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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장 입구에 붙은 포스터
연주회장 입구에 붙은 포스터 ⓒ 강지이
피아니스트들에게 있어 마비가 온다는 것이란 연주 인생을 끝내라는 사형 선고와도 같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더 숙련된 연주를 보여 주는 이가 있다면 그의 의지와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7일 숭실대학교 한경직 기념관에서 열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독주회는 연주가로서 그녀가 지닌 끈기와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연주회가 아니었나 싶다. 매일 6시간 이상씩 연습에 임한다는 그녀의 노력은 콘서트홀을 메운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카네기 홀이 선정한 세계 3대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이 늘 따라다니는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한때 근육마비 증상으로 연주가로서는 치명적인 침체기를 겪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연주는 더욱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에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학구적인 자세로 자기 개발에 매진하는 그녀의 자세는 다른 연주자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다. 특히 2000년 기성 연주자들의 피아노 대회인 팜 비치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의 영예를 안은 다시 한번 그녀의 연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7일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그녀의 독주회는 슈만의 곡들을 주된 테마로 하여, 스트라빈스키 등 정열적이면서 난해한 곡들을 펼쳐 보였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정교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들은 서혜경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대담함과 열정을 담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도 섬세함이 넘치는 강약 조절이 뛰어난 연주였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작곡가 슈만은 아내 클라라와의 열정적인 사랑을 테마로 한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피아노곡만이 아니라 유명한 가곡들 또한 아내와의 결혼을 즈음하여 창작되었다고 한다. 7일에 연주된 아라베스크 다장조 작품 18번의 경우, 슈만 특유의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서혜경은 이날 슈만의 소나타 제 2번을 비롯하여 세 곡의 슈만 작품을 연주한 후,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인 스크리아빈의 소나타 제 5번 올림 바장조 작품 53번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로부터의 세 개의 악장으로 연주를 마무리하였다.

통일적인 조성 관계에서 벗어나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 두 작곡가의 작품들은 최근 서혜경의 주된 관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레코딩에 참여한 최근 음반에서는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을 만나 볼 수가 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피아노를 전공하고자 하는 어린이 청중들이 많아 연주장이 조금은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연주에 몰입하는 그녀의 모습에 떠들던 아이들까지 잠시 호흡을 멈출 정도의 분위기였다.

팬 사인회 중인 서혜경 씨
팬 사인회 중인 서혜경 씨 ⓒ 강지이
이날 공연의 경우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대형업체를 통한 홍보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관객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메이저급 홍보업체에 의해 상업적이고 비싼 공연들은 성황을 이루고, 그렇지 못한 좋은 공연들은 묻히고 마는 우리 공연업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연주였다.

하지만 적은 관객 수에다 작은 규모의 콘서트홀임에도 불구하고 서혜경은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연주에 임하여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연주가 다 끝난 후에도 관객들의 요청에 부응하여 앵콜 곡을 5차례나 선사하고, 사인회를 통해 팬들에게 다가서는 겸손한 태도는 그녀의 음악과 서혜경을 더욱더 사랑하게 만들 수밖에.

좋은 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 연주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들이 있는 한, 대형업체에 휘둘리지 않는 좋은 연주회들이 많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밑바탕을 일궈낼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많은 연주자들과 음악 애호가들이 해 주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2월 7일(토) 서혜경 독주회 숭실대학교 한경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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