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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03 전국민중대회에 참가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 추방반대 전면 합법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작년 2003 전국민중대회에 참가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 추방반대 전면 합법화'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쫓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인근의 한 중소공단을 찾았다. 영세제조업체들이 모여 있는 이 마을 귀퉁이의 허름한 무허가 주택의 대여섯 평 남짓한 방 두 칸에 10명의 방글라데시 청년들이 살고 있었다.

본격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이 시작된 작년 11월 이후 두 달 남짓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의 한 마을 출신들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6년의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만 느껴진다.

낮에는 단속이 무서워 집 바깥에 나가볼 엄두도 못내고 환자가 있어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작년 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판정을 받은 모하메드씨는 매일 물리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치료를 위해 3개월 출국유예를 받았지만, 며칠전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연행되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수술도 다시 받아야한다고 사정을 했더니, 애초에 출국을 약속했던 석 달이 지나면 몸이 아파도 나가야한다고 윽박 질렀어요."

하루 종일 집안에만 갇혀 사는 이들의 하루 일과는 감옥 생활처럼 단순하다. 무슬림으로서의 의무인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 두 달 동안 수십 차례나 돌려봐서 이제는 대사까지 다 외워 버렸다는 인도 영화를 빼면 하루 종일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단속이 시작되기 전부터 처벌을 두려워한 한국인 사업주의 일방적인 해고 통고로 일자리를 잃은 지는 서너달씩 된다. 파룩씨를 비롯한 네명은 그나마 밀린 임금도 받지 못했지만 감히 달라고 공장을 찾아 갈 생각도 못한다. 전화를 해서 딱한 사정을 설명하는 게 고작이지만, 사장은 언제나 다음에 준다고 기다리라고만 한다. 파룩씨는 자신만 쳐다 보고 있을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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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돈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열 명이 한달에 쓰는 생활비는 2백5십만원에서 3백만원 정도. 그동안은 근근히 버텨왔지만 이번 달은 방값도 밀려 있다. 보름전부터는 식사도 하루 두 끼로 줄였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서, 쌀도 사고 반찬도 샀는데 이제는 더 빌릴 데도 없어요."

한국 생활 8년째인 마블씨는 자신들의 불행한 처지를 이용하는 각박한 인심도 서럽다.

"원래 방 하나에 십만원을 받았는데, 집주인이 단속이 시작되자 2배로 올려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달라는 대로 주고 있어요."

단속이 더 길어지면 어떻게 할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그래도 이대로는 떠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도 한국 사람들과 IMF를 함께 겪었어요. 공장 문을 닫으려는 사장님을 설득해서 2년 가까이 식대만 받고 일하기도 했습니다. 고향에서 나만을 바라 보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빈손으로 돌아 갈 수는 없어요."

불빛이 새어 나갈까봐 라면 상자로 막아 놓은 창문에서는 연신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코리안 드림을 쫓아 찾아 온 한국의 올 겨울은 이들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더욱 춥고 길게 느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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