. 목사님 생각이 나서요.”

아무개 집사는 C목사가 아무 하릴없이 맨 날 노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집에서 노느니 나가서 일당 받고 일하는 것이 낫지 않게냐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목회가 어느 목회자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늘 열린 시야를 갖고 있어야 한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은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 못한다. 자신은 현실 가운데 갈등하면서 교인들에게는 꿈과 비전을 심어 주어야 한다. 남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해야 하지만, 자기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이 잣대가 반대로 되면 문제가 생긴다. 현실과 이상이 맞지 않는데서 오는 수많은 갈등이 상존해 있다.

이야기의 초점이 조금 벗어난 느낌이 든다. 한국사회에서 목사가 건강을 해칠 일이 너무 많다. 교회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혹사당하고 있다. 교인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를 다른 교회 목사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지나친 요구들이 여과장치 없이 교회 내에 횡행한다. 목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길들이기'를 한다. 그것도 소용없으면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중삼중의 갈등과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 느릿느릿 박철

목회를 단순하게 하면 안 되는가. 쉬엄쉬엄 하면 안 되는가. 프로그램을 안 하면 어디가 잘못 되는가. 교회에 꼭 사람이 나와야 하는가. 여러 가지 질문이 따르게 된다.

아무튼 목회자가 건강을 잃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과 교회 전체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가끔 탈출(脫出)을 꿈꾼다.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목사도 인간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목사의 인간선언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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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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