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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그레고리 E. 랭. 이혜경 옮김. 나무생각. 7,900원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그레고리 E. 랭. 이혜경 옮김. 나무생각. 7,900원 ⓒ 나무생각
평소 나는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어 주지 못했다. 나의 유년 시절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신 분이었다. 내 위로 누나가 있었고 남동생이 둘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장남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어도 "잘못했습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미련곰퉁이'라고 불렀다. 덕분에 매를 많이 맞았다. 그때 나는 이 다음에 장가 가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게 되면 절대로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고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여지 없이 깨지고 말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한 편이었다. 말로 할 수 있는 일에 회초리를 들었다.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통해 재현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못마땅하고 싫었지만 나는 영락없이 아버지의 닮은 꼴이었다. 아이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펴나갈 수 있도록 꿈과 용기를 주어야 했는데 나는 아이들을 반듯하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들볶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제 저녁부터 그레고리 E. 랭의 <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라는 책을 읽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단순하고 소박한 잠언 같은 경구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또 사진작가 재닛 랭포드 모란의 사진은 글의 깊이를 더욱 느끼게 해준다. <아들에게 필요한 100가지 이유>에서 몇 대목을 찾아본다.

아들에게 재미있게 놀 줄 아는 그런 아버지가 필요하다.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재밌어 하는지 물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재밌어 하는 일들, 예를 들면 사진 찍기, 등산, 달리기를 강요했을 뿐이다. 아이들이 일요일 한밤중 TV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 못마땅해서 얼른 TV끄고 자라고 했을 뿐이다.

아들에게는 때로는 아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해주는 그런 아버지가 필요하다.

이것도 나의 경우는 불합격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명령 내리기를 좋아했다. 개밥 줘라, 책상 정리 좀 해라, 방 치워라,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일찍 자라… 등등.

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동료 의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사내 녀석들이 자기들 고민은 나보다 아내에게 들고 간다.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해'의 의미를 바로 알고 실천할 일이다.

아들에게 자식을 신앙인으로 이끌어주는 그런 아버지가 필요하다.


나는 새벽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本)이 되었는가는 장담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가장 훌륭한 아버지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아이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반듯한 신앙심을 심어 주고 싶었다. 단순한 욕심일까?

신앙은 세상의 어떤 시련과 고통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 나는 아이들에게 바른 신앙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이 점을 아이들이 인정해 줄 것인가?

<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짤막한 문장이 깊은 산사의 종소리처럼 아름답고 파장이 길다. 그 다음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레고리 E. 랭은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아빠가 딸아이를 안으면 내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내렸고 아빠의 무릎에 가서 안기려고 기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부러움이 일어났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을 보면 감동을 받았고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여자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했다. 딸과 아빠 사이에 오가는 특별한 사랑이야말로 너무나 경험하고 싶은 것이었다.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이틀 전 아내와 아이들이 서울 외가댁에 가고 집에 나 혼자 남아 있다. 어젯밤 우리집 딸내미 은빈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아빠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하면서 울먹인다. 그렇게 말하면 아빠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사내 녀석들은 뻣뻣하기 그지없지만 딸 녀석은 아이스크림처럼 애교가 철철 넘친다. 다시 그레고리 E. 랭의 경구를 따라 가보자.

딸에게는 딸이 아빠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그런 아빠가 필요하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랭은 살갑고 다정한 딸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이 끝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딸이야말로 아버지의 사랑의 분수대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물줄기는 끝이 없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딸이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은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흐믓하다.

딸에게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 때 언제나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혼자 걷는 것이 너무 두려울 때 동행해 주는 아빠, 성실함의 의미와 험한 길을 피해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때까지 어려운 결정들을 대신 내려주는 그런 아빠가 필요하다.

이 대목은 딸과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얘기해 주고 있다. 랭은 딸을 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꽃의 향기를 발하기 위해 흙과 물과 공기와 바람이 필요하듯 아버지는 딸에 대해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해 지나친 의존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딸에게는 도덕적인 기준을 세워주는 그런 아빠가 필요하다.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 삶이 선택의 기초이다. 아무리 훌륭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도덕과 윤리를 동반하지 않을 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레고리 E. 랭은 자신의 경험담을 소재로 책 두 권을 엮었다. 건강한 가정, 화목한 가정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들의 삶의 교과서로 삼을 만한 책이다. 짤막한 경구들을 곱씹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온다. 재닛 랭포드 모란의 사진은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 같은 온기를 더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장면은 그 중 압권이다.

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 Family Book

그레고리 E. 랭 지음, 이혜경 옮김, 재닛 랭포드 모란 사진, 나무생각(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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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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