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야 규환아 머하냐?"
"왜라우? 방학 숙제 허는디요."
"얼렁 나와봐라."
"금방 나가요."
맑게 갠 오후 어머니는 행랑채에 잘 말려둔 짚 다발 한 단을 가져오셨다.
"왜 그요?"
"잉 오늘은 콩지름(콩길음, 콩나물의 사투리)을 놓아야겠다."
"시방 해도 늦지 않겠는가?"
"아직 엿새 남았응께 괜찮을 거시여."
"너는 여그서 짚다발을 꼬실라라."
"걱정 마싯쇼."
마당을 일부 쓸고 짚 다발을 풀어 성냥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짚불에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볏짚이란 게 첫 불만 화려할 뿐 이내 사그라 든다. 긴 부지땅(부지깽이)으로 살살 흩어 놓으면 그 발갛던 불은 이내 짚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채 까만 재로 바뀐다.
"엄마 다 식었는디요."
"시루 들고 갈텡께 날라가지 않게 하거라."
"예."
슬슬 모아 한 군데 뭉쳐 놓으니 도망가지 않고 서로 엉겨 있다. 어머니는 미리 불려 놓은 작은 진저리콩(쥐눈이콩의 사투리. 전주식 콩나물국밥의 으뜸 재료) 두 되와 질그릇 시루를 갖고 오셨다.
바닥에 뚫린 구멍엔 솔가지를 꺾어 빠지지 않게 대충 막으시고 살짝 닿자마자 "사사삭" 맑고 시원한 소리를 내는 까만 재를 한층 올린다. 위엔 불린 콩을 골고루 뿌려 준다. 또 한번 재로 덮고 위에 콩을 뿌린다. 다섯 층을 조심조심 올리니 콩이 바닥이 났다. 이젠 나머지 재로 위를 덮으면 된다.
주변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따라가 봤다. 장독대 주변에 시루를 옮기시고 물을 한 동이 가져다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살살 골고루 뿌려준다. 물이 쭉 빠지자 1시간 여 지나고서도 또 한번 물을 길러다가 부어준다.
"엄마 왜 이렇게 물을 많이 뿌린당가?"
"잿물을 다 빼야 되는 것이여. 재도 독이 있응께."
해질녘 방안 윗목에 나무를 잘라 만든 'Y'자형 받침대에 올려놓는다. 이제 물기가 떨어질 때마다 하루 세 번씩 물만 주면 그믐 날 이전까지는 노란 콩나물이 쑥쑥 자랄 것이다. 날마다 잊지 않고 애지중지 기르면 이번 설에도 반찬 걱정 없이 날 수 있다. 무치고 국 끓이고 잡탕 만들어 먹으려면 한 시루는 족히 들어가니 말이다.
이렇게 어머니는 제사나 명절이 돌아오면 미리 콩나물을 직접 기르셨다. 자급자족 생활의 실천이다. 나물이라도 걸게 차려야 했던 지난날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시고 늘 바빴다.
오늘도 그 콩나물이 그립지만 감히 나는 엄두를 못 낸다. 도시에서 사는 터라 콩이 있던 들 어찌 어머니 흉내를 조금이라도 내 볼 수 있겠는가. 당장 시루도 없고 짚 다발 태울 데도 없다. 뿐만이 아니다. 나에겐 그 정성마저 없으니 그립던 옛날이나 씹어 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번에 내려가면 기어코 콩나물 시루에 기른 콩지름-콩나물을 찍어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