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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앙시장에서 한복 바느질집을 운영하는 최수연씨(좌)와 송영숙씨(우)
대전 중앙시장에서 한복 바느질집을 운영하는 최수연씨(좌)와 송영숙씨(우) ⓒ 권윤영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세월을 실었다. 곱디고운 빛깔의 천으로 한복을 만들며 가난을 이겨내고 행복을 키웠다. 한복을 만드는 대신 고운 손마디는 거칠어져 갔지만 그렇게 40여 년 세월을 흘려보냈다.

대전 중앙시장 한복거리에는 한복 바느질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예전에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 거리지만 요즘에는 한산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다소 낡은 중앙시장 A동 3층에 오르면 언제부터 이런 점포들이 있었는지 새삼 놀랍기만 하다. 한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현대한복'의 안주인 최수연(65)씨는 지난 64년부터 한복 바느질을 시작했다.

“먹고 살기위해 시작했어요. 돈도 없고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 생계를 위해 선택한 길이었죠.”

일본에서 태어난 그녀는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으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가난했듯이 그녀 역시 가난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고 결혼을 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찾은 일이 한복 바느질을 배우는 일이었다.

남의 가게에서 7년 여 묵묵히 기술을 배운 후 드디어 자신의 가게를 냈을 때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나갔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고 낮이고 밤이고 간에 한 땀 한 땀 정성껏 한복을 만들었다. 그래도 일이 있어 즐거웠고 피곤한지도 몰랐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일이 많아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어요. 한복을 만들어 오면서 자식들을 키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제가 공부를 못했으니 자식들 셋 공부 가르치는 재미에 살았죠.”

최씨가 한복 바느질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최씨가 한복 바느질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 권윤영
"내 옷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면 지겨울 새가 없다"는 송씨.
"내 옷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면 지겨울 새가 없다"는 송씨. ⓒ 권윤영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40년의 세월은 오죽하랴. 일거리에 치여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때도 있었지만 지난 97년 IMF가 오면서 손님의 발길이 확연히 끊겼다. 요즘 사람들은 한복을 찾지 않는다. 맞춰 입는 한복보다는 대여가 늘었고 개량 한복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

“전에는 한복 한 벌을 장롱 속에 넣어두고는 애지중지 하면서 이게 내 옷이라는 애착을 가지지 않았었나요. 요즘 사람들은 필요할 때 한번 빌려 입고는 그만인 듯해요. 전통이 깨져버렸지요.”

결혼을 앞둔 새 신랑, 새 신부가 한복을 맞추는 주요 고객. 환갑과 칠순을 맞아 한복을 장만하는 사람들도 얼마 전부터 크게 줄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 특수를 단단히 누리기도 했지만 지난 설날에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작업 환경은 좋아졌다. 수동으로 작동되던 재봉틀은 모터를 장착한 재봉틀로 바뀌었다. 땀수가 빨라져 더욱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작업시간이 단축된 건만은 분명하다. 한복 한 벌을 만드는 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한복을 만들기 위해선 잡념을 없애야 한다. 딴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하지 않으면 좋은 옷이 나오지 않는다. 자연스레 한복을 만들 때는 모든 근심과 시름을 날려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땀 한땀 정성가득, 한복은 그렇게 완성되어 간다.
한땀 한땀 정성가득, 한복은 그렇게 완성되어 간다. ⓒ 권윤영
예전에야 한복기술을 배우겠다는 사람도 줄을 섰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 최씨의 곁에서 한복을 만드느라 손을 놀릴 틈이 없던 송영숙(40)씨와는 19년째 함께 일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시장 내에서 젊은 언니로 통한다. 중앙시장 A동에 위치한 30여 점포의 한복집 중에서도 30대 후반의 연령 대는 한 손가락 안에도 꼽기 힘들 정도.

최씨와 송씨는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척하면 척이다. “내 옷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면 지겨울 새가 없다”는 송씨의 성실함에 최씨는 마냥 든든할 따름이다.

중앙시장 한복거리에서도 가장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최순연씨에게는 5평 남짓한 이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일거리는 많이 줄었어도 아침에 나와 밤 10시 정도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나선다.

40여 년 세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손 땀 어린 한복으로 행복을 얻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한복 바느질을 하며 지난 세월의 추억과 향수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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