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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학 22년만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강용주(43)씨. 세계 최연소 장기수로 알려져 있는 강씨는 전남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9년 2월 풀려났다.
의대 입학 22년만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강용주(43)씨. 세계 최연소 장기수로 알려져 있는 강씨는 전남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9년 2월 풀려났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99년 2월 3·1절 특사로 석방될 때까지 14년간 복역한 강용주씨. 스물넷의 나이로 영어의 몸이 된 그에게 세상은 '세계 최연소 장기수'라는 타이틀을 달아줬다.

서른아홉의 나이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강씨는 구속직전 다녔던 전남대학교 의예과에 재입학했다. 강씨는 "너무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돼 세상에 연착륙할 기회가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학생의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며 의대 재입학 이유를 설명했다. 또 "광주항쟁 당시 의사나 간호사 등 보건관계자의 헌신적 모습에서 진정한 인도주의를 깨닫게돼 고교시절부터 의사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병도 고쳐내는 게 진정한 의사의 길이라 믿는다"는 그의 말에서 80년 5월 당시 직접 목격했던 '참의사'에 대한 희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강씨는 간첩단 사건 자체보다는 전향제도 거부 등 개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옥중투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지난해 8월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향제도 위반 결정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자신을 옥죄는 보안관찰제도를 전면 거부하는 등 앞으로도 계속될 듯 하다.

강씨는 "가장 바라는 것은 국가권력이 야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곁에 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양심을 처벌하는 보안관찰법, 전향제도, 준법서약서 등을 없애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ADTOP@
다음은 지난 20일 강씨와 나눈 일문일답.

ⓒ 오마이뉴스 안현주
- 늦깎이 의사로서 출발하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85년도에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의해서 구속됨으로써 22년만에 졸업한 셈이다.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학업을 중단 당했는데, 강요됐던 박탈을 22년만에 정상화시킨 의미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다. 그간 동료학생들, 교수님들,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서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분들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다."

- 14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을 텐데 의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면 장기수 선생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전향하지 않은 정치범은 병들어 죽거나 자살해야만 시신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게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특사로 석방된 것이 나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의대에 재입학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보니 세상을 잘 몰라서 사회에 연착륙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 신분을 갖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또 80년 광주항쟁당시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목격하고 진정한 인도주의가 뭔지 깨달았다. 그분들의 모습이 마음 깊이 남아서 의대를 선택한 것이다."

- 그동안 보안관찰제도에 대해 줄기차게 폐지를 주장해왔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보안관찰제도라는 것은 사상탄압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감옥에서는 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로, 출소한 사람에게는 보안관찰제도란 형태로 나타난다.

보안관찰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 그럴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기본권을 제약당하고 처벌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근대 형법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미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보안관찰법으로 제약을 주는 것은 이중처벌이다.

또 보안관찰법은 새로운 신분법이다. 보안관찰 대상이 되면 죽을 때까지 그 대상이 된다. 죽어야만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신분이잖나. 양반으로 태어났으면 계속 양반이고 상놈이면 상놈, 노예면 계속 노예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안관찰대상자로 지정되면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으니까 새로운 사회적 신분인 것이다. 그것도 그냥 신분이 아니고 불가촉 천민과 같은 사회의 최하층 신분이 되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 1985년도와 2004년은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어떤 차이점을 느끼나?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나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나 인권이 반공반북에 의해 제한된 인권이자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대표적 예로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이 현존하고, 기본적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과 제도와 관행이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인간의 양심을 처벌하고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토론하고 논쟁할 것이지 처벌하는 것은 안된다. 생각이 다르다고 처벌하는 것은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다름없지 않는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서로가 더블어 사는 것이 근대 사회이고 이성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의사로서는 학부를 졸업했으니 겨우 첫 발을 내디딘 병아리 의사인 셈이다. 앞으로 5년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아야 한다. 사람의 건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만을 고쳐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인 사회와 자연이 건강해야만 사람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그래서 WHO같은 경우 '건강이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웰빙(well-being)한 상태'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앞으로 육제적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병도 고쳐내는 것이 진정한 의사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배울 각오다.

더불어 인생의 화두인 양심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활동도 열심히 할 것이다. 개인의 양심은 국가가 개입하고 강제할 영역이 아니다. 헌법에도 기본권은 법률에 의해서 제한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내용은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그 본질적인 내용이 바로 양심의 자유다.

2002년에 보안관찰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었는데 패소했고, 헌법소원 역시 합헌결정이 났다. 또 보안관찰 대상자의 신고의무불이행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냈지만 각하됐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나라에서 밟을 수 있는 모든 절차를 밟아도 안됐을 때는 유엔인권위에 개인통보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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