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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등반 안내도
계족산 등반 안내도 ⓒ 이기원
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의 명당 자리가 계족산에 있습니다. 금빛 닭이 알을 품은 형세의 천하 명당 자리가 계족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태봉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입니다. 정조의 주검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태가 묻힌 것이지요. 조선 왕조는 왕실의 혈통을 잇는 왕자며 공주가 탄생하면 그 태를 전국의 명당자리를 찾아 묻었습니다.

정조의 태가 묻힌 계족산 줄기의 태봉은 등산로 입구에서 가파른 능선을 따라 백여 미터 올라가면 도착합니다. 계족산 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아래로는 남한강 물줄기를 굽어볼 수 있는 곳이지요. 태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굳이 금계포란형이란 어려운 풍수지리적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참 괜찮은 자리라는 느낌이 다가옵니다. 지금은 정조의 태실과 태실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조대왕 태실과 태실비
정조대왕 태실과 태실비 ⓒ 이기원
정조의 태실을 둘러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가롭게 둘러보고 느껴볼 수 있는 태실이지만 왕조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고을 백성들에게 태실은 어떤 무게로 다가섰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엄한 왕손의 태를 봉안한 이곳을 백성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는 없었겠지요. 비오고 바람 불고 억수 장마라도 들어 태실 일부가 유실이라도 되면 어떨까요. 고을 백성들의 안위를 떠나 이 지방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의 안위와도 직결되었을 터이지요. 왕실의 복과 번성을 위해 만든 태실이 결국은 고을 백성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예고하는 것이었지요.

정조의 태를 봉안한 뜻이 왕실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하는 뜻이었다면 그 태실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헤아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정조의 태실 아래로 흘러가는 남한강은 벌목한 목재며 공물을 뗏목에 싣고 한양을 향해 노를 저어가던 이들의 거친 숨결이 묻어 있던 강이었습니다.

얼어붙은 남한강
얼어붙은 남한강 ⓒ 이기원
정조의 태실 주변에 잔설이 보입니다. 태실 아래로 흘러가는 남한강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차갑게 얼어버렸습니다. 그 옛날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 얼어붙은 남한강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계족산 오시는 길
 중앙고속도로 → 서제천IC → 제천 → 38번국도 → 소나기재 → 영월입구 장릉삼거리에서 우회전 → 2.5km직진 한후 다리건넘 → 다리건너 우회전 우회도로이용 3.8km직진해 영월화력발전소 담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등산로 입구 주차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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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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