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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화면
MBC 뉴스데스크 화면 ⓒ MBC 화면 캡쳐
뉴스를 진행하면서 지나친 표현을 사용한 앵커와 소속 방송사에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취재기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보도의 진실성을 이유로 기각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재판장 박국수 부장판사)는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99년 9월 19일 방영한 '못 믿을 변호사' 기사와 관련 "모멸적인 표현을 사용한 앵커 권재홍씨와 MBC는 원고 신성철 변호사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20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 변호사가 자신의 불성실한 소송 수행으로 의뢰인에게 불이익한 판결이 선고됐다고 보도한 MBC와 앵커 권씨, 강명일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1억5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앵커가 원고를 '순백의 법조인'과 대비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사람',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원고의 잘못에 비해 과장됐고 인신공격에 해당된다"며 "의견표명의 한계를 벗어난 불법행위"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보도 내용은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인 재판부는 "본인 또는 관계인의 단순한 의견표명이거나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한 취재기자의 보도도 명백하게 허위사실이 아니다"며 방송사를 상대로 한 정정보도 청구를 기각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같은 기사라 하더라도 기자 리포트와 방송 앵커의 코멘트(설명)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따로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일부 진행자들의 경우 말 한마디로 구설에 오르거나 앵커 자리에서 도중하차 했던 사례도 적지않았던 터라 앞으로 '발언관리'에 대한 주의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MBC "보도의 진실성은 인정받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99년 '못 믿을 변호사' 기사에서 지역 법관에 자원한 판사들의 미담과 의뢰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재판부에 내지 않은 신 변호사의 과실을 대비해 보도했다. 또 진행자인 권재홍 앵커는 두 사례를 설명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비된 얘기를 들어보겠다, 먼저 아침이슬 같은 두 시골 판사의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표현했다.

우선 김경태 기자의 리포트로 진행된 '시골로 간 판사' 기사는 용인시와 양산시 등 지역 법관으로 임용된 판사들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했다. 권재홍 앵커는 다시 "이런 순백의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 곧 이어질 어느 변호사의 얘기는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고 덧붙였다.

이어 강명일 기자는 '못 믿을 변호사' 기사에서 변호사인 원고가 수임료를 받고도 불성실한 소송수행으로 의뢰인을 불리하게 했다는 내용과 함께 원고 이름이 찍힌 사무실 간판을 화면에 내보냈다.

신 변호사는 이후 "MBC가 허위보도와 인신공격성 표현으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냈고, 2001년 1심(1월 18일)과 2심(11월 29일)에서 "피고들은 변호사로서 원고의 자긍심과 명예를 현저히 훼손하였으므로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정정보도문을 방송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3월 25일 환송판결에서 기자의 보도는 "공익성과 진실성이 있으므로 정정보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고쳤다.

이번 판결에 대해 MBC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지만 상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규상 MBC 법무저작권부 차장은 "앵커 표현에 대한 3000만원 배상 판결은 아쉽지만 환송판결에서 보도의 공익성과 진실성을 인정받았으므로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편, 원고 일부승소한 신 변호사는 외국에 나가 있는 관계로 연락이 닿질 못했다.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권재홍 부장 "앵커 코멘트는 '가미'에 해당"

권재홍(보도국 뉴스편집1부장) 전 앵커는 배상판결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 부장은 "앵커의 말을 모욕적인 표현으로 보고 그에 따른 원고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는 뜻인데, 담당자로서 맘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같은 판결은 방송뉴스 진행자인 앵커의 표현의 자유, 더 나아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앵커는 언론인이다, 따라서 앵커는 개인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앵커의 코멘트는 기사 내용을 시청자가 알기 쉽도록 안내하고 방송을 더욱 알차게 내보내는데 목적이 있다"며 "요리로 치면 맛을 더하는, 즉 '가미(加味)'에 비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못 믿을 변호사' 보도의 앵커 코멘트와 관련 "개인 스타일의 문제도 아니고 더욱이 신 변호사 개인을 모욕 주려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 개의 사례를 비교한 표현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회 공기로서 방송 뉴스의 표현의 범위가 더욱 넓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방송 매체는 신문 등 인쇄매체보다 민감하기 때문에 조심을 기하고 있지만, 말 표현 하나하나보다 전달하려는 취지에 의미를 뒀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MBC가 지난 99년 9월 19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한 '못 믿을 변호사' 제하의 기사 내용이다.

앵커 "여러분 이번에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대비된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법조인들입니다. 먼저 김경태 기자가 아침이슬 같은 두 시골 판사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중략)…

앵커 "이런 순백의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 곧 이어질 어느 변호사의 얘기는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집니다. 돈을 주고 소송을 의뢰한 사람을 오히려 불리하게 만든 변호사가 있습니다."

기자 "증거 일부가 누락된 채 법원에 제출되거나 바뀌어 제출되고, 의뢰인에게 필요한 일부 증거는 제출되지 아니하고, 의뢰인에게 불필요하거나 불이익이 되는 증거는 제출하였으며…. 어느 변호사가 자기 의뢰인에게 써준 진술서입니다.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지하에 자그마한 점포 16개를 갖고 있는 조종학 씨.

조씨는 지난 93년 도로점용료 2억원을 내라는 구청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조씨는 30년 전 서울시장 김현옥씨가 도로점용료를 면제해 주기로 한 서류를 갖고 있어 자신있게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재판은 갈수록 불리하게만 진행됐습니다. 알고 보니 변호사에게 맡긴 82년 판례 기사도, 서울시장의 공문서도 재판기록에 없었습니다."

조종학(피해자) "프린트, 복사과정에서 빠진 것이다, 이렇게 미안하다, 그래서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느냐, 이걸 소송 서류의 기본으로 갖다 주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이게 무슨 소리냐…."

신성철 변호사 "왜 증거 제출 전에 확인 안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한다"

기자 "변호사에 의한 피해는 이들 한 두 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는 변호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500명의 시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열에 아홉은 변호사의 법률서비스가 불만스럽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같은 불만속에도 변호사협회나 국회는 마치 내 일이 아니라는 듯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조순형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사법 개혁이 몇 년 전부터 논의되고 추진돼 왔습니다만은 법조계로 말하자면 집단이기주의, 거기에 근거한 저항·반발, 이것 때문에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자 "법조계의 집단이기주의, 그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국민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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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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