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지치고 잠들어 있을 때 나는 폐사지를 걷는다.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들녘은 황량할 뿐이다. 그 처연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에 거닐어야 제 맛이 난다. 마음 속으로나마 쓰러진 돌덩이를 다시 세우고 천년 전 고려 석공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난 겨울 폐사지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문막에서 남한강을 따라 가면 부론면이 나온다. 그 직전에 법천사지 들어가는 길이 나오고 조금 지나면 다리가 나온다. 실은 다리 건너기 전부터 절집이었다. 밭고랑 곳곳에 절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된다.
저 멀리서 오래된 느티나무가 어여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나무는 수백년 동안이나 폐사의 탄식을 내뱉었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속이 타들어 갔고 안쪽은 썩어 텅 비었다. 한 맺힌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 준 느티나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당간지주
느티나무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멋지게 치솟은 당간지주가 나온다. 예전엔 이곳이 절 입구였음을 말해준다. 주변엔 밭이 펼쳐져 있고 공장까지 가까이 있어 돌은 오늘날까지 삶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돌이끼와 곰팡이만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다.
한 때 당간지주 가운데 깃대가 올라가고 휘황찬란한 깃발이 펄럭였을 것이다. 이 곳을 지나면서 깃발을 보고 합장했던 선조들의 심성을 상상해 본다. 당간지주와 절터는 꽤 떨어져 있다. 법천사가 얼마나 큰 절집인지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지광국사부도비(국보 59호)
산등성이를 올라갔다. 현재 법천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도비를 만나기 위함이다.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부도전에 올라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텅빈 절터지만 그 규모는 대단하다. 발굴하면서 땅 속에 묻혔던 돌덩이와 기왓장들이 햇볕을 쬐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석물들이 참 정겹다.
지광국사 부도비를 만났다.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나! 이런 조각물이 있다니…."
귀부를 먼저 보자. 강인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목을 쭉 빼고 튼튼한 치아를 드러내고 있다. 배시시 웃고 있는 모습이다. 정면을 응시하며 턱수염이 목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밍크 코트를 입은 귀부인처럼 목 부위 가죽은 살짝 말아 올려졌다. 그 곡선미에 탄복해 본다. 거북의 발밑은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북이다.
거북의 등껍질은 바둑판 문양처럼 사각이다. 가운데에는 '王' 자가 새겨져 있다. 지광국사가 왕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승려가 국왕의 대우를 받았다니 지광국사는 참 대단한 고승인가 보다.
나는 비신의 측면을 가장 사랑한다. 불타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모습이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보통 2마리가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모습인데 이 곳은 다르게 그려져 있다. 아래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기 직전의 모습이고 위의 용은 하늘로 올라가면서 못내 아쉬워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넉넉한 고려인의 양보의 모습이랄까? 용의 몸통을 만지면 비늘 하나가 뚝 떨어질 것 같이 사실감 있게 묘사되었다.
비신 상단부 전액 좌우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으며 둘레에는 당초문이 둘려 있고 비천상·산·나무·해와 달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다. 마치 종이나 천에 그린 것처럼 정교하다. 우리 선조들은 돌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과 행장이 기술되어 있고 뒷면엔 탑비를 건립한 당시 법천사의 승려수와 건립내역까지 적혀있다.
이수도 참 특이하다. 보통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조각을 새겨 넣는데 이 곳은 왕관 같은 모자를 얹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연꽃과 구름문양, 귀꽃까지 빽빽하게 조각되어 있고 그 꼭대기엔 보주까지 얹어 놓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탑비라는 칭호가 틀린 말은 아니다.
지광국사 부도비 주변에는 절터에서 옮겨온 광배 탑의 부재 등 여러 석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온전한 모습은 하나도 없지만 남아 있는 석재는 하나 같이 명품이다.
그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석물이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 제과점에서 갓 구워낸 빵처럼 꽃도 부풀어 올랐다. 그 바깥에 새겨진 이파리의 돋을새김도 실물이 아닐까 착각에 빠지게 한다. 양쪽 테두리에 새겨진 꽃 문양도 놓칠 수 없는 감동이다. 나뒹구는 석물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원래 법천사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어쩌면 그런 돌들이 완전하지 못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차가운 동토에 철퍼덕 주저앉아 하염없이 돌을 어루만졌다.
아-.법천사 돌무더기여.
법천사 지광국사부도(국보 101호) 국립박물관 소재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가장 화려한 부도를 꼽으라면 난 지광국사 부도를 꼽는다. 빼곡이 채워진 조각도 아름답지만 그 형식도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대의 아픔을 경험한 부도라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가는 부도다. 고생한 자식이 더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아마도 지광국사가 입적한 1085년을 전후해 조성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네 모서리에는 용의 발톱 같은 조각이 안쪽으로 말려 있어 안정감을 보여 주고 있다. 기단부만 무려 7층으로 쌓여 있다. 한 번 세어 보라. 각각의 석재에는 안상(코끼리 눈모양), 연화문(연꽃문양), 초화문(풀과 꽃무늬), 보탑, 신선(도교에서 말하는 신선) 등의 조각 장식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 | | 법천사지 가는길 | | | | 1) 자가용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문막IC에서 빠져나간다. 나오자마자 좌회전하여 시내를 관통하여 여주 쪽으로 가면 문막교가 나오고 그 앞에서 좌회전하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간다. 부론면 소재지 직전에 법천사지 들어가는 푯말이 있다.
2) 대중수단
동서울터미널-문막-부론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 | | | |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조각은 탑신부에 있다. 페르시아계 사람들이 사리 공양을 들고 가는 신비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것으로 당시 서역인과 교류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붕돌 밑에는 술이 달린 장막이 드리워져 있고 불상·보살상·봉황 등의 조각이 가득 채워져 있다. 탑의 상륜부처럼 형식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그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지광국사 부도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부도가 또 있을까? 원래 부론면 법천사지에 있던 것이었는데 조각이 화려하다보니 일제 때 일본 사람이 오사카로 밀반출했다가 조선의 항의에 못 이겨 반환했고 오늘날 국립박물관 정원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용산으로 국립박물관이 이전하면 부도는 또 한번 이사해야 한다. 천년을 살았던 고향을 잊은 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부도가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 없다. 이왕 옮길 생각을 했으면 고향 법천사지에 보내는 것이 어떨까?
경복궁 마당을 거닐어 보라. 그리고 지광국사 부도를 만나자. 부도를 바라보노라면 예술혼에 불타는 고려 석공이 내리치는 정 소리가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